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의 남산공방] 국방혁신과 역사의 교훈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동부 돈바스 전선에서 자주포를 발사하고 있다. [AFP]
[김광진의 남산공방] 국방혁신과 역사의 교훈

우리 군은 현재 인공지능(AI) 과학기술 강군 육성 목표 속에서 ‘국방혁신 4.0’을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과학기술을 기회로 보고 국방력 건설에 접목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오늘날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의 국방력 건설에서도 같은 메시지가 엿보인다. 미국은 압도적 우위 유지기술로 극초음속 무기, 인공지능, 초소형 전자기기, 5G, 사이버, 클라우드, 사이버보안 등을 제시하고, 플랫폼에서 네트워크로 그리고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경향 속에서는 ‘미래 국방력 건설의 핵심은 과학기술’이라는 생각이 돋보인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국방과 과학기술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물론 우크라이나군의 ‘GIS 아르타 프로그램’같이 우주의 스타링크 시스템을 기반으로 마치 우버택시를 호출하듯이 가장 가까운 공격무기를 선택하게 해주는 기능 등은 과학기술의 성공적 응용 결과다.

그러나 ‘능동 방어 체계(APS)’로 무장한 고가의 탱크가 값싼 무인기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고, 러시아의 고성능 유인 전투기들이 그보다 값싼 ‘이동형 지대공 미사일’과 ‘휴대용 견착식 대공미사일(MANPAD)’ 위협 때문에 공중 우세를 포기하는 현상도 한편에선 나타나는 추세다. 역으로 러시아의 2만달러짜리 값싼 ‘이란제 자폭드론’을 우크라이나가 400만달러 상당의 패트리어트 요격탄으로 격추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이런 사례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첨단 군사과학기술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략과 군사사 연구로 저명한 로런스 프리드먼 영국 킹스칼리지 교수는 “우크라이나군이 강대국 러시아와 대등하게 싸우는 원인은 군사과학기술이나 무기 체계가 아니라 군대의 인적 요인”이라면서 “구체적으로 즉 지휘 통제능력, 군수 지원, 훈련, 사기 등에 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군의 경직된 지휘 통제 체계와 훈련되지 못한 초급 간부들에 비해 우크라이나군은 NATO식으로 지휘 통제권한이 초급 간부까지 위임됐고, 그에 걸맞은 훈련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전쟁의 승패가 첨단 군사과학기술 기반 무기 체계보다 인간의 자질과 훈련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격되는 이런 현상들은 군사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이 같은 시각 차는 사실 ‘군사력의 역사적 변천을 도약적 혁신으로 해석하는 태도(도약적 혁신 입장)’와 ‘불변하는 기본 원칙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태도(기본 원칙 입장)’, 두 진영 간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도약적 혁신 입장’에서는 미국 국방부에서 오랜 기간 소련에 대한 냉전의 승리를 기획해왔다고 알려진 앤드루 마셜의 생각처럼, 현대과학기술로 인해 무기의 정확성과 치명성이 변화해 전쟁의 성격도 변화했다고 본다. 발전된 과학기술을 적절한 작전 개념으로 신속히 수용해 도약적 발전을 이루는 군사혁신(RMA)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반면 ‘기본 원칙 입장’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현대전투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대표적인 학자가 국제정치와 군사학전문가인 스티븐 비들 컬럼비아대 교수다. 이 진영에서는 무기 체계의 화력이나 파괴력은 점진적으로 증가했지만 실제 전투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군사력의 적절한 배치와 운용 및 군대의 훈련과 사기와 같은 인적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인적 요인은 프리드먼 교수가 우크라이나군의 성공 원인으로 꼽았던 그 인적 요인이기도 하다.

두 관점 모두 군사과학기술과 인적 요인 중 어느 하나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도약적 혁신 관점도 군사과학기술을 잘 활용하기 위해 인간들은 적절한 운용 개념과 조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 원칙 관점에서도 인적 요인에 의한 군사력 운용 원칙이 지켜졌을 때 군사과학기술의 효용성이 배가된다고 얘기한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과학기술과 인적 요인 모두 국방력 건설에 있어 필요한 요소인 셈이다.

이런 점은 우리의 국방력 건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혹시라도 우리 군의 군사혁신이 과학기술 적용을 위한 예산과 정치적 결단만 강조하고 인적 요인에 해당되는 군사교리, 리더십, 훈련과 규율, 사기 등은 군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으로 보고 지나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포함한 역사에서는 군이 당연한 덕목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실패했던 사례들이 반복돼왔다. 우리 군도 AI 과학기술 강군 목표를 ‘과학기술로 이뤄지는 강군’이 아닌 ‘과학기술도 갖춘 강군’ 의미로 이해하고, ‘강군’을 건설할 수 있도록 인적 요인에 대 해 투자하고 조직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로마제국 쇠망사’로 유명한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인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준비하며 평화를 유지해왔으며, 군대의 라틴어 어원은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국방력 건설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이점을 꾸준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광진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