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과업 겨우 끝냈더니
헤라의 광기에 또 휘말려
치욕의 3년 노예 생활 뒤
억울한 최후-빛나는 영광
<동행하는 화가>
에두아르 조셉 단탄
귀도 레니
루카 조르다노
편집자주
〈후암동 미술관〉은 그간 인간의 세계를 담은 예술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제 시간을 크게 앞당겨 신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명화와 함께 읽어봅니다. 기사는 여러 참고 문헌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지난 이야기 헤라의 음모에 휘말려 열두 개의 과업에 임했던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를 잡아오라'는 마지막 과업까지 마친 후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잠깐의 여유를 즐긴 헤라클레스는 그의 궁술 스승인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리스토스가 활쏘기 시합을 연다는 소식을 접한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는 헤라의 농간에 또 휘말리고,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에게 노예로 팔려가는 수모를 겪는다.
‘노리개’가 된 영웅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나의 사랑스러운 근육질 노예야."
리디아의 아름다운 젊은 여왕 옴팔레가 헤라클레스의 등을 슥 쓸었다. "어때? 내가 너무해?" 그녀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 앞에서 헤라클레스는 작은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헤라클레스는 화려한 여자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에는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달고, 얼굴에는 색조 화장까지 했다. 솥뚜껑만한 손으로 쥐고 있는 건 바느질 도구였다. 아궁이만한 발로 밟고 있는 건 물레 페달이었다. 시녀들은 그의 뒤에서 연신 꽃가루를 뿌렸다. "하긴. 3년간은 내 말에 복종해야 하는 네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옴팔레는 얄밉게 웃었다. 그녀는 헤라클레스가 피부처럼 여긴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덮어쓰고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분신으로 삼은 몽둥이를 깔고 앉고 있었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조셉 단탄(1848~1897)이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당시 구도를 절묘하게 그렸다. 쪼그려 앉은 헤라클레스는 옴팔레를 우러러보는 듯하다.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옴팔레는 그의 몽둥이를 만지작거리며 여유롭게 누워있다. 독일 화가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의 그림은 다소 익살맞다. 옴팔레의 시녀에게 둘러싸인 헤라클레스는 어울리지도 않는 여장을 한 채 다소곳이 앉아있다. 시녀들은 그런 헤라클레스를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모습이다.
"나의 노예야."
옴팔레가 헤라클레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이제 궁으로 가야 해. 어서." 그녀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잠시 멈칫했다. 이내 눈을 질끈 감고는 말처럼 엎드렸다. 옴팔레는 그의 넓은 등에 올라탔다. "좋아. 네 발로 출발!" 세계 최강의 영웅에게 이런 짓을…? 헤라클레스 입장에선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앞서 헤라클레스는 그의 궁술 스승이자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리스토스의 활쏘기 대회에 출전했다. 전쟁의 신 아레스의 괴물 새 떼도 쏴 죽였던 헤라클레스에게 맞수는 없었다. 당연히 일등이었다. 대회 주최자인 에우리스토스의 고민에 빠졌다. 그는 우승자에게 자기 딸 이올레와 결혼할 자격을 주겠다며 큰소리를 치곤 했다. 에우리스토스는 헤라클레스가 가정의 신 헤라의 미움을 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광기에 홀린 헤라클레스가 함께 살던 옛 아내와 아이를 때려죽인 일 또한 전해들었다.
"…그러니까, 이올레와의 결혼은 없던 일로 하는 걸 이해해 주게."
에우리스토스는 기대에 찬 헤라클레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자존심이 상한 헤라클레스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헤라클레스에게 에우리스토스는 더는 스승이 아니었다. 사기꾼이자 거짓말쟁이였다. 그는 나라에서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즈음 에우리스토스가 애지중지하던 암말들이 사라졌다. 알고 보면 범인은 따로 있었지만, 에우리스토스와 주변 이들은 앙심을 품은 헤라클레스의 소행으로 확신했다.
에우리스토스의 아들 이피토스가 헤라클레스를 찾아갔다.
