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란 책이 있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제안으로 일주일간 공항에 상주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공항의 랜드사이드(Landside)와 에어사이드(Airside)를 드나들며 탑승객들과 직원들을 만나고 경험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지난 연말 동남아시아의 한 도시를 여행하면서 공항에서 접했던 60분 동안의 계류장 풍경이 묘하게 알랭 드 보통의 책 제목에 빗대어졌다. 전문 용어로 ‘턴어라운드(Turn-Around)’라고 하는 그 시간은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하여 지상 조업(操業)과 이륙 준비를 하고 다시 출발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필자가 이용할 항공기의 운항스케줄은 인천공항에서 아침 7시 45분에 출발하여 현지시간으로 오전 10시 55분에 도착한 이후, 다시 11시 55분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출·도착 시간이 약 20~30분 정도 지연되었다. 오전 시간대여서 터미널은 비교적 한산했고 게이트 앞 대기실에 앉아서 탁 트인 유리창을 통해 활주로 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탑승할 항공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11시 10분 : 항공기가 계류장으로 들어왔다. 계류장은 에이프런(Apron) 또는 램프(Ramp)라고도 불린다. 주황색 형광 조끼를 입은 두 명의 항공기 유도원(Marshaller)이 경광봉을 들고 조종사에게 신호를 보내자 계류장의 노란색 유도선을 따라 들어왔다. 비행기가 멈춰서자 바퀴 앞뒤에 고임목을 대어 고정했다.
11시 15분 : 탑승교(Boarding bridge)가 조작 요원에 의해 비행기 탑승구와 연결되었다. 탑승 게이트가 복잡한 경우 승객은 스텝카(Step car)를 이용하여 계단으로 내려오고 이어 램프버스(Ramp bus)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하게 된다. 탑승교 창문을 통해 승객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11시 16분 : 수하물을 실어나르기 위해 터그카(Tugcar)가 비어있는 트레일러 돌리(dolly) 2칸을 끌고 비행기 오른쪽 후미에 정차했다. 화물 하역 장비(Bulk cargo loader)를 연결하여 수하물을 쉽게 나를 수 있게 하였다. 그날은 비가 내려서 수하물이 젖지 않도록 주름 방수포가 덮였다. 서너 명의 조업자들이 빠른 동작과 손놀림으로 수하물을 내렸다.
11시 20분 : 급유차가 우측 날개 끝에 도착해서 호스를 전개하고 탑재된 탱크에서 급유를 했다. 어떤 공항에서는 계류장 지하에 있는 급유관과 항공기의 연료 주입구를 중간에서 연결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 내가 타고 갈 보잉737 기종은 약 2만 리터의 항공유를 넣고 8시간 정도를 비행할 수 있지만, 비행거리와 항공기 무게 등을 계산하여 가장 경제적인 방법을 찾는다고 한다. 급유는 11시 40분경에 마무리됐다.
11시 25분 : 승객들이 모두 내리자 대기실 한쪽에 승객들과 함께 대기하던 새로운 조종사 2명, 객실승무원 4명이 항공기에 탑승했다. 승객들이 내릴 무렵부터 탑승교 아래에 대기하던 10여 명의 청소원들이 탑승교에 연결된 별도의 철제 계단을 통해 항공기에 올랐다. 쓰레기를 담을 비닐과 간단한 청소도구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15분 만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다시 탑승교 아래 지상으로 내려와 트럭을 타고 사라졌다.
11시 35분 : 수하물을 내리는 작업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다시 싣는 작업이 진행됐다. 터그카가 돌리를 달고 오갔는데, 태우고 갈 승객들의 수하물을 가득 실은 돌리 여러 칸이 인근에 대기 중이었다.
11시 40분 : 항공기 앞에 대기 중이던 토잉카(Towing car)가 항공기와 결속되었다. 항공기는 스스로 후진할 수 없어서 토잉카가 후진을 돕는다. 토잉카는 크기에 비해 강력한 견인력을 갖추고 있어서 활주로의 작은 거인이라는 애칭이 있다.
11시 45분 : 항공기에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울렸다. 더 이상 계류장 쪽을 관찰할 수는 없었다.
12시 05분 : 항공기의 출입문이 닫혔다. 공항에서 항공기의 출입문이 열려있는 동안, 이 항공기는 정비사 몫이었다. 잠시 후 토잉카가 항공기를 밀기 시작했고 유도로까지 진입시킨 후 이탈했다. 이제 항공기는 스스로의 힘으로 활주로로 향했다. 비 내리는 계류장에서 2명의 정비사들이 손을 크게 흔들고 있었다.
공항의 시설환경이나 항공기의 기종, 운항스케줄 등에 따라 턴어라운드 시간은 각각 다르다. 계류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상조업자’라고 한다. 조업자는 보조자가 아니라 직접 기계 등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공항에서의 60분은 마치 자동차경기 포뮬러원(F1)의 정비사(Crew)들과 같이 바쁘게 움직이는 팀워크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날의 활주로, 숨 막히는 복사열로 이글거리는 여름날의 계류장,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항공기를 하늘로 이끌어 올리는 힘은 추력이나 양력이 아니라 어쩌면 지상조업자로부터 나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