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 실적 시즌이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습니다. 국내외 굵직한 기업들의 실적이 주가를 춤추게 합니다. 그에 따라 누군가는 흥이 넘치는 춤사위를, 또 누군가는 애달픈 몸놀림을 하겠죠.
보통 주가는 ‘이익의 함수’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방정식이 매우 복잡하긴 하지만, 어쨌든 주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이익이란 뜻이겠지요. 때문에 실적 발표 때면 이익이 얼마인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특히 기대를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는 단숨에 실적발표 현장을 축제 분위기로 만듭니다.
하지만 실적이 뛰어나게 나왔어도 주가는 딱히 반응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제까지의 실적은 좋았지만 앞으로 업황이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대세인 경우가 많죠. 어쨌든 오늘 공개된 실적은 과거의 기록이니까요.
이에 [투자뉴스 뒤풀이]는 몇 차례에 걸쳐 실적 발표 때 언급되는 재무 이벤트에 대한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또 업종에 따라 발표되는 매출, 영업이익 외에 눈여겨 봐야할 투자 포인트는 무엇인지도 짚어보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로 종종 언급되는 ‘충당금’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충당금이 무엇인지 정확히 재무적으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뭔가 안 좋은 일에 대비해 쌓아 두는 것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충당금을 많이 쌓아둔다면 앞날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고 그에 대한 대비를 더욱 철저히 한다는 것이겠죠.
그럼 이 충당금이 ‘환입’ 된다는 건 뭘까요? 새로 뭔가를 만들어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해서 벌어들인 게 아니라 잠시 맡겨 두거나 보관해뒀던 걸 다시 가져왔단 것이겠죠.
때문에 충당금 환입이 이익의 큰 비중을 차지하면 설사 숫자로 보이는 실적이 좋게 나오더라도 시장 반응은 좀 시큰둥할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5일 2023년 4분기 영업이익 3460억원의 기대 이상의 실적을 냈습니다. 지난 2022년 4분기부터 계속해서 적자 행진을 이어온데다 이번 분기도 별 수 없이 적자를 낼 것이란 예측이 강했던터라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죠.
하지만 주가는 그렇게 폭발적으로 반응하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날 주가는 2%이상 떨어졌습니다. 아직 2023년 사업보고서가 나오진 않았기 때문에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발표된 내용에 한정해 재무적 측면에서 보면 일단 충당금이 눈에 들어옵니다.(사업보고서가 나오면 반도체 업종처럼 유무형자산 투자(CAPEX) 규모가 큰 기업의 재무제표를 해석하는 기초를 따로 올리겠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SK하이닉스는 4분기 낸드플래시 재고평가손 충당금 4000~5000억원이 환입됐다고 밝혔습니다. 영업이익이 3460억원인데, 충당금 환입이 이 정도면 어마어마한 것이죠.
현대차의 지난해 3분기 실적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당시 현대차 영업이익은 3조8218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6.3%나 뛰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실적이지만 실적 발표 직후 주가는 그다지 힘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판매보증 충당금이 1조3602억원이 들어오면서 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놀라운 실적은 아닌 셈입니다. 더욱이 1년 전인 2022년 3분기 대규모로 충당금을 반영한 탓에 이익 규모가 시장 예상치를 다소 밑돌았던 걸 감안하면 말이죠.
이렇듯 실적 발표 때 충당금이 이슈가 되고, 김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럼 이제 자세히 한 번 충당금을 살펴보죠.
▶충당금에 대한 재무적 이해를 하기 위해선 직전에 언급한 현대차의 사례처럼 자동차 회사들의 무상보증 수리비용에 따른 충당부채를 예로 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전에 기초적인 이해를 위해선 회계 기본 원칙인 발생주의와 대응원리(=매칭컨셉)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앞서 올린 ‘[투자뉴스 뒤풀이] 돈 벌었는데 빚이라고?…‘선수수익’으로 이해하는 회계 기본’(2022년 3월 29일) / ‘[투자뉴스 뒤풀이] 건물값 올랐는데 가치는 떨어졌다?…감가상각으로 이해하는 회계 기본②’(2022년 3월 31일) 이 두 기사를 참조 부탁드립니다.
글을 진행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간략히 설명을 드리자면, 발생주의는 어떤 기업이 수익(=매출) 창출을 위해 제품·서비스를 만들거나 제공했다고 판단할 때야 수익으로 잡을 수 있단 것입니다.
돈을 먼저 받았더라도 아직 물건을 만들지 못했다면 매출이 아니고, 반대로 아직 돈은 못 받았어도 물건을 다 만들어 보냈다면 매출로 잡습니다.