그는 헤라클레스의 결백을 믿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때 헤라가 헤라클레스에게 또 한 번 광증을 불어넣었다. 갑자기 서러움에 북받친 헤라클레스는 죄 없는 이피토스를 절벽으로 밀어 죽였다. 가족을 죽인 죄로 열두 과업을 행한 그가 또다시 살인죄를 저질렀다. 헤라는 늘 그랬듯 이번에도 모른 척을 했다. 이를 지켜본 전령의 신 헤르메스가 보다못해 내려왔다. "내가 어떻게든 수습해 볼 테니, 자네도 그사이 대가를 치르기는 해야 해." 헤르메스가 절망한 헤라클레스를 일으켜세웠다. "자처해 노예시장으로 가게. 자네를 사는 이가 누구든, 그에게 3년간은 복종을 맹세하게." 이 과정에서 헤라클레스를 사들인 이가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였다.
겸손을 배우다
"노예야. 너, 농작물 파헤치는 야생 멧돼지를 한 번 잡아볼래?"
분명 처음에는 농담이었다. 힘이 좋아도 너무 좋은 모습에 그냥 해본 말이었다. 그 말을 잠자코 듣던 헤라클레스는 다음 날 온 동네 뒷산을 뒤져 멧돼지를 싹 다 때려잡았다. 그 사체를 보란 듯 산처럼 쌓았다. "음…. 우리 성벽 일대에서 활동하는 도적 떼도 잡아볼 수 있을까?" 얼마 후 헤라클레스가 녀석들을 묵사발로 만들었다는 소식이 닿았다. 헤라클레스는 나아가 적군의 침공도 막고, 아군의 반란도 잠재웠다. 이 사내를 놀려먹기에만 바빴던 옴팔레는 뒤늦게 그의 참모습을 알아차렸다. 눈빛이 차츰 바뀌었다. 어느새 헤라클레스와 사랑에 빠진 옴팔레는 그와 리도스, 알카이오스 등 자식을 뒀다. 노예가 되고 3년째가 된 그날, 옴팔레는 깔끔하게 그의 사슬을 풀어줬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자유였다.
헤라클레스는 치욕과 복종의 시간을 보내며 뼛속 깊이 겸손을 익혔다고 한다.
옴팔레가 헤라클레스의 사자 가죽과 몽둥이를 강탈한 게 아니라, 헤라클레스가 이를 직접 빌려줬다는 말도 있다. 어린 여성의 몸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그녀에게 더 큰 용기를 주기 위해 그랬다는 설이 따라온다. 영국 화가 바이엄 쇼(1872~1919)는 헤라클레스의 장비로 무장한 채 선 옴팔레를 그렸다. 그녀는 자기 키만한 몽둥이, 자기 덩치보다 더 큰 사자 가죽과 함께 당당하게 섰다. 내려다보는 눈, 상기된 두 볼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녀 뒤에는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이 하나씩 그려져있다.
켄타우로스의 피
떠돌이와 다름없는 헤라클레스가 간 곳은 아켈로스강과 에베노스강 사이 터를 잡은 나라 칼리돈이었다.
소식을 들은 칼리돈의 왕 오이네우스는 이 역전의 용사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오이네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자기 딸 데이아네이라도 소개했다. 헤라클레스는 곧 데이아네이라와 결혼도 할 수 있었다. 왕 오이네우스의 사위가 된 그는 수시로 전장에 나서 승전고를 울렸다. 그러다 실수로 왕의 조카를 적으로 오인해 죽이고 말았다. 모두가 헤라클레스에게 고의가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법상 그는 쫓겨나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헤라클레스는 아내 데이아네이라와 함께 짐을 쌌다. 이번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일단 걸었다. 이들 앞에 길쭉한 강이 펼쳐졌다. 돌아가기에는 먼 거리였다. 헤라클레스야 문제없었지만, 데이아네이라는 자칫 휩쓸릴 수도 있었다.
