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지난 23일 중국 항저우에서 개최된 2022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유독 눈길을 끈 대표팀이 있다. 남녀불문 똑같이 입은 흰색 트러커 재킷과 데님 팬츠 차림으로 등장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다. 기존 대표팀 단복과 전혀 다른 이 단복, 정장 일색인 다른 나라 단복과 비교하면 달라도 많이 달랐다.
‘군계일학’ 亞대표팀 단복 만든 곳, 무탠다드?
국가대항전 한국 대표팀 단복은 대대로 국산 대기업이 나서 제작해왔던 분야다. 다만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파리 올림픽부터는 무신사의 등판으로 그 판도가 다소 바뀌게 됐다. 격식있는 정장 스타일에서 벗어나 캐주얼한 트러커 자켓과 데님 팬츠가 등장한 것.
이날 선보인 단복은 선례와 비교하면 색상부터 파격이다. 상하의 색은 모두 흰색인 ‘올백’으로, 기존 국가대표팀 단복에 주로 등장하던 빨강, 남색, 검정 등 색을 모두 덜어낸 백의 민족 컨셉을 살렸다. 흰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선수들은 개회식 행렬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형형색색 단복들 사이에서 흰 색으로 무장한 한국 대표팀이 한 무리 학떼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처음엔 정장 스타일 단복도 시안에 있었어요.” 무신사가 기획한 단복 가운데는 과거 삼성물산, LF등도 제작했던 정장 스타일 시안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복궁에서 구찌 패션쇼가 열리는 2023년 아니던가. 20대가 대다수인 젊은 선수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지금의 디자인이 대한체육회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표팀 단복을 제작한 김지훈 무신사 스탠다드 맨즈디자인팀 디자이너는 “무려 1200여 명에 달하는 국가대표 선수단의 사이즈를 한 분 한 분 맞춰드린 대작업”이라고 제작 당시를 회고 했다.
기억에 남는 선수로는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에 빛나는 태권도 장준, 펜싱 김준호 선수를 꼽았다. 그는 “(두 선수는) 전문 피팅 모델보다도 단복이 잘 어울리더라”고 감탄했다. 장준 선수는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태권도 남자 58kg 이하급 동메달을 딴 뒤 ‘배우 이준기’ 닮은 꼴로 유명세를 탔다. 펜싱 대표로 출전한 김준호 선수는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은우 아빠’로 친숙하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단체전에 출전해 중국을 45대 33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달라진 단복에 대한 나이 지긋한 대표팀 감독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남자 하키 신석교 감독님은 처음엔 어색해 하셨지만 ‘젊었을 때 좋아하던 스타일이었는데 다시 입을 수 있게 돼 너무 좋다. 주말에 입고 나가면 가족들도 좋아할 것 같다’며 캐주얼 단복을 반기셨다”고 전했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과 함께한 무신사는 2024 파리올림픽대회 단복까지 책임지며 ‘국가대표’ SPA 브랜드를 향해 달린다.
亞 대표팀 단복 전쟁, 금메달은 어디로?…중국·일본·북한은 이렇게 등장
같은 날 한국 국가대표팀만큼이나 개최국 중국의 단복도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문양 덕택이다. 붉은 색을 사랑하는 중국은 이날 만큼은 파란색과 흰색으로 제작한 단복을 입고 등장했다. 단복의 이름은 ‘싱야오(星耀)’, 별이 빛난다는 뜻이다. 여자 선수들이 착용한 스커트와 남자 선수들의 넥타이엔 뒤엉킨 모란과 넝굴 문양이 가미됐다. 모두 활기찬 생명력의 상징이다.
해당 단복은 중국의 대표적인 남성복 기업인 지우무왕(九牧王·Joeone)에서 만들었다. 한국엔 생소한 기업이지만, 알고보면 한국 기업과도 인연이 깊다. 국산 SPA브랜드 탑텐을 보유한 신성통상이 중국 진출을 위해 조인트벤처를 설립한 업체이기 때문. 국내 정장 브랜드인 지오지아의 중국 진출 발판을 지우무왕에서 만든 인연이 있는 셈이다.
파란색과 흰색 조합 단복으로 등장한 나라는 더 있다. 북한(하단 사진)이다.
북한팀의 옷차림은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 지난 2018년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회식을 연상케 했다. 당시 남북 선수들은 한반도기의 색상과 같은 청색 하의와 흰색 재킷으로 똑같이 단복을 맞춰 입은 채 손을 맞잡고 입장했다. 그러나 남북이 따로 입장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파란색 계열의 셔츠와 바지에 흰 자켓, 분홍빛 넥타이 차림의 개성있는 색깔 조합을 선보였다.
붉은색 디자인의 단복은 일본 국가대표팀이 입었다. 한국이나 중국과는 다른 운동복 형태의 단복이다.
일본 단복은 일장기 속 붉은 색을 닮은 빨간색 상의와 검정색 하의로 구성됐다. 지난 2021 도쿄올림픽에서 골프 대표팀 등 일부 선수들의 유니폼이 욱일기 문양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던 일본. 이날은 장식적 요소가 거의 없는 단순한 운동복 형태로 다소 힘을 뺐다.
한국 대표팀 이외에 ‘올백’ 단복으로 등장한 나라도 있다. 쿠웨이트다. 다만 한 눈에 봐도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쿠웨이트 대표단 남자 선수들은 전통 복장 형태의 흰색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일부 대표단은 검은색, 파란색 의상을 입어 전원이 흰 옷으로 등장한 한국 대표팀과는 또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엔화 쓸어담아 올게요” 亞시장서 ‘국가대표’ 자처한 무신사
국가대표팀 단복을 만든 무신사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패션 시장에서 국가대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산 디자이너 브랜드를 해외시장에 소개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
일본 관광객이 줄을 서서 구입한다는 ‘마르디 메크르디’를 도쿄, 나고야 등 현지에서 팝업스토어로 알린 것도 무신사였다. 2018년 출시된 신생 브랜드가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서 ‘한국에서 꼭 사야 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뒷배다. 무신사는 2021년 설립한 첫 해외 자회사인 ‘무신사 재팬’을 통해 제2의 마르디 메크르디를 발굴할 계획이다.
국가대표를 자처한 무신사는 일본 간판 SPA브랜드 유니클로의 자리를 대체할 새로운 스탠다드를 꿈꾼다. 이달 22일 ‘대구의 명동’ 동성로 한복판에 문을 연 무신사 스탠다드 플래그십스토어는 무신사의 포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매장이다. ‘보이콧 재팬’ 여파로 유니클로 매장이 철수한 바로 그 자리에 깃발을 꽂았기 때문. 서울 외 지역엔 처음으로 여는 오프라인 매장이자, 역대 최대 규모다.
서울을 넘어 전국 오프라인 매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무신사, ‘국가대표 SPA’ 타이틀을 꿰찰 수 있을까?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만큼이나 그 후일담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