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디토(Ditto·찬성)와 비토(Veto·반대)'로 갈등이 첨예한 세상 속 먹고 사는 이슈를 탐구합니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Q : "천일염 대량으로 사야 하는데 도매로 구할 수 있을까요?"
A : "도매업자들이 전부 창고에 쌓아둔 듯 합니다. 그저께 20kg짜리 2만8800원에 샀는데, 지금 보니 인터넷에 대부분 6만원대입니다. 아마 매일이 '오늘이 최저가'일듯 하네요."
위 대화는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 누리꾼들이 나눈 내용입니다.
최근 이곳에는 소금값 상승과 품귀 현상을 걱정하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소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자영업자는 "오픈마켓 판매 순위 31위에 소금 포대가 올라간 건 살아 생전 처음 본다"고 글을 남겼고, 다른 이는 "천일염 100만원 어치 플렉스(사치 소비) 했다"고 썼습니다. "횟집, 매운탕집 등 수산물 관련 식당은 타격이 뻔한데 다른 업종으로 갈아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도 오염수 방류 전에 소금, 미역, 김 등을 사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 지역 맘카페에는 "위험이 크지 않다는 전문가들 말을 믿고 싶지만, 솔직히 내 아이한테는 문제 없는 걸 먹이고 싶다. 엑스레이도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인데"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증시에서도 관련주가 들썩들썩 하고 있습니다. 소금 관련 기업인 인산가 주가는 지난 5일 1900원대에서 폭등하기 시작해 지난 15일에는 52주 신고가인 4055원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불과 보름새 주가가 2배 넘게 오른 셈입니다.
한국은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입니다. 먹는 어종도 다양하고, 다른 나라에서는 잘 먹지 않는 김, 미역 등 해조류까지 '안 먹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해산물은 우리 식탁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오염수 문제가 이토록 민감한 이유입니다.
"자연에 널렸는데 좀 더 있다고 문제 되나" vs "안전 근거 있나"
오염수에 대한 공포가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측은 오염수를 제거설비(ALPS)로 거르면, 오염수 내 64종류의 방사성 물질 중 삼중수소(H3)와 탄소-14만 남고 모두 기준치 이하로 제거된다고 주장합니다. 삼중수소는 대기의 질소와 우주방사선이 만나 자연적으로 매년 6경(조의 만 배)㏃(베크렐)이 생성되고 비에 섞여 내리는 물질이라고 합니다. 이에 비하면 현재 일본 탱크에 들어 있는 오염수 내의 총량이 780조 베크렐인데, 매년 22조㏃씩 30년간 흘려보내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한국의 원전에서 1년간 방출되는 양인 157조㏃보다도 적다는 것입니다. 삼중수소의 농도 역시 세계보건기구(WHO) 음용수 기준인 1만㏃/ℓ(베크렐/리터)보다 낮은 1500㏃/ℓ 이하로 희석해 방류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이 당초 알려진 64종보다 더 많을 수 있으며, ALPS를 통해 대부분 걸러진다는 것 역시 일본의 주장일 뿐 온전히 신뢰하기 힘들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ALPS가 30년 동안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30년만 하면 오염수 방류가 끝나는 건지도 물음표가 붙는 대목입니다. 삼중수소의 농도 기준 또한 먹는 물로 쓰는 염지하수에 대한 우리나라 환경부의 기준은 일본이 방류하겠다는 농도의 250분의 1에 불과한 6㏃/ℓ이며, 나라마다 기준도 들쭉날쭉해 어느 수준이 안전하다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먹어도 소변으로 배출돼" vs "몸 안에 쌓일 수 있어"
삼중수소의 유해성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립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모든 음식에 삼중수소가 수분 형태로 들어있으며, 체내에 들어가도 몸에 쌓이지 않고 12일 정도면 대부분이 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반면 삼중수소가 체내에서 유기물과 결합해 오랜 시간 몸에 축적될 수 있고, 삼중수소가 내뿜는 베타선이 내부 피폭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진 바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방류된 오염수가 국내에 언제 도달하는지도 논란입니다. 해양과학기술원과 원자력연구원 공동연구팀의 2월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오염수는 바로 우리날에 유입되지 않고 태평양을 돌아 4∼5년 뒤 제주 해역에 들어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과정에서 삼중수소도 17만분의 1로 희석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무거운 방사성 물질이 있는 심층수는 5~7개월만에 우리나라에 도달할 수 있고, 일본에서 들어오는 배에 담긴 평형수를 통해서도 오염수가 직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소량의 방사선은 괜찮다" vs "조금도 위험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소량의 방사선이 얼마나 위험한가 자체도 논란거리입니다. 방사선은 100m㏜(밀리시버트) 이상 피폭될 경우 암 발생률이 비례해서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하의 소량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논란입니다. 학계 일각에서는 '문턱 없는 선형가설(무역치 선형 가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방사선은 극소량도 안전하지 않으며, 소량에 피폭되더라도 그에 비례해서 인체에 유해하다는 가설입니다.
반면 이러한 가설이 입증된 바 없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대법원도 2020년 원전 인근 주민이 갑상샘암에 걸렸다며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른바 '균도네 소송')에서 '해당 가설을 입증할만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오염수가 안전하냐를 놓고 사회와 학계는 극명하게 양분돼 있습니다. 명칭 하나도 위험을 강조하는 '오염수'냐, 안전을 강조하는 '(오염)처리수'냐로 티격태격할 정도니, 그보다 더 나아간 수준의 의견 합치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학적 견해 차에 더해 원전에 대한 찬반, 정치적 진영, 일본에 대한 입장까지 혼재돼 어수선합니다. 학계와 정치권에서도 "네가 마셔봐라", "마시겠다" 수준의 공방이 오가는 걸 보면,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듭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확고하게 신뢰할 정보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논란만으로도 입장을 정하기 쉽지 않은데 감시자 역할을 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몇차례 데이터 조작·은폐 의혹이 불거진 도쿄전력이라는 사기업을 감시·감독할 수 있느냐는 지적까지 더하자면 문제는 더욱 난마처럼 꼬이게 되겠죠.
"왜 우리끼리 싸우고 있냐…일본에 대안을 요구하라"
방사능 논란이 터지면 자주 언급되는 '알라라(ALARA, 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제기한 것으로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한 낮게' 피폭량을 줄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면, 방류 외에도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다른 처리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실제 일본은 오염수를 지하에 매립하는 방안, 대기 중으로 증발시키는 방안 등을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하 매립은 지하수 오염과 해양 누출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고, 대기 중 증발은 대기오염의 우려가 있어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해양 방류 역시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최종적으로 선택된 것은 비용적으로 가장 저렴한 방안이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다른 대안은 탱크를 더 늘리는 것입니다. 현재 일본은 탱크 1066개에 오염수를 보관하고 있는데, 더 늘리도록 정부가 국제사회와 손잡고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에 이런 댓글이 있더군요. "왜 일본에는 한마디도 안하고 우리끼리 싸우고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