"젊은이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수풀에서 켄타우로스 네소스가 등장했다. "나한테 배 한 척이 있소. 돈만 주면 태워다드릴게." 기다렸다는 듯 제안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혼자,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의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로 했다. 사실 네소스도 그러기를 바랐다. 데이아네이라의 외모에 반한 그는 배 위에서 그녀를 겁탈할 생각이었다. 남편의 정체가 헤라클레스라는 걸 알았다면 그릇된 욕망을 품지 않았을지 모른다. 네소스가 배 위 데이아네이라를 덮치려고 하는 그때, 반인반수인 그의 심장에 히드라의 독화살이 내리꽂혔다. 어느새 배보다 더 빨리 강을 건넌 헤라클레스가 쏜 것이었다. 이미 네소스를 수상하게 보고 있던 그가 망설임 없이 활시위를 당긴 것이었다.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이었다.
이탈리아 화가 귀도 레니(1575~1642)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네소스와 데이아네이라'가 이 이야기를 담은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기회를 엿본 네소스가 데이아네이라의 옷을 잡아당기며 냅다 뛰고 있다. 이미 몸의 반은 강물에서 빠져나왔다. 데이아네이라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역력하다. 헤라클레스는 네소스의 이런 돌발 행동을 뒤에서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플랑드르 화가 다비드 빈크본스(1576~1631)는 몹쓸 짓을 하려던 네소스가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에 심장이 뚫린 모습을 표현했다. 고통에 울부짖는 네소스의 표정이 리얼하다. 그는 독화살을 뽑기 위해 힘을 주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가슴팍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이탈리아 화가 세바스티아노 리치(1659~1734)는 그런 묘사로는 부족하다고 봤는지, 헤라클레스가 몸소 몽둥이로 네소스를 사정없이 치는 장면을 내놓았다. 잔혹한 응징을 보는 데이아네이라가 외려 네소스를 안쓰럽게 보는 듯도 하다.
"부인. 내 잘못을 인정하겠소. 그러니…." 네소스는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 데이아네이라에게 손짓했다. "사실 내 피는 사랑의 묘약이니 받아두시오. 저 늠름한 사내도 언젠가는 실수할 날이 올 테니, 그때 이 피를 그의 옷에 발라두시오. 그러면 다시 당신을 사랑하게 될 테요." 순진한 데이아네이라는 그 말을 믿었다. 히드라의 독화살을 맞은 그 순간부터 그의 피 또한 맹독을 품게 됐음을 모른 채. "복수했다. 복수했어." 네소스의 혼잣말을 데이아네이라는 끝내 듣지 못했다.
의심은 비극을 부르고
이들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트라키아였다.
헤라클레스는 잠깐의 평화를 즐겼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화나는 기억이 있었다. 활쏘기 대회에서 우승하면 자기 딸을 준다고 해놓고선 입을 싹 닫아버린 에우리스토스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그 거짓말 때문에 온갖 못 볼 꼴을 본 셈이었다. 에우리스토스는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신의 비호도 받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는 즉, 그가 마음만 먹으면 복수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헤라클레스는 병사를 모았다.
지상 최고의 영웅과 함께 뛰고 싶은 이들이야 많았다. 헤라클레스는 손쉽게 오이칼리아를 칠 수 있었다. 그는 에우리스토스를 죽였다. 원래대로라면 그와 결혼했어야 할 딸 이올레도 포로로 잡았다. 원하던 복수를 끝낸 헤라클레스는 아버지 제우스에게 제사를 올리려고 했다. 고마움의 표시였다.
"내 아내 데이아네이라에게 가서 가장 깨끗한 옷을 받아오게."