중요한 건 돈이 실제로 들어왔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해당 기업이 제품 및 서비스를 팔 수 있을 정도로 성실하게 잘 만들었느냐, 그리고 별일 없는 한 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 입니다. 때문에 기업들 사업보고서를 보시면 모든 기업은 저마다 매출을 인식하는 조건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익을 올리는데 들어간 비용을 수익에 대응(=매칭)해 인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게 매칭컨셉입니다.
A라는 물건을 2020년 50원, 2021년 30원, 2022년 20원씩을 들여서 만든 뒤 2023년에 150원에 팔았다면, 2023년 손익계산서에 매출 150원이 적히고 비용은 100원이 잡히는 것입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손익계산서에는 50원, 30원, 20원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이는 기업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수익과 그에 따른 비용을 정확히 반영해 외부에 정확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 기업은 오로지 A라는 물건 하나만 만들어 팔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2020년과 2021년, 2022년은 계속해서 적자 행진을 합니다. 그러다 2023년에 150원이라는 깜짝 이익을 내게 됩니다. 외부 투자자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숫자입니다.
▶충당부채는 이 매칭컨셉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물건을 만들어 파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먼저 돈을 들여 공장을 짓고 원재료 사오고 직원들 월급 줘서 만들어 낸 뒤 팝니다. 비용이 먼저 발생하고 매출은 나중에 생깁니다. 앞선 A라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경우처럼요.
하지만 매출이 먼저 발생하고 비용은 나중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자동차 회사의 무상수리 보증입니다.
2020년 A라는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100원에 팔았다고 합시다. 이 회사는 앞으로 3년 간 무상수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매출은 일단 2020년 100원으로 잡혔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3년 안에 실제로 이 자동차에서 문제가 발생해 수리비용이 발생하는 경우입니다. 무상수리 보증이니깐 이 비용은 고스란히 회사 몫입니다.
예를 들어 이 자동차를 판 바로 이듬해인 2021년에 수리비용이 50원 발생했다고 합시다. 이해를 간단히 하기 위해 다른 제반 비용은 전혀 없고 2021년엔 아무 매출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보죠.
만약 수익과 비용을 매칭 시키지 않는다면, 2020년은 100원 매출이 발생하고, 비용은 하나도 없다고 가정했으니 이익도 100원입니다. 그런데 2021년은 비용 50원이 발생했으니 50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합니다.
2020년 100원을 보고 기뻐하며 투자했다면 곧바로 이듬해 어마어마한 적자 전환을 직면하게 됩니다. 회계정보로서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때문에 수익-비용 매칭을 위해 2020년 100원의 수익을 잡을 때 앞으로 들어갈 비용까지 추정해서 부채로 반영하게 됩니다. 당연히 앞날에 얼마나 비용이 실제로 들어갈지는 모르니 나름대로 추정을 해야겠죠. 3년 안에 무상수리 대상이 될 고장이 발생활 확률과 그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 등을 열심히 추산할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비용 추정치를 ‘충당금’으로 잡고 이를 충당부채로 인식해 대차대조표(=재무상태표)상 부채(liability)의 하나로 명시합니다.
현대차는 최근 몇 년 간 적지 않은 충당부채를 잡아 왔습니다. 특히 2022년 3분기엔 정말 많이 잡아서 이슈가 됐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3분기, 그러니깐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낸 바로 그 분기엔 충당금이 대규모로 환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런저런 문제로 대규모 품질비용이 발생할 줄 알고 이만큼 충당금을 잡아 왔는데 예상과 달리 실제로 별로 나간 돈이 없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숫자상 이익은 2022년 3분기보다 2023년 3분기 더 높지만, 속을 뜯어보면 딱히 그렇게 성장을 했다고 평가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25일 현대차가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고 실적 발표를 했음에도 아래와 같은 증권사의 보고서가 나온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날 주가는 강력한 주주환원정책을 디딤돌로 뛰어올랐지만요.
▶SK하이닉스 역시 비슷한 이유로 2022년 대규모 충당부채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 (“반도체는 1분기에 장사 안 된다?” SK하이닉스의 ‘반전’ 이유는 [비즈360] - 헤럴드경제 2022년 4월 27일 참조)
이 기사에 언급된 SK하이닉스의 충당금은 위에 설명드린 자동차 회사의 예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번 25일 컨퍼런스콜에서 언급한 ‘재고자산평가 손실 충당금’은 조금 다릅니다. 일단 충당금의 대상이 ‘재고’입니다. 재무상태표상 자산(asset)에 있는 계정이죠.
대부분의 회사는 외부에서 어떤 원자재나 부품 같은 재고를 사들여와서 가공한 다음 더 높은 가격에 팝니다. 그렇게 이익을 내죠.
만약 어떤 제품을 정상적으로 판매할 때 5000원은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죠. 그럼 여기서 2000원의 가공비가 들고 판매 과정에서 1000원의 판매비가 발생한다면 2000원이 남을 것입니다. 이것을 순실현가능가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순실현가능가치가 취득원가, 즉 처음 원재료를 사올 때 들었던 돈보다 낮아질 때가 있습니다. 만들어 팔 수록 손실이 나는 셈이죠.
