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2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이번 전쟁은 군사적으로는 하마스에 기습을 허용한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가 부각된 사례다. 이 실패는 미국이 1941년에 당한 진주만 기습이나 이스라엘이 1973년에 겪은 욤키푸르 전쟁 초기 기습에 비견될 정도다.
진주만 기습을 허용한 미국의 정보 실패는 국력이 절대적으로 열세한 일본이 선제 공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집단사고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리고 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는 그전까지 중동전쟁에서 거듭 승리해온 이스라엘이 적을 과소평가하고 스스로의 억제력을 과대평가했던 결과라고도 한다. 이처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의 정보 실패는 유사한 과거 사례들과 비유되고 있는데 이를 ‘역사적 유추(아날로지)’라고도 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정치지도자가 역사적 유추를 활용해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한다고 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뿐 아니라 하마스에도 비유해볼 수 있다. 그럴 경우 진주만 기습에서 미국의 정보 실패를 이스라엘에 비유했던 것처럼 일본의 기습 공격 결정을 하마스의 상황 판단에 비유할 수도 있다.
진주만 사건 당시 일본은 미국의 석유 금수 조치 때문에 조만간 고사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만했으므로 더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전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례로부터 오늘날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와 가자지구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질 것이라는 하마스의 상황 판단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욤키푸르 기습 사례에서도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집트의 기습 공격 결과에 대한 예측을 오늘날의 하마스에 비유해볼 수 있다.
1973년 당시 이스라엘에 계속 패전해왔던 이집트는 앞으로도 완전한 승리는 기대할 수 없지만 제한적인 승리는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그래서 이집트는 기습적으로 수에즈운하를 건너 이스라엘의 바레브 방어라인을 돌파한 직후 휴전 협상에 돌입한다는 제한적인 승리를 목표로 전쟁을 시작했다. 이 사례로부터 하마스는 2007년부터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4차례의 전쟁에서 패배했으므로 이번 기습 공격으로 제한적 승리를 기대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이렇듯 진주만과 욤키푸르 전쟁은 하마스의 판단을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례에서는 공통적으로 기습 공격한 쪽이 궁극적으로는 패전했는데 이와 달리 기습 공격 후 결과적으로 승리했던 역사적 유추 사례도 있다. 1968년 1월 베트남 전쟁에서 약자인 베트남이 강자인 미국에 감행한 테트(Tet) 공세 사례가 그것이다. 당시 베트남은 남부 베트남 전 지역에서 미군과 남베트남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남베트남 군대의 반란이나 대규모 대중 봉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베트남의 공세는 군사적으로 모두 격퇴당했다.
그때부터 미국의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트 공세를 계기로 미국민은 미군이 승리하고 있다는 믿음을 거두기 시작했고, 전쟁 반대 여론이 힘을 얻게 됐다. 그 결과,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을 포기하게 됐고, 프랑스 전략가 앙드레 보프르는 테트 공세의 목적이 군사적이기보다 심리적이었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베트남 테트 공세 사례처럼 하마스는 지상 전투에서 고전하고 있지만 국제여론의 동향은 하마스에 불리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정치적으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을 고립시킬 수 있었던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국교 협상은 일단 속도 조절에 들어갔고,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팔레스타인 지지, 가자에서의 전쟁 중단 촉구운동이 확산되는 조짐이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 공격이 계속될수록 가자에서의 인도주의 위기와 민간인 피해는 증가될 것이며, 그럴수록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여론도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로서는 가자지구 지상전을 최단시간 내 희생자를 최소화하며 끝내고 이어서 정치적 안정까지 달성해야 역사적 유추 사례로 진주만과 욤키푸르에 이어 베트남 테트 공세 사례까지 비유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정보 실패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세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국제여론을 조성하는 미디어전쟁 속에서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군사적으로 열세했던 우크라이나가 미디어전쟁을 통해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만든 바가 있다. 이처럼 미디어전쟁에서 국내외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의 선점, 그 명분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의 군사작전 그리고 필요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등은 역사적 유추 사례에서나, 오늘날의 전쟁에서나 우리가 찾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