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성남)=육성연 기자] “작은 영웅들에게 우리가 편안한 보금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5성급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 호텔의 루프톱에는 ‘귀한 손님들’의 숙소가 따로 마련돼 있다. 바로 꿀벌이다.
이 호텔의 피타 루이터 총지배인은 이같이 말하면서 “사라지고 있는 꿀벌을 지키기 위해 4월부터 옥상에 양봉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20만마리의 ‘작은 영웅들’…호텔, 루프톱서 ‘숙박’ 제공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판교는 5일 유엔이 지정한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최근 호텔 양봉장에서 첫 벌꿀 수확 행사를 가졌다. 루이터 총지배인은 “벌은 생태계의 필수적인 존재”라며 “자연의 ‘슈퍼 히어로’를 보호하는 것은 환경과 지역사회에 이로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양봉장 설치는 힐튼의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캠페인 ‘목적이 있는 여행’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꿀벌이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따라 이 호텔은 도심 속 양봉장을 마련,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는다. 실제로 2019년 미국의 미생물 기업 시드가 ‘꿀벌이 멸종된 세상’을 가정한 식단을 선보였는데, 대부분의 과일·채소가 사라지고 꿀벌의 수분없이 자라는 뿌리식물만 겨우 남았을 정도다.
이러한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이 호텔은 이들을 가장 높은 옥상에 따로 모셨다. 꿀벌을 보기 위해 올라간 옥상에서는 20만 마리의 벌들이 가득차 있었다. 모든 안전장비를 갖췄음에도 겁이 날 만큼 수많은 벌이 따라다녔다.
도시 양봉장 사업을 위해 이 호텔과 협업 중인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는 “벌의 활동 반경은 2㎞ 정도다. 여기에 있는 벌들이 수분 매개자 역할을 열심히 하면서 주변 지역의 생태계 환경 조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놓여진 벌집틀 하나를 직접 들어보니 생각보다 꽤 무거웠다. “꿀벌 한 마리가 평생 만드는 꿀은 5g정도”라는 박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건물 옆에는 자동차가 지나다니고 있었지만, 꿀의 오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박 대표는 “도심에서 꿀을 재배하면 오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벌은 꿀을 먹고 나서 뱉어내는 작업을 수십 번 하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꿀은 깨끗하다. 실제 성분검사에서도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칵테일 위 밀랍꿀 토핑”…재배 꿀로 음료·디저트 만들어
자연을 지키는 ‘작은 영웅’으로 모셔졌지만, 꿀벌들은 ‘무료 숙박’ 대신 달콤한 천연 벌꿀을 호텔에 내놓고 있다. 이 호텔은 벌꿀을 조식 뷔페나 레스토랑, 칵테일 바 등에서 다채로운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신메뉴를 통해 고객이 맛보는 꿀은 100% 호텔에서 재배한 꿀이다.
벌꿀로 만든 디저트·음료는 이 호텔의 루프톱 바 ‘닉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마셔본 크림커피에는 밀랍꿀 한 조각이 토핑으로 올려져 있었다. 한 입 씹어먹은 밀랍꿀 사이로 달콤한 꿀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밀랍꿀 토핑은 상큼한 칵테일에도 올려졌다.
이 호텔 페이스트리의 정원영 셰프는 꿀로 만든 ‘비마이허니 애프터눈 티 세트’와 벌집모양의 ‘허니 케이크’를 소개하면서 “꿀을 캐러멜라이징(Caramelizing·음식물이 갈색으로 변할 때까지 뜨겁게 열을 가하는 조리법)하거나 절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양과 색으로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애프터눈 티 세트 메뉴중 가장 눈에 띈 것은 ‘꿀벌 마카롱’이었다. 이 마카롱은 호텔 양봉 프로젝트의 꿀벌 마스코트인 ‘비 해피(Bee Happy)’ 모양을 구현했다. 꿀벌 마스코트는 주황색 마카롱옷을 입고 초콜릿 더듬이를 가졌다. 앙증맞은 크기에 섬세하게 표현된 모양이었다.
꿀벌이 가장 좋아할 만한 디저트도 있었다. ‘벌꿀 라벤더 슈’이다. 라벤더는 꿀벌이 자주 찾는 식물로, 빵 속 슈크림에서는 라벤더 향이 진하게 풍겨졌다. 이 외에 오렌지꿀 소스가 발라진 ‘허니 오렌지밀푀유’, 상큼한 ‘벌꿀 레몬 무스’ 등이 포함됐다.
더블트리 바이 힐튼 서울 호텔 관계자는 “꿀벌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이번 프로젝트로 고객들의 달콤한 휴식을 더욱 가치있게 만들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친환경을 위한 힐튼의 ‘목적이 있는 여행’ 캠페인에 앞장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