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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토(Ditto·찬성)와 비토(Veto·반대)'로 갈등이 첨예한 세상 속 먹고 사는 이슈를 탐구합니다.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3억원 투자했는데 700만원 됐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의 금융시스템 맞나."
"마이너스 94%인데 남은 돈이라도 챙기는게 맞을까요? 이젠 정말 휴지될 거 같아서."
최근 셀리드라는 바이오 상장사의 주식 투자 온라인 게시판은 주주들의 원성으로 시끄럽습니다.
백신을 개발하는 이 회사는 코로나19로 백신 투자 붐이 일면서 2021년 7월 주가가 15만원을 돌파할 정도로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국책과제로도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을 만큼 성과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6월30일) 주가는 6760원으로 최고점 대비 무려 95% 넘게 하락했습니다. 1조3500억원을 넘었던 시가총액도 640억원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2년새 1조3000억원이 허공에 사라진 것입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해당 증권사를 통해 이 주식에 투자한 4211명의 투자자의 평균매수단가(6월28일 기준)는 6만7717원이며, 평균 수익률은 -84.1%. 실로 처참한 수준입니다.
화 낼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은 주주들이 새삼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이 회사가 최근 400억원을 주주우선방식으로 유상증자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시가총액 700억원이 안되는 회사가 400억원의 투자금을 더 끌어다쓰겠다고 한 것입니다. 게다가 회사 경영에 책임이 있는 최대주주(지분율 19.11%) 강창율 대표는 이 투자에 고작 전체 모집금액의 1.25%인 5억원만 넣겠다고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회사는 이렇게 모은 돈을 코로나19 오미크론 전용 백신을 개발하는 데 쓸 계획입니다. 코로나19 종식으로 기존에 백신 개발을 성공한 회사들도 실적을 못내고 있는 판에, 백신 개발할 돈을 더 달라는 말에 주주들은 기가 찹니다.
한 투자자는 "기존 투자금을 인질로 잡고 돈 더 내놓지 않으면 망해버릴 거라고 협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탄했습니다.
성과급 잔치하더니…주주들한테 돈 내놓으라
CJ CGV와 SK이노베이션의 대규모 유상증자 논란으로 무분별한 유상증자로 인한 소액 주주의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오 기업들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부풀었던 거품이 꺼지면서 주주들의 타격이 큰 상황입니다. 투자 실패일 뿐이라고 투자자들의 잘못으로 치부하기에는 경영자의 도를 넘는 방만 경영 책임을 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또 다른 회사는 진단키트 업체 에스디바이오센서입니다. 진단키트 대장격인 이 회사는 코로나19 3년간(2020~2022년) 당기순이익이 2조5000억원이나 될 정도로 말 그대로 돈을 쓸어담았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종식되자 올해 1분기 181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회사는 최근 3104억원을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 당시(6월13일) 기준으로 보면, 시가총액(1조6000억원)의 20%에 육박하는 대규모 증자입니다.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크게 희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는 투자받은 돈 중 500억원 가량은 운영자금에 쓰고, 2600억원 가량은 미국 진단기업인 메리디언 바이오사이언스를 2조원에 인수하느라 빌린 돈을 갚는 데 쓰겠다는 계획입니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3년 동안 번 2조5000억원은 다 어디다 썼길래, 운영자금도 없고 빚만 가득이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2021년 공모가 5만2000원으로 상장했던 이 회사의 주가는 현재 1만2230원으로 무려 80% 가까이 하락했습니다. 적자로 전환한 만큼 그나마 주주들을 위로해줬던 배당도 올해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주주들은 피눈물 흘리고 있지만, 이 회사의 경영진은 막대한 돈을 챙겼습니다. 허태영 대표는 지난해에만 급여와 상여로 14억2000만원, 스톡옵션 행사로 65억5600만원 등 80억원에 가까운 돈을 받았습니다. 박성진 상무는 55억3500만원, 가희창 상무는 41억3900만원을 받았고, 이효근 대표도 급여와 상여로 16억6600만원, 조영식 의장은 12억1800만원을 받았습니다.
유상증자했는데 쓸 곳이 없네…배당해주겠단 이 회사
유상증자한 돈으로 배당을 해주겠다는 기상천외한 회사도 있습니다. 엔지켐생명과학이라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2018년 코스닥에 상장한 이후 매년 적자를 낸 회사입니다. 당기순이익 적자액을 보면 2018년 144억원, 2019년 168억원, 2020년 175억원, 2021년 278억원, 2022년 251억원으로 5년 누적 적자가 1000억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올해 3월 갑자기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며 자사주 매입, 이익배당 등을 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주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매년 적자를 내는 회사가 무슨 돈이 있어 자사주 매입이며 배당을 하냐는 거죠.
이 회사는 그보다 1년 앞선 지난해 3월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겠다며 1500억원을 유상증자한 바 있습니다. 유상증자를 최초 발표했던 시점(2021년 9월) 기준으로 보면 시가총액 약 7000억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3500억원을 증자하겠다고 했는데,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1500억원을 증자한 것입니다.
회사가 투자를 받은 명목은 인도 회사가 개발한 '자이코브-D'라는 백신 생산입니다. 그런데 이후 코로나의 위력이 꺾인데다, 인도 백신을 맞으려는 사람도 없어서 생산을 못하게 돼 버렸습니다.
결국 투자받은 돈을 쓸 곳이 없어 쟁여놓고는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현금이 이렇게 많다"며 주주들에게 환원해주겠다고 한 거죠. 유상증자 폭탄으로 주가 폭락을 맞은 주주들 입장에서 보면 피같은 내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며 생색내는 꼴입니다. "다단계 회사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 회사의 주가는 2021년 4월까지만 해도 2만원을 넘었지만, 현재는 90% 이상 폭락한 1855원입니다. NH증권에 따르면, 이 증권사를 통해 투자한 4159명의 투자자의 평균 수익률은 마이너스 78.3%입니다. 그 사이 손기영 대표는 2021~2022년 37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았습니다.
회사는 그나마 하겠다던 주주환원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사이 지난해 상반기 2300억원이 넘는다고 자랑했던 현금 잔고는 1600억원 수준(3월 공시 기준)으로 줄었습니다.
자신은 돈 없다고 내다 팔면서…주주들에게 비용 전가
이상 언급한 사례 외에도 에스씨엠생명과학은 총발행주식수의 40%에 달하는 신주를 찍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최대주주는 상속세 자금 등을 마련해야 한다며 주식을 내다팔아 6월 한달 동안만 주가가 반토막 났고, 진원생명과학은 대표가 3년간 300억원에 육박하는 보수를 받으면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해 논란입니다.
금리인상과 경기침체로 올해 기업들이 대거 유상증자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해부터 있었습니다. 특히 바이오 기업의 경우 코로나19 거품이 꺼지면서 자금조달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된 상황입니다. 투자는 투자자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기업의 업황, 재무, 전망 등에 대한 판단을 그르친 대가는 스스로 져야 합니다.
다만 부실 방만 경영과 주주의 투자금을 제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여기는 행태는 분명 사회적으로 제재되어야 합니다. 마침 금융감독원은 진원생명과학의 유상증자를 정정하라고 반려하는 등 이전보다 깐깐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K바이오는 믿고 거른다'는 투자자들의 냉소가 이미 위험 수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