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종북세력 활동 가능성 많아”

1심은 오늘의유머 패소, 2심은 승소

대법, 다시 판결 뒤집어

“사실 적시 아니라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 많아”

대법 “‘종북’ 발언은 명예훼손 아냐…의견 표명”
대법원.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국정원 대변인이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해 “종북세력이 활동할 가능성이 많다”고 한 것을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종북이라는 표현이 현재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점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 운영자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앞서 2심은 A씨 일부 승소로 판결해 국가가 A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하자만 대법원은 A씨 패소 취지로 판결을 뒤집었다.

이 사건은 2012년 국가정보원의 여론 조작 사건에서 파생했다. 당시 국정원은 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글을 작성하는 식으로 여론을 조작했다. 오늘의유머는 진보 성향 커뮤니티로 분류돼 국정원 댓글 조작 활동의 주요 표적이 됐다.

오늘의유머 운영자 A씨는 국정원 대변인이 언론과 인터뷰에서 오늘의유머를 ‘종북 사이트’로 지칭한 점을 문제 삼았다. 국정원 대변인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오유가 종북사이트냐’는 질문에 “종북사이트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종북세력이나 북한과 연계된 인물들이 활동하고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는 공간으로 본다”고 답했다. A씨는 해당 발언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A씨 패소로 판결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104단독 조지환 판사는 2019년 5월, “해당 발언만으로 오늘의유머가 종북사이트라는 오명을 입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2심은 반대로 A씨 승소로 판단했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8-1민사부(부장 윤웅기)는 지난해 9월, 국가가 A씨에게 위자로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해당 발언은 오늘의유머 사이트가 종북세력과 관련한 사이트라는 주장이 묵시적으로 포함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남북 분단 사회에서 ‘종북’이란 표현이 가진 부정적 인상을 고려하면 A씨가 다년간 사이트 운영을 통해 쌓아 올린 명성이 침해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판단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원심(2심)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 이유로 대법원은 “종북이란 표현은 대북정책, 북한과 관계 변화 등에 따라 용어 자체가 갖는 개념과 포함되는 범위가 지속해서 변하고 있다”며 “종북 표현의 대상이 된 사람이 느끼는 감정 또한 가변적일 수 밖에 없어 해당 표현을 사실 적시가 아니라 정치적 평가 또는 의견표명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령 종북 관련 발언을 사실 적시라고 보더라도, 단순히 종북이라는 표현을 특정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해당 발언은 오늘의유머 이용자 중 일부가 종북세력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에 불과해 A씨에 대한 객관적 평판 또는 명성이 손상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대법원은 “원심(2심) 판결은 명예훼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다시 판단하라”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향후 열릴 4번째 재판에선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씨의 청구가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