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태종 이방원’ 제작진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벌금형
퇴역경주마 까미는 구체적 죽음 원인 알려졌지만…
경주마 대다수는 5세에 퇴역 후 죽거나 알 수 없음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최근 퇴역경주마 ‘까미’의 다리에 줄을 묶어 강제로 쓰러뜨려 낙마 장면을 연출한 드라마 제작진이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까미에게는 낙마 촬영 후 큰 부상을 입고 닷새 뒤 사망했다는 구체적인 죽음의 원인이 남게 됐다. 하지만 까미는 특별한 케이스다. 기록상 “폐사”로 사라지는 경주마들이 매년 약 1000마리씩 존재한다.
폐사된 경주마들의 구체적인 죽음의 원인은 알 수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에 의해 단거리 경주에 알맞게 개량된 경주마 종의 특성상 부상에 더 취약한데다 만약 부상을 입으면 치료에 드는 돈이 말이 벌어들인 수익을 넘어서는 등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23일 한국마사회 호스피아 경주마 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과 2021년 각 해의 전체 퇴역경주마(퇴역마) 1300마리와 1615마리 가운데 804마리(61%), 957마리(59%)가 ‘폐사’ 처리됐다. 폐사에는 병사, 자연사, 안락사가 모두 포함된다. 나머지 절반 이하의 살아남은 퇴역마들은 승용마, 번식용, 휴양, 교육용 등으로 각 용처가 구분됐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용도 미정’도 상당수다.
우리나라 전체 마두(馬頭)수의 46%(1만3572두)를 차지하는 경주마 종인 서러브레드(thoroughbred)는 단거리 경주에 알맞게 인간이 교배를 거듭해 개량한 말이다. 자연적으로 나올 수 있는 말과 달리 다리가 매우 가녀린 모습이다. 때문에 경주에 참가해 달리면서 가해지는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리가 다치거나 부러지는 사고가 쉽게 생긴다.
이들은 아주 이른 나이부터 경주마로 훈련돼 쓰이다가 보통 인간 나이로 치면 스무살인 5세 무렵에 대개 퇴역한다. 퇴역시킨다는 것은 더 이상 경주마로서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한 말은 25살까지도 살 수 있다. 건강하다고 해도 퇴역 경주마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우리나라의 말 산업구조는 사행성 경마가 가장 크고, 일반 승마 인구는 얼마 되지 않아 승마 교육 등은 산업으로서의 의미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다리 부상을 입은 퇴역마는 높은 확률로 재활에 성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게 된다.
김정현 대한재활승마협회 이사는 “말은 워낙 큰 동물이고 말 전문 수의사도 많지 않다. 말을 병원에 입원시키려하면 큰 트럭이 필요하고, 마취제나 수액도 용량이 많이 필요해 치료에 비용이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둘째는 말의 신체 구조상 다리 부상 치료가 힘들다는 설명이다. 김 이사는 “사람과 달리 말은 다리가 부러져도 강제로 눕힐 수가 없다. 그러면 다친 다리를 땅에 딛지 못하게 공중에 매달아 놔야 하는데, 이 과정을 말이 너무 힘들어하고 때론 스트레스로 장꼬임을 겪기도 한다”며 “치료도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드니 부상의 정도가 심하다 싶으면 안락사를 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마는 주인인 마주(馬主) 개인이 소유하는 구조라 마사회 측은 안락사 현황에 대해서 파악이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마사회가 농림축산식품부의 위탁을 받아 승마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퇴역마 등을 안락사할 경우 마리당 150만원부터 200만원까지 보조금을 주고 있기에 이를 이용한 마주의 기록이 남는다. 마사회는 지난 2013년~ 2022년 상반기까지 10년간 695마리가 공식적으로 안락사됐다고 밝혔다. 연 평균 69.5마리 꼴이다.
죽음도 그렇지만 태어날 때부터 서러브레드는 인간의 손에 맡겨진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교배를 거듭한 탓에 새끼를 낳을 때 사람이 도와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산 과정에서 모체와 새끼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김 이사는 “태어나 일찍부터 소진되다 폐마되는 말들이 부지기수”라며 “경주마로 뛰다 퇴역하고 농장에서 관광객 몇 명 태우며 편하게 사는 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