그의 명령을 받은 전령이 데이아네이라를 만났다. "헤라클레스께서 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에우리스토스를 죽일 수 있었군요." "네. 게다가…." 전령이 뒤늦게 말을 멈췄다. 하지만 한 번 쏟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게다가? 어서 말해보세요." "그…. 이올레를 포로로 잡고 계십니다." 이 사람이 설마…?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와 이올레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남편과 결혼할 수도 있었던 여자가 남편 옆에 있다는 말에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이아네이라는 어쩌면 헤라클레스가 자기보다 이올레를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젖었다. 이때 음흉한 켄타우로스 네소스를 떠올렸다. "…내 피는 사랑의 묘약이니 받아두시오." 그 말도 함께 되새겼다. 데이아네이라는 네소스의 피를 헤라클레스의 새 속옷에 구석구석 발랐다. 그렇게 해 자신을 향한 사랑이 흔들림 없이 이어지길 바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헤라클레스는 전령이 받아온 그 옷을 입고 제사를 지냈다.
네소스의 피에 스며든 히드라의 독은 서서히 퍼졌다. 이내 헤라클레스의 몸 전체로 번졌다. 헤라클레스는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은 벗을 수도 없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옷과 살점을 함께 쥐어뜯었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1598~1664)이 이 급박한 상황을 묘사했다. 헤라클레스는 뜨거운 독을 뿜어내는 옷을 마구 찢고 있다. 그의 뒤에서는 독화살이 꽂힌 네소스의 유령이 즐거운 듯 춤을 추는 듯하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히드라의 독은 헤라클레스의 핏줄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그의 피는 검게 물들었다. 힘줄이 모두 끊어졌다. 헤라클레스는 죽지도 못했다. 불로불사의 힘을 안겨주는 헤라의 젖을 먹은 탓이었다. "어서…. 어서 빨리 나무 장작을 높이 쌓거라." 헤라클레스가 병사들에게 요청했다. 그는 뒤틀린 채로 장작더미 꼭대기에 올라섰다. "내 육신이 잿더미가 되도록 불을 붙여라!" 헤라클레스가 소리쳤다. 하지만 감히 먼저 나서는 이가 없었다.
"불을 붙이는 이에게 내 몽둥이와 히드라의 독화살을 다 주겠다. 부디 한 명만 내 부탁을 들어다오."
헤라클레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귀도 레니의 '장작더미 위의 헤라클레스' 속 헤라클레스는 연기에 둘러싸인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이탈리아 화가 루카 조르다노(1634~1705)의 그림은 보다 노골적이다. 헤라클레스는 끝없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옷이야 뜯을 만큼 뜯었지만, 몸 전체로 퍼진 아픔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 듯하다. 그의 사자 가죽도 장작에 맥없이 깔려있다. 하늘에서는 제우스가 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때가 됐다는 듯한 모습이다.
한 나그네가 이 소동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보다 못한 그가 결국 불을 붙였다.
훗날 트로이 전쟁에 출전하는 필록데테스의 아버지 포이아스(혹은 필록데테스 본인)였다. 파란만장한 생을 보낸 영웅의 최후였다. 훗날 헤라클레스의 최후를 전해 들은 데이아네이라는 죄책감에 휩싸여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마침내, 기간테스와의 전쟁
"잘 왔다."
헤라클레스가 눈을 떴다. 그는 올림포스 신전에 있었다. 헤라클레스 곁에는 아버지 제우스, 그의 다사다난한 삶에 도움을 줬던 곡식의 신 데메테르, 지혜의 신 아테나, 전령의 신 헤르메스 등이 있었다. 헤라클레스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가정의 신 헤라, 저승의 신 하데스, 전쟁의 신 아레스 등도 함께였다.
벨기에 화가 장 밥티스트 드 샹페뉴(1631~1681)는 헤라클레스가 하늘로 올라간 그 장면을 그렸다.
제우스를 필두로 삼지창의 포세이돈, 투구의 아테네, 갑옷의 아레스, 월계관의 아폴론, 화살통을 걸친 아르테미스, 날개 달린 모자의 헤르메스에 숨은 채 고개만 든 하데스 등 올림포스 신전의 주역들이 우르르 몰려온 모습이다.
'기간테스(Gigantes)가 올림포스를 침공하리라. 녀석을 막기 위해선 위대한 인간 영웅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다….'
