밸류업 정책 도입에 저PBR株 급등
자사주 비중 20%·배당성향 20% 밑도는 기업 관심↑
“자사주 매입 후 실제 소각까지 과거 이력 살펴봐야”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 삼성물산이 지난달 31일 자사주 7677억원어치(4.2%)를 소각하기로 발표하자 시장은 곧바로 화답했다. 주당 13만원을 밑돌던 주가는 다음날 7.75%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이후 주주환원을 골자로 한 ‘기업밸류업 프로그램’에 시장 관심이 커지면서 지난 5일 장중 15만5900원까지 상승세를 탔다.
자사주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주주가치 제고 여력이 큰 상장사를 찾는 시장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밸류업 정책’을 도입하면 기업이 과도하게 쌓은 자사주를 이용해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배당성향이 20% 미만으로 코스피 평균(2022년 기준 25.2%)을 밑도는 기업들이 실제 소각까지 나설지 주목된다. 다만, 전문가는 이번 정책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빠진 만큼 각 기업이 내놓을 밸류업 정책을 살피고 옥석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일 헤럴드경제가 에프앤가이드를 통해 시가총액 2000억원이상·자사주 보유 비율이 20%를 넘은 상장사를 살펴본 결과, 두 조건을 충족한 곳은 대웅(29.67%) 등 29사로 집계됐다. 이 중 최근 3년(2020~2022년) 간 흑자를 기록하고 평균 배당성향이 20%를 밑도는 일명 ‘20-20 클럽’에 속한 주요 상장사는 총 10개사였다. 배당성향이란 당해 번 당기순이익 중 얼마만큼을 배당금으로 주주에게 지급했는지 보여주는 비율로, 주주친화 여부를 판별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통상 업계에선 순이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수준은 돼야 한다고 권고한다.
자사주 비율이 29.7%에 달하는 대웅은 최근 3년간 평균 배당성향이 4.52%에 그쳤다. 2016년 21.78%까지 올랐던 배당성향은 2022년 4.05%까지 내렸다. 이후 지난해 7월 대웅은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200억 규모의 자사주와 자회사 주식 매입에 나섰다. 대웅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현재 1.6배 수준으로 증권가에선 “자회사 대웅제약(52%) 지분과 대웅바이오(100%) 영업 가치가 저평가됐다(다올투자증권)”는 분석이 많다. 자사주 23.54%를 보유한 광동제약 역시 3년간 평균 배당성향이 14.4%로 15%를 밑돈다.
자사주 비중이 25.5%인 대한제강의 평균 배당성향은 10.3%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자사주 158억원어치(5%) 소각에 나섰다. 대한제강의 PBR은 0.43배로, 역시 저평가됐다는 진단이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철근 국내 업황이 부진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ROE(자기자본이익률) 대비 저평가 수준”이라고 했다. 태광산업(자사주 24.4%·0.23배), 동원산업(22.5%·0.63배), 신세계 I&C(23.6%·0.60배) 등도 저평가 상태다.
특히 저평가 증권주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크다. 미래에셋증권의 자사주 비중은 24.26%로 평균 배당성향은 17.15% 수준이다. 올해부터 3년간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예고하면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3개월 만에 7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하겠다고 발표하자 시장에선 조만간 자사주 소각에 나선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 밖에도 배당성향 20%를 웃도는 부국증권은 자사주 비중이 40%에 달해 자사주 소각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다만, 정부가 기업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안 도입을 보류하기로 한 만큼 투자자들도 옥석 고르기가 필요하다. 자사주를 일률적으로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각에선 미국 사례처럼 ▷자사주 재매각 시 요건을 강화하거나 ▷소각하지 않는 자사주는 시가총액 산출에서 배제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아울러 최근 자사주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일종의 테마주처럼 급등한 만큼, 설 연휴를 앞두고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별 종목뿐만 아니라 저PBR 관련 ETF 거래량이 상품에 따라 많게는 수십 배까지 폭증하기도 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도입되더라도 기존에 보유 중인 자사주에 대한 소각을 의무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최근 2년간 소각 목적을 갖고 자사주를 매입하고 실제로 소각한 기업들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