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장 개장 직전 “위법 소지” 유권해석
“당국, 뒤늦은 대응” 비판나와
KB증권 등 “비트코인 외 가상자산 선물 ETF도 거래 보류”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승인 이후 금융당국의 다소 미흡한 대응으로 업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전날 오후 5시 30분∼6시께 국내 증권사들에 '미국 증시에 상장되는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는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한국시간 기준 전날 새벽 SEC가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승인을 공표한 지 약 12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증권사는 고객들에게 상장 첫날부터 매매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가 부랴부랴 공지를 수정했다. 오후 들어 언론을 통해 당국의 '중개 불가' 지침이 알려지면서 증권사 내 실무 부서에서는 혼선을 겪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당시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장 개장까지 불과 5시간을 앞두고서야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며 "지속적으로 당국과 소통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미 SEC의 상장 승인은 가상자산·증권업계에서 거의 기정사실화한 결정인 데다가 승인 시한 역시 1월 10일(현지시간)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당국으로서는 충분히 대비가 가능했지만 명확한 지침은 상장 승인 12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내려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 SEC가 갑작스러운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고 최소 수 주일 동안 대비가 가능했는데 당국이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며 "사실상 업무를 게을리한 것 아니냐"며 질타했다.
미래에셋증권 등 일부 증권사들은 이번 SEC의 상장 승인 이전 미국 외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 매매를 뒤늦게 막기도 했다. KB증권은 이날부터 비트코인이 아닌 다른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해외 선물 ETF 신규 매수를 모두 제한하고 매도만 가능하게 조치했다.
KB증권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을 기초로 하는 ETF에 대해 금융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기 전까지 가상자산 선물 ETF의 신규 매수를 제한하게 됐다"며 23개 종목의 거래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이른바 '서학개미'들이 순매수한 '2x Bitcoin Strategy ETF'(티커 BITX)도 포함됐다. 국내 투자자들은 작년 한해 동안 BITX를 2500만달러어치 순매수했다.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는 2021년 2월부터 캐나다, 독일, 호주 등 주식시장에 상장되기 시작해 2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시 접근성이 높지는 않은 데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보다 유선전화 주문을 받는 시장이 대부분이라 국내에서 투자된 액수가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전에는 매매가 허용된 상품을 갑작스럽게 보류시켰다는 점에서 정책의 일관성이 깨졌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미국 ETF가 너무 화제가 돼서 막은 거고 그 외 현·선물 ETF는 그냥 방치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