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인도가 세계 1위 인구대국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19일 공개된 유엔인구기금 세계인구 보고서는 올해 중반에 인도가 14억2860만명을 기록하며 중국의 14억2570만명보다 300만명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2세기 넘게 지켜온 인구대국의 자리를 인도에게 내줘야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죠.
그간 중국은 많은 인구가 어떻게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해왔습니다.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의 반열에 올려놨고, 중국은 이 같은 제조업 성장과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로 순식간에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세계가 지금 ‘곧 인구 1위’ 인도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세계는 중국이 그러했듯 인도의 고성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해 말 모건스탠리는 인도가 10년 내로 일본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3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주요 경제국 중 가장 빠른 성장을 기록할 나라”란 평가도 내렸습니다.
물론 오늘날 인도를 향한 기대가 비단 빠른 인구 증가만을 근거로 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기운이 인도로 향하는 듯 대외 환경도 인도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세계 공급망 교란이 심화하자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무궁무진한 소비와 노동시장 잠재력을 가진 인도는 ‘차이나엑소더스(중국 탈출)’의 수혜국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애플의 최신 아이폰 14 모델’은 기업들의 공급망 다변화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애플이 인도를 차기 생산기지로 낙점한 것이죠. 여기에 애플은 지난 18일 뭄바이에 첫 오프라인 매장인 애플 스토어까지 열었습니다. 7년만에 인도를 방문한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인도에 진출하게 돼 기쁘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고급 소매점과 브랜드들도 인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명품 브랜드 디올은 지난달 말 인도에서 첫 패션쇼를 열었고, 프랑스의 대표적 백화점인 갤러리라파예트 그룹은 2024년을 시작으로 인도에 두 개의 매장을 열 계획입니다.
하지만 인도의 경제 성장에 쏠린 기대만큼이나, 인도가 과거 중국이 그랬던 것과 같은 고성장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많습니다. 많은 인구가 반드시 고성장의 ‘보증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이 오늘날 인도를 보며 ‘30년 전 중국’을 떠올리지만, 인도가 인구에 이어 경제 규모면에서도 중국을 추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만큼은 부정적인 모습입니다. 혹자는 “중국과 인도를 비교하는 것은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도 표현했는데요. 동그란 과일, 즉 인구가 많은 국가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예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빗댄 것입니다.
인도가 빠른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풀어야할 숙제로는 ‘일자리’가 꼽힙니다. 매 순간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노동력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인구 증가를 생산성 증대로 전환할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뭄바이의 싱크탱크인 인도 경제 모니터링센터에 따르면 2017년 4억1300만개 수준이었던 인도의 총고용은 2022년 현재 4억2000만개로 사실상 제자리 걸음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노동가능연령 인구가 2000만명이나 늘어나고 있지만, 이 중 일자리를 갖는 것은 80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경제활동 참여율 역시 3월 기준 39.8%에 불과합니다.
노동력의 ‘질’도 문제입니다. 최근 인도 경제의 가파른 성장과 별개로 전반적인 교육과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보건, 영양 등의 수준이 여전히 낮기 때문입니다. 푸남 무트레자 인도인구재단 사무총장은 “인도 젊은이들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이 있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교육 뿐만 아니라 그들의 건강과 영양, 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상황에 놓였던 중국은 어땠을까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과거 19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중국의 노동가능인구가 두 배로 증가한 사이,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과 공격적인 인프라 투자를 바탕으로 수백만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면서 “인도가 중국처럼 인구통계학적 이점을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설명했습니다.
애당초 인도가 중국식 고성장을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중앙정부의 주도로 강력한 수출 중심의 성장을 이뤘던 중국과 달리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의 경우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중앙집권적 성장을 추진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인도를 세계 제조업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 하에 발표한 ‘메이드 인 인디아’ 캠페인은 지금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도, 추진력도 받고 있지 못하고 있죠.
자빈 제이콥 뉴델리 시브나다르대 국제관계학 부교수는 “정치적인 것을 떠나서 중국의 성장 모델은 (경제 성장면에서) 효율적인 면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유독 제한적인 인도의 노동법과 외국인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각종 보호주의적 관행들도 성장의 걸림돌로 지목됩니다. 결국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경제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고, 제조업 중심의 강력한 개발 모델을 추진하지 않는 한 인구 증가로 인한 경제 성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또한 NYT는 “인도가 중국만큼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개발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제조업 중심지가 되기 위한 필요한 모든 것을 하거나 다른 어떤 나라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길을 개척해야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이 인도라는 국가에게 가장 중요한 성장의 기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쉬암 사란 전 인도 외무장관은 “중국은 유리한 지정학적 순간을 이용해 기술과 자본에 적극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스스로를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스스로를 구축했다”면서 “지금이 인도에게 바로 그 순간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