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떠오나니 도화로다.”
계곡은 짐짓 품위를 내세우는 선비들도 무장해제 시킨다. 푸른 초목의 호위를 받으며 흐르는 에메랄드 청정옥수와 세차게 낙하하는 폭포의 흰 포말을 보면서, 잠재돼 있던 풍류가 광대 마냥 외화(外化)하기 시작한다.
이어 가장 센티멘탈하고 로맨틱한 아이콘인 도화까지 떠올리며 잠시 도화살에도 사로잡힌다.
묵객들은 ‘무릉도원(천국에 있는 청정 자연경승지)이 예 아닌가’라고 계곡의 정취에 한껏 취하기도 한다. 명시는 늘 계곡 옆 정자 위에서 났다. 겸제와 단원의 명화 역시 그랬다.
한국관광공사가 7월 추천 가볼 만한 곳으로 정한 테마는 ‘풍류가 깃든 계곡’이다. 청정자연 속 호젓한 걷기 건강여행, 뉴노멀에 적합니다. 시인과 묵객의 숱한 스토리가 곁들여진다. 추천 여행지는 ▷서울 수성동계곡 ▷동해 무릉계곡 ▷괴산 화양구곡 ▷함양 화림동계곡 ▷부안 봉래구곡이다.
▶함양 화림동계곡= 함양에는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인생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있다. 화림동계곡에는 선비문화탐방로 2개 구간이 조성돼 있으며, 거연정과 농월정을 잇는 1구간(약 6㎞)이 인기다. 계곡을 따라 숲길과 마을길을 거닐며 거연정, 군자정, 영귀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농월정 등 7개 정자를 만난다. 함양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상림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 일두고택 등이 모인 개평한옥마을, 세계유산 남계서원도 있다.
▶동해 무릉계곡=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은 거대한 기암괴석과 장쾌한 폭포가 환상적이다.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약 4㎞ 이어지는 계곡은 무릉반석을 거쳐 학소대, 두타·청옥산 물이 만나는 쌍폭으로 이어진다. 쌍폭은 드라마 ‘황진이’ 속 선녀 같은 기예인들의 침례수련 촬영지였다. 두타산협곡마천루와 ‘한국의 장가계’ 베틀바위에선 웅장한 두타산의 위용을 본다. 인근 무릉별유천지에선 스카이글라이더, 루지 등 이색 체험, 에메랄드빛 두 개 호수, 라벤더 감상을 한다.
▶서울 수성동계곡= 서울 도심 옥인동 문화의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턱 나타나는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그림과 시의 소재로 삼던, 오래된 스테디셀러이다. 곳곳의 너른 바위는 서울시민과 여행자 쉼터이다. 수성동계곡과 인왕산, 세종마을(서촌)과 경복궁, 청와대 등이 한꾸러미의 걷기여행길이다. 먹자골목 세종마을은 조선의 왕족과 사대부, 숙수(중인) 등이 거주하던 곳으로 도시 한옥이 꽤 남아, 예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괴산 화양구곡= 괴산 청정생태의 압권은 화양구곡(명승)이다. 청천면 화양천 주변 약 3㎞에 9개의 절경이 있다.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화양구곡 전 구간을 볼 수 있다. 올해 물놀이 기간은 6월 1일~8월 31일이다. 1곡 경천벽을 시작으로 2곡 운영담, 3곡 읍궁암, 4곡 금사담, 5곡 첨성대, 6곡 능운대, 7곡 와룡암, 8곡 학소대, 9곡 파곶 등 풍경이 연이어 나온다. 500년 된 친자연 교육 기관 괴산향교, 송시열 유적,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자결한 홍범식 고가 등이 있다.
▶부안 봉래구곡=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에 있는 봉래구곡은 약 20㎞에 이르는 하천 지형 아홉 곳을 이른다. 1곡부터 5곡까지 왕복 2시간 남짓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아쉽게도 6~9곡은 1996년 부안댐이 완공되면서 물에 잠겨 볼 수 없다. 역순으로 가면 5곡 봉래곡에서 감입곡류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4곡 선녀탕과 3곡 분옥담은 지름에 비해 깊은 항아리 모양 포트 홀이다. 높이 약 30m에 이르는 2곡 직소폭포 앞에 서면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절경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바다로 나아가면 백악기 퇴적암의 성층이 바닷물에 침식되어 신비로운 풍경을 선사하는 채석강(명승)과 변산해수욕장이, 곰소염전이 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