제우스는 과거의 신탁을 곱씹었다. "이제 곧 신탁이 이뤄지겠군." 그는 홀로 생각했다. 과연 그랬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자식 기간테스에게 거듭 분노를 밀어 넣고 있었다. 앞서 제우스의 남매들은 가이아의 또 다른 자식 티탄족과도 전쟁을 벌였다. 이른바 티타노마키아였다. 당시 가이아는 더 부드러운 면을 보인 제우스를 지지했다. 하지만 제우스가 티탄족에게 말도 안 되는 형벌(아틀라스가 하늘을 들고 있던 이유였다)을 주고, 땅속 깊숙한 타르타로스에 가두자 배신감이 치밀었다. 가이아는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기간테스를 낳았다. 이들에게 반란의 씨앗을 심었다.
인간의 상체, 뱀의 하체를 가진 거대한 기간테스는 예고도 없이 올림포스 신전을 침공했다.
바위를 으깨 맹렬히 던지고, 뿌리째 뽑은 나무를 마구 휘둘렀다. 늘 그랬듯 제우스와 포세이돈, 하데스가 앞장섰다. 아레스와 아테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등 힘깨나 쓰는 신들도 나섰다. 그리고 여기서조차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 그가 신들 틈에서 함께 섰다. 생전에 온 세상 괴물을 다 때려잡고 온 헤라클레스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그의 손에 잡히면 머리든, 팔이든, 꼬리든 어디 하나는 뽑혀 나갔다. 제우스도 기겁할 만큼의 위력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기간테스의 우두머리 알키오네우스를 우주 끝까지 던져버렸다.
기간테스 사이에서 최고의 전사로 꼽힌 포르피리온은 화살로 벌집을 만들었다. 헤라클레스를 일생의 원수로 생각한 헤라가 이 영웅을 달리 보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포르피리온에 활을 쏜 그때, 이 괴물은 헤라를 겁탈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바이유 이 수비아스(1734~1795)가 이 전쟁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밑부분 가운데 있는 남성이 이 그림의 주인공이라는 데 부정할 이는 없을 것이다. 사자 가죽을 쓴 채 몽둥이를 휘두르는 전사, 주변의 기간테스를 기겁하게 만든 영웅, 헤라클레스다. 그 강력한 제우스도 멀리서 번개만 던지고 있다. 그 용맹한 아테나도 헤라클레스 뒤에서 전투를 하고 있다. 헤라클레스는 기간테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그 덕에 제우스와 포세이돈, 아폴론, 아르테미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등이 기간테스를 제압했다. 아테나를 아내로 삼겠다고 큰소리친 엔켈라도스는 아테나가 통째로 던진 섬에 깔리고 말았다. 헤라클레스를 앞세운 올림포스 신들이 기간토마키아의 최종 승자였다.
여신의 사과를 받다
"내 아들아. 헤라가 할 말이 있다고 하는군."
전쟁을 마친 후 숨을 고르고 있는 헤라클레스에게 제우스가 다가왔다. 제우스의 옆에는 헤라클레스를 평생 죽도록 괴롭힌 헤라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음. 그러니까…." 헤라가 겨우 입을 뗐다. "너무 염치없는 말이지만…. 미안했어." 헤라의 사과였다. "자네가 없었다면 무슨 험한 꼴을 당했을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 정식으로 용서를 구하겠어." 그 자존심 센 헤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헤라클레스는 만감이 교차했다. 헤라가 광기를 밀어 넣은 탓에 죽인 첫 아내와 아이들, 이로 인한 지옥 같던 열두 과업, 또다시 3년간의 노예 생활, 그 사이사이에 있던 진절머리나는 역경들…. 결국 다 헤라 탓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헤라로 인해 겪은 그간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헤라는 모든 가정의 수호신으로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임무이자 숙명이 그런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자기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지조차 몰랐다. 그는 헤라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전쟁에 임하는 모습이 딱 내 스타일이었어. 내 괴물 새 떼를 죽인 일도 없던 일로 하겠어."