그러면 재고자산 평가손실이 발생하고 손익계산서상 매출원가에 비용으로 잡습니다. 그러면 이익이 뚝 떨어지죠. 그리고 남아 있는 재고 물량을 계산해 기말 재무상태표상 재고자산 평가충당금으로 잡습니다.
뭔가 어려운 용어가 좀 나와서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만들어 팔 제품 판매가격이 원재료 구입비보다도 낮아졌을 경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 있는 재고 물량에 이런저런 가공비나 판매비용 등을 감안해 그만큼을 재고자산평가 손실 충당금으로 쌓습니다.
아직 팔리지도 않은 재고 자산에 왜 충당금을 잡아 두는 것일까요? 재고는 매우 아주 많이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회계 보고의 기본은 외부인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있습니다. 재고는 일반 제조업의 경우 자산의 10~15%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재고를 금액으로 평가하고, 특정 시점(기말)에 남아 있는 재고 자산을 화폐 가치로 추산해 보여주는 게 바로 재고자산평가 손실 그리고 그에 따른 재고자산평가 손실 충당금 입니다. 그러면 외부투자자(채권자&주주)는 이를 토대로 이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앞으로의 수익성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번 연도에 충당금 잔액이 앞선 연도 충당금 잔액보다 줄어들면 그만큼이 환입됩니다. 판매가격이 다시 오르면 그렇게 되겠죠.
SK하이닉스가 이번에 그런 경우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작년 4분기에 낸드는 업계 감산 및 고객 수요 개선에 따른 가격 회복 기조 속에서 저수익 제품 판매를 줄이고 프리미엄 제품 비중을 높이면서 ASP(평균 판매가)가 크게 상승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당분간 가격 상승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올해는 재고평가손실 충당금의 환입에 따라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죠.
이 말이 이제 이해가 되시겠죠?
▶충당금 설명을 드리면서 계속 언급한 것이 ‘추정’입니다. 충당부채를 계상할 땐 모든 것이 다 예측이고 추산입니다. 그렇게 추정을 해서 작게는 몇 십억원, 크게는 조 단위 돈을 실적에서 좌우할 수 있습니다.
재고평가손실 충당금 역시 가공비용, 시가(판매가격) 등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그 규모를 줄였다 키웠다 할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선제적으로 경쟁사보다 빨리 재고부담을 낮춰놓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한 덕분에 낸드 ASP 상승의 효과를 아주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D램과 낸드 ASP가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계속 나온단 점에서 SK하이닉스의 충당금 환입은 이번뿐 아니라 계속 확대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경영진의 선택이고 판단이고 전략인 것입니다.
(은행의 대손충당금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은행들은 대출자산이 부실해질 것이 우려될 경우 대손충당금 비중을 높입니다. 다만 은행업은 규제산업이기 때문에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 역시 자율 판단보다 규제당국의 가이드라인에 좌우된단 점에서 일반 제조업과는 다소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만약 이번에 이익이 좀 많이 나게 하고 싶다면 충당금을 좀 줄이면 됩니다. 반대로 이익을 좀 적게 내 보이고 싶다면 추정을 좀더 엄격하게 해서 충당금을 늘리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이익은 많이 나는게 좋지만 경우에 따라선 이익이 적게 나는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절세 목적이죠. 세금은 영업이익에서 떼어 가기 때문에 이익이 적게 나면 그만큼 세금도 적게 나갑니다. 대부분 기업들이 노동자 성과급, 임금 인상을 이익 규모와 연동해 결정합니다. 숫자로 보이는 이익이 줄면 성과급 지급 규모나 임금 인상폭을 좀 줄일 수 있겠죠.
경영진이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임기가 올해 막 시작해서 앞으로 5년이라고 하죠. 아마 내년까지는 실적이 좋지 않더라도 주주들이 기다려줄 것입니다. CEO 입장에서도 연임을 하려면 임기 초반보다 4~5년차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할 겁니다.
때문에 임기 초 충당금을 엄격하게 적용해 잔뜩 늘려서 이익을 뚝 떨어뜨린 뒤 3년차 이후부터 서서히 환입돼 들어오게 하면 설사 실제 영업활동으로 이익이 증가하지 않았더라도 숫자로 보이는 실적은 개선되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른바 ‘빅배스’(Big Bath)죠.
어떤 이유가 됐건 충당금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걸 많이 잡았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조심스럽게 가자는 걸 탓할 순 없으니까요. 경영 선택의 문제죠.
다만 주식 투자를 하는 분들이라면 실적 시즌에 충당금 이슈가 나왔을 때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제가 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길 바라겠습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2020년엔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