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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지만, 육아는 특히 워킹맘에게는 지옥(hell)처럼 고된 일이기도 합니다.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워킹맘들의 고충과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겠습니다. 제보는 언제든 적극 환영합니다.

“육아휴직했더니 진급만 5번 누락…‘만년 대리’”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여성가족부와 주한 스웨덴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 아빠육아 사진 공모전'에서 버금상을 받은 안상태 씨의 '업사이클 신문지와 아빠의 가위질'. [연합]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 한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는 윤모 씨(41)는 올해도 승진 대상에서 누락됐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2년 간 쉬고 돌아온 뒤 계속 승진에서 밀리고 있다.

윤 씨는 "남자들에게 밀려 과장 진급에서 5번이나 물먹었다"며 "남자들과 동등하게 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올해는 승진하겠지 했는데, 또 누락이 됐다"며 "육아휴직을 길게 써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복귀해서 이렇게까지 불이익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윤 씨는 "육아휴직을 쓰면 불이익을 주는 것이 한국 회사들 상당수의 현실"이라며 "이런 분위기인데, 누가 애를 낳으려고 하겠느냐"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육아휴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출산의 벽, 육아휴직…못 쓰고, 써도 불이익”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0.78명이다.

합계출산율은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저출산의 걸림돌 중 하나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A씨처럼 쓰더라도 돌아오면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차별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22일 고용보험 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자는 전년(11만555명) 대비 18.6%(2만532명) 늘어난 13만1087명을 기록했다.

2016년 8만9771명에서 꾸준히 늘어 처음 13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휴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직장인은 절반 안팎에 불과하다.

“육아휴직했더니 진급만 5번 누락…‘만년 대리’”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남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응답은 여전히 45.2%에 달했다.

특히 비정규직(58.5%), 5인 미만 사업장(67.1%), 월급여 150만원 미만 노동자(57.8%)의 비율이 높았다.

대부분은 눈치가 보이거나 휴직에 따른 불이익이 두려워서 육아휴직을 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육아휴직했더니 진급만 5번 누락…‘만년 대리’”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지난해 9월 숨진 네이버 개발자 A씨가 생전 가족들에게 남긴 메시지 내용. [JTBC 보도 캡처]

다행히 육아휴직을 다녀왔더라도 복귀 후에 또 다른 장벽이 존재한다.

최근 네이버의 한 여성 개발자 A씨는 육아휴직 이후 차별을 받았다며 지난해 9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 측은 고인이 생전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 괴로움을 호소했다며 지난 달 24일 고소장을 제출해 고용노동부가 수사에 착수했다.

유족 측은 네이버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A씨가 지난 2015년 육아휴직을 한 뒤 이듬해 복직하면서 이전과 다른 부서에 배치됐고, 수차례 직장 내 괴롭힘 등을 토로하다가 지난해 육아휴직을 한번 더 하고 복직을 앞둔 상황에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A씨가 생전에 가족들에게 남긴 메시지에는 "회사에서 나가라는 거 같아. 난 OO이 열심히 키운 것밖에 없는데.", "이래서 워킹맘은 죄인인가.", "어린이집 졸업식에 간 후로 눈 밖에 난 것 같아." 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네이버 측은 "내부 확인 결과, B씨가 직장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정황은 발견할 수 없었다"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로썬 A씨 유족 측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B씨가 '워킹맘은 죄인인가'라는 메시지까지 남긴 정황을 볼 때 육아휴직 이후 불이익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신청’해도 못가요…왜?

“육아휴직했더니 진급만 5번 누락…‘만년 대리’”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고용보험전산망]

현행 ‘남녀고용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19조’에 따르면 근속기간이 6개월 이상인 근로자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사업주에 최대 1년의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휴직 개시 예정일의 30일 전까지 신청서를 사업주에 제출해야 하고, 사업주는 이를 승인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자동 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업주의 승인이 있어야만 휴직이 가능하다는 점이 하나의 걸림돌이다.

우리나라는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근로자는 ‘휴직 개시 예정일 30일 전’까지 신청서를 사업주에 제출해야 하지만, 사업주는 자신의 의사를 서면으로 통보해야 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만일 사업주가 휴직 신청 사실을 알았어도 별도이 의사표시를 하지 않을 경우, 휴직을 할 수가 없다.

“육아휴직했더니 진급만 5번 누락…‘만년 대리’”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고용보험전산망]

반면, 우리나라와 달리 출산율을 끌어올린 해외 선진국들은 육아휴직을 신청 만으로 바로 쓰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은 1974년 세계 최초로 '유급 부모휴가'를 도입한데 이어 1995년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했다. 480일의 육아휴직 중 부부 한쪽이 반드시 90일을 사용하도록 의무화해 남성의 가사 분담율을 높였다.

특히 육아휴직 자동 개시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웨덴과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근로자 신청 만으로 육아휴직 사용요건이 충족된다.

또 네덜란드와 뉴질랜드에서는 사업주가 육아휴직을 신청한 근로자에 반드시 서면으로 답변토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속 나선 정부…“실효성 있을까” 한계 지적

“육아휴직했더니 진급만 5번 누락…‘만년 대리’” [장연주의 헬컴투 워킹맘]
이미지는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123RF]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제대로 못 쓴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고용노동부가 단속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9일부터 전국 49개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모성보호 신고센터'를 운용하고, 육아휴직 등에 관한 근로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올 6월 말까지 근로자 상담 및 집중 신고기간을 지정, 근로감독관이 신고 접수 후 즉시 사업장에 연락해 행정지도를 하도록 할 방침이다. 개선되지 않거나 위반 정도가 중대하면 근로감독도 실시한다.

아울러 상반기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불리한 처우 등이 의심되는 사업장 500개소를 선정해 집중적으로 감독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업이 법망을 피해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줄 방법은 많은 만큼,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동 딸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 최모(49) 씨는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오면 일을 안주거나 스스로 퇴사하게 만들고, 일을 해도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승진 대상자에서 누락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부모 모두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필요할 때 바로 쓰도록 제도가 바뀌고, 육아휴직 복귀자를 '벌주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킹맘 박모(43) 씨는 "저출산이 심각하다고 수년 째 이야기하는데, 워킹맘들은 출산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너무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여기에 워킹맘을 죄인으로 보는 시선까지 더해지니 누가 애를 낳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