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원화채권 순매수 강도 3분기 약화
4분기 은행채 발행한도 제한 해제에 물량 부담
“회사채 시장, 수요·공급 모두 비우호적 환경”
[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채권시장이 미국발(發) 고금리 충격, 외국인 수급 약화, 은행채 등 우량물 발행 급증 우려 등으로 다시금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안정을 되찾은 뒤 1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각종 불확실성이 산적해 수요와 공급 모두 비우호적이라며 회사채 시장의 약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10일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의 월별 원화채권 순매수액은 하반기 들어 최근 3개월 연속 9조원대를 밑돌고 있다. 올해 2월부터 원화채권 순매수세를 보여온 외국인은 3월(12조9000억원), 4월(9조1000억원), 5월(17조6000억원), 6월(14조30000억원) 등 2분기까지 대량 순매수를 이어왔으나 7월(8조3000억원), 8월(8조7000억원), 9월(8조4000억원) 등 3분기에는 매수 강도가 약화했다.
외국인이 주로 투자하는 국고채와 통안증권의 경우 2분기 외국인 순매수액은 각각 21조2500억원, 11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고채 순매수액은 서울 채권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이래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3분기 외국인의 국고채 순매수액은 14조4000억원, 통안증권은 4조7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2분기 대비 각각 32%, 58% 감소한 수준이다.
상반기 외국인의 수급이 몰린 배경에는 9월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기대하고 외국인이 선취매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우리나라 국채가 WGBI에 편입될 경우 최대 700억달러(약 94조원)에 달하는 외부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고 본다. 통상 정식 편입 전 3∼6개월 전부터 편입을 기대한 액티브 펀드의 자금이 먼저 들어온다.
지난 9월 추석 연휴 기간 WGBI 편입은 불발돼 기회는 내년으로 넘어간 상태지만, 내년에도 WGBI 편입이 불발될 징후가 발견될 경우 외국인 수급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채권에 대한 외국인들의 긍정적인 시각이 현재처럼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방 등) 추가 정책이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할 것”이라며 “만약 제도 개선과 관련해 잡음이 발생하거나 시행 시기가 지연될 경우 외국인들의 원화 채권 매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미국 국채 금리 급등 속 한국 국고채 시장도 상당한 약세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외국인과 같은 주요 매수 주체의 부재까지 가세할 경우 시장의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채권시장의 또 다른 불안 요소는 은행채와 공사채 등 우량물 발행이다. 금융당국은 4분기부터 만기 도래분의 125%였던 은행채 발행 제한을 풀기로 했다. 은행채 발행 한도에 막혀 필요한 자금을 채우지 못한 은행들이 4%대 초반의 높은 금리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하면서 단기자금시장이 불안정한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3.68%였던 CD 91물 금리는 월말 3.83%로 급등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은행채 발행 한도 폐지는 단기자금시장이 타이트해진 상황에서 CD 발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은행채도 예대금리에 영향을 주지만 CD보다는 시장성이 좋은 상품이고 만기도 분산할 수 있어 은행채 발행을 풀어주는 게 나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채권시장에서 초우량물인 은행채가 4분기에도 순발행을 이어갈 경우 자금 쏠림에 대한 우려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분기(10∼12월)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채는 46조2902억원 정도다. 여기에 최근 미국 국채 금리 급등에 미 국채와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국고채 금리도 크게 오르면서 크레디트 스프레드(회사채·국고채 간 금리차)도 확대되고 있다.
크레디트 스프레드가 확대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회사채의 위험부담을 크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안전 자산인 국채 금리가 크게 오르면 비우량 회사채의 투자 매력은 감소해 금리 차가 확대된다. AA- 등급 무보증 회사채 3년물 금리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를 뺀 값은 지난 6일 기준 78.4bp(1bp=0.01%포인트)로, 한 달 전(75.9bp)과 비교해 2.5bp 더 커졌다.
아직 시장에서 회사채 발행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고금리가 ‘뉴노멀’이 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더 이상 자금 조달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하면 회사채 시장 약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윤정 교보증권 연구원은 “최근 고금리 지속으로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조달을 선호하면서 회사채 발행량은 감소했다”며 “다만 최근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우세해져 빠른 금리 하향 안정화를 기대하기 어려워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내년까지 이연시킬 유인이 감소했으며 단기자금시장을 통한 조달도 여의치 않은 환경”이라고 짚었다.
이어 “금리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안전자산 선호로 회사채 대비 국고채 수요가 상대적으로 증가하며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 비우호적 환경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어 유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