전쟁의 신 아레스가 뒤에서 소리쳤다. "자네 때문에 케르베로스가 아직도 의기소침하게 있어." 하데스도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씩 웃었다. 이제 올림포스의 모든 신이 헤라클레스를 인정했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딸인 청춘의 신 헤베를 아내로 맞이해 영원한 신의 자리에 올랐다.
젊음을 상징하는 헤베는 수많은 화가가 가상의 뮤즈로 삼고 아름답게 그린 여인이다. 프랑스 화가 카를로스 뒤랑(1837~1917)는 헤베를 제우스의 독수리에 올라탄 해사한 처녀로 그렸다. 헤베는 올림포스 신들에게 신의 음료 넥타르와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를 나눠주는 일을 했는데, 그림 속 그녀는 넥타르를 따르고 있다. 프레드릭 베스틴이 그린 헤베 또한 젊고도 우아한 자태로 뽐낸다. 헤라클레스와 헤베는 영원히 소년으로 있는 쌍둥이 알렉시아레스와 아니케토스를 자식으로 뒀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중 상당수는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의 몽둥이는 그런 말로(末路)마저 저 멀리 후려칠 수 있었다. 그는 이제 힘과 용기의 신이었다. 그렇게 온 세상 통틀어 최고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쿠키 : 또 놀란 하데스
"어이."
"…."
"이보게. 자네는 왜 저승까지 와서 이렇게 앉아있는가?"
'저승의 수문장 케르베로스를 잡아오라.' 열두 과업 중 마지막 과업을 위해 저승에 온 헤라클레스는 아주 낯익은 사내가 하데스 옆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봤다. 헤라클레스가 연신 뺨을 쳤다. 그럼에도 그는 말도 없고, 미동도 없었다. 식물인간이 된 모습이었다. 하데스는 헤라클레스의 행동을 보고 킬킬거렸다.
"저 녀석? 한 번 앉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의자에 앉아…."
하데스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헤라클레스가 이 사내의 몸을 잡아당기더니, 무 뽑듯 의자에서 빼낸 탓이었다. "큰아버지. 뭐라고요?" "아, 아니…." 헤라클레스가 되묻는 동안 하데스는 올라오는 딸꾹질을 겨우 참았다. 정말 엄청난 괴력이었다. 오죽하면 이 사내의 엉덩잇살은 의자에 그대로 붙어있었다. "이 사람은 제 친구예요. 녀석도 함께 케르베로스와 함께 데려가겠습니다." "그… 그래." 맑은 눈의 광인처럼 선 헤라클레스 앞에서 하데스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헤라클레스가 얼떨결에 구한 이의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또 다른 영웅 테세우스였다. 그는 어쩌다 저승에 내려와 '망각의 의자'에 앉게 된 것일까. ▶‘미궁의 남자’ 테세우스 이야기가 다음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에두아르 조셉 단탄(Edouard Joseph Dantan·1848~1897)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나서 중위 계급까지 받았다. 주로 신화와 종교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등 집안에 조각가가 많았는데, 여기에도 영향을 받아 조각 작업장의 장면도 실감 나게 그리기도 했다. 3차례 이상 파리 살롱전에서 심사위원을 맡는 등 살아있을 때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귀도 레니(Guido Reni·1575~1642)이탈리아 출신의 화가. 카라치 일가(家)의 아카데미에서 배우고, 이후 카라바조의 영향도 받은 바로크 화풍의 예술가다. 우아한 인체 표현, 풍부한 색채, 특유의 밀도 높은 분위기 등으로 전성기 시절에는 제2의 라파엘로로 불렸다. 아카데미즘을 중요하게 여긴 19세기까지는 기교의 미술사라는 평을 받는 등 최고 화가 반열에 올라가 있었다. 개성에 높은 점수를 주기 시작한 20세기 들어서 외려 이름값이 떨어졌다.