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까지 이어진 조선업 불황으로 인력 이탈
수주 반등하면서 HD현대·한화오션 등 채용 진행 중
다른 업종보다 낮은 연봉 인재 채용에 걸림돌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국내 조선사 두뇌로 꼽히는 연구·설계 인력이 8년 만에 5000명 가까이 감소했다. 선박 발주 시장이 오랫동안 침체되면서 조선사들이 인력 규모를 줄인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선두를 지켜온 우리나라가 인력 확보에 계속 어려움을 겪으면 중국, 일본과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5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산하기관인 조선·해양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가 발간한 이슈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조선소들이 보유하고 있는 연구·설계 인력은 지난해 기준 약 9400명이다. 8년 전인 2014년(1만4169명)보다 4769명 줄어들었다.
연구·설계 인력은 새로운 선박을 개발하고, 이와 관련된 설계도를 구상하는 만큼 조선사의 두뇌로 꼽히고 있다. 연구·설계 인력 감소는 조선사의 신기술 구상에 타격을 미칠 수 있다.
2010년대 중반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조선업 불황이 연구·설계 인력 규모 감소를 야기했다. 글로벌 선박 발주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적자가 지속되자 중견 조선사들은 물론 HD현대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빅3도 고육지책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일부 중소 조선사들은 파산에 이르렀다.
인재들이 조선사를 외면하는 현상도 인력 감소 원인 중 하나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주요 대학의 조선해양공학과 졸업생 중 조선소 혹은 조선해양공학과 대학원 등 조선 분야로 진로를 택한 비율은 평균 30%에 그쳤다. A대학의 경우 평균보다 한참 낮은 18%에 머물렀다.
반면 2021년부터 많은 일감을 확보한 조선사들은 최근 채용 규모를 늘리고 있다. HD현대는 올해 상반기에만 3차례에 걸쳐 대졸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했다. 한화오션은 올해 하반기까지 연구·설계를 포함해 전 직무에 걸쳐 상시 채용을 통해 인재를 모집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3월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했다. 하지만 반도체, 이차전지, 자동차 등 다른 업종보다 낮은 연봉은 인재 채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조선 인재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부터 교육부는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조선해양산업 기술인력양성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 1~2년을 준비하고, 말기 1~2년에는 정리에 착수하는 등 교육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적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인재 감소로 고민하는 사이 중국, 일본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선보이고 있다. 중국 국영 조선사인 CSSC는 지난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선박 박람회 ‘노르쉬핑 2023’에서 풍력추진 시스템이 적용된 초대형 유조선(VLCC) 모형을 선보였다. 일본의 가와사키중공업은 2021년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운반선을 건조했다.
우리나라 또한 경쟁국을 따돌리고자 암모니아 추진선 등 친환경 선박, 무인선박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우리나라와 경쟁국 간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경호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최근 예비 조선 인재인 대학생들도 조선업에 대한 신뢰감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며 “새로운 선박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 조선업 경쟁력은 후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