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1632~1705)이탈리아 출신의 화가로, 17세기 당시 최고의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나폴리와 피렌체,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돌며 그림을 그렸다. 이어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의 초청을 받아 마드리드와 톨레도 등에서도 작품 활동을 했다. 당시 스페인이 범국가적인 대규모 프로젝트로 건설에 나선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에 천장화를 남기기도 했다. 별명은 '루카 파 프레스토(Luca Fa Presto)'. 일단 작업을 맡기면 엄청나게 빨리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2022년 4월부터 매주 토요일 발행하는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는 방대한 내용과 자료의 미술 스토리텔링 연재물로 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가상의 시설 후암동 미술관을 세계관으로 두는 이 칼럼은 ▷이론편 ▷인물편 ▷현장편 ▷작품편 ▷신화편 ▷현대미술편 등 여러 특별전을 선보이며 지금도 앞장서 도전과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돕는 풍성한 미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 이야기는 ①편부터 읽으시면 그의 생을 따라가며 예술가 39명의 작품과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그리스 신화, 아폴로도로스, 민음사
변신 이야기, 오비디우스, 민음사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웅진지식하우스
해밀턴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디스 해밀턴, 현대지성
〈후암동 미술관 작품 편 읽는 순서〉
1)“내 딸이 얼어죽을뻔 했어!” 식은 욕조에 女모델 뒀다가 소송갈 뻔한 사연[후암동 미술관-존 에버렛 밀레이 편] - 오필리아 (2023. 9. 2.)
2)“그녀 남친을 제가 죽였어요” 짝사랑 훔쳐보던 괴물, 무슨 짓을 벌였나[후암동 미술관-오딜롱 르동 편] - 키클롭스 (2023. 9. 16.)
3)“몸값만 900억원 이상!” 13명 품에 안긴 男실종사건…정말 화형 당했나[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가셰 박사의 초상 (2023. 9. 30.)
4)“그남자 목을 주세요” 춤추는 요부의 섬뜩한 유혹…왕은 공포에 떨었다[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모로 편] - 유령(환영) (2023. 10. 14.)
5)“전염병이 내 아기 다섯을 죽였어요” 피눈물 아빠가 본 ‘사신’은 이랬다[후암동 미술관-아놀드 뵈클린 편] - 페스트 (2023. 10. 28.)
6)“이리 올래?” 나체女가 급히 감춘 ‘특별한’ 신체부위…섬뜩한 실체는[후암동 미술관-존 콜리어 편] - 육지의 아이 (2023. 11. 11.)
7)“차르 축출하겠다” 반란, ‘가장 위험한 야망女’ 움직였다…그 결말은[후암동 미술관-일리야 레핀 편] - 알렉세예브나 소피아 황녀 (2023. 11. 25.)
〈후암동 미술관 신화 편 읽는 순서〉
1)“독수리가 간 쪼아도 참는다” 최악고문 받는 男, 무슨 사연[후암동 미술관-프로메테우스 편] (2023. 9. 9.)
2)“도저히 못참겠어” 봉인 푼 그녀, 외마디 비명…惡은 그렇게 쏟아졌다[후암동 미술관-판도라 편] (2023. 9. 23.)
3)“네 엄마 뼈를 던져라” 화들짝 놀란 명령…울면서도 할 수밖에[후암동 미술관-데우칼리온 편] (2023. 10. 7.)
4)“앗, 아파” 근육질 아기가 빨아들인 모유…뻥 걷어차고 싶었지만[후암동 미술관-헤라클레스 편] (2023. 10. 21.)
5)“절세미녀 셋이 있는 곳에 가쇼” 근육男은 공포에 떨었다…무슨 일[후암동 미술관-헤라클레스 ②편]
6)“너, 내 노예가 돼라” 살인죗값 다 치렀는데…이번엔 또 웬 날벼락[후암동 미술관-헤라클레스 ③편]
7)“나랑 3년 노예계약해” 여왕과의 동거…‘강제여장’ 굴욕까지 참았더니[후암동 미술관-헤라클레스 완결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