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라팔루자 아르헨티나 2023’의 상징 조형물 ‘카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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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이색적인 장소와 물건의 디자인을 랜 선을 따라 한 바퀴 휙 둘러봅니다. 스폿잇(Spot it)은 같은 그림을 빨리 찾으면 이기는 카드 놀이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거대한 솔방울 하나가 중남미 록페스티벌에 참가한 축제인들을 홀렸다.
짧은 반바지와 반팔 티 등 여름 옷 차림을 한 젊은이들은 이 거대 솔방울의 어느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뜨거운 한 낮 태양 빛을 피했다.
지난 3월 17~19일(현지시간) ‘태양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산 이시드로 경주장에서 열린 음악축제 ‘롤라팔루자 아르헨티나 2023’의 현장 중 일부 모습이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종식 직후에 열린 터라 축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 뿐 아니라 여러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가득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구름 인파를 뚫고 우뚝 솟은 예술 조형물이 큰 화제를 모았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올라 온 사진을 보면 이 조형물은 흰색의 금속 판들이 흰색 봉을 타고 수직으로 자라난 듯 이어 붙어 있다. 위쪽으로 올라 갈 수록 금속 판 수가 줄어들고 접합 각도도 예각이 되어 전체적으로 솔방울 형태를 띤다.
카폿(Capot·스페인어로 자동차 보닛이란 뜻)이란 이름이 붙은 이 조형물은 자동차 보닛 95개를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아르헨티나 건축가 마르틴 후베르만(Martin Huberman)이 창작한 작품이다.
후베르만이 속한 아르헨티나 건축회사 스튜디오 노멀(El Estudio Normal)은 아르헨티나 국가 기간산업이 자동차 부품인 것에 착안해 자동차 부품을 소재로 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카폿’이 그 첫번째다.
스튜디오 노멀 측은 사이트에 올린 ‘카폿’ 소개글에서 “우리 모두는 자동차 보닛을 때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좌석으로, 테이크아웃 간식과 음료를 먹는 테이블로, 또는 기대어 쉬는 장소로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온기가 남아 있는 보닛 위에 몸을 던져 별을 올려 다 보다 누워 잠이 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엔진 보호 덮개라는 단순히 기능적 측면으로만 보던 자동차 보닛의 새로운 발견이자 재생이다.
자동차 보닛 95개를 특정한 모양으로 엮어 놓으니 축제 관람객들을 위한 휴식처이자 등대 하나가 세워진 셈이 됐다. 야간에는 보닛들 사이로 은은한 조명이 켜지면서 근사한 등불이 됐다.
왜 솔방울 모양인가?
왜 하필 솔방울 모양일까.
침엽수인 소나무 그루에서 씨앗을 사방에 퍼뜨리고 나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솔방울은 건냉한 기후에서 흔한 물체다.
아르헨티스튜디오 노멀 측은 자사 사이트에서 카폿의 디자인을 솔방울 모양으로 한 이유나 조형물의 높이, 너비 같은 외관의 상세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프란치스코 현 교황의 모국이자 국민 90%가 천주교 신자이자 천주교 국가란 점에서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교황이 머무는 바티칸시국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그려진 바티칸 박물관이 있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박물관 안뜰에 있는 솔방울 분수대는 명화들 못지 않게 유명한 명소다. 대형 솔방울 조각을 가운데 두고 두 마리의 공작새 조각이 정숙하게 자리한 구도의 작품이다.
솔방울은 여러 종교에서 생명, 재생, 다산을 상징한다. 공작은 중세 가톨릭에서 부활, 소생, 불멸의 상징물이었다. 공작은 또한 악령을 쫓아내고, 병을 치유하는 존재로도 여겨졌다.
한편 솔방울과 공작은 소용돌이 또는 나선형 구조를 품고 있다는 점도 같다.
솔방울의 돌기를 보면 피보나치 수열(1, 1, 2, 3, 5, 8, 13, 21)과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황금비율(1: 1.618)을 따라 나선구조로 자란다. 공작새 꼬리 깃털의 눈 무늬 역시 그러하다. 달팽이 등껍데기, 고둥, 나팔꽃 봉오리 등 자연의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이 이 법칙을 따른다. (피보나치 수열은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 코드’에 기발하게 활용됐다)
카폿을 설계한 후베르만은 자동차 부품을 색다르게 재생시키고, 음악축제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메시지를 솔방울 디자인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몰라서 놓쳤는 지, 기술적 어려움 때문이었는 지 카폿은 솔방울의 나선 구조를 취하지는 않았다.
솔방울 자체가 지닌 이러한 종교 문화적 상징성 때문일까. 현대에 와서도 솔방울을 모방한 건축이나 조형물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인도 건축회사 누드(Nudes)는 원통형 중앙 구조물에 돌출 발코니를 나선 구조로 붙여 솔방울 모양의 360도 파노라마 뷰가 가능한 전망대를 만들었다. 이 발코니에는 태양광패널을 붙여 전망대의 이름은 '태양나무(솔라트리)'다. 그런가하면 2021년 두바이 세계 엑스포에서 영국은 솔방울 모양 전시관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롤라 팔루자(Lollapalooza)는
1991년부터 매년 여름 미국 시카고에서 나흘간 열리는 유명 록페스티벌이다. 시카고에만 매해 40만명이 이 축제를 보기 위해 몰린다고 한다. 1991년 미국 얼터너티브 록밴드 제인스 어딕션의 보컬리스트 페리 패럴이 고별 투어 공연을 준비하면서 국적, 인종,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 여러 뮤지션들과의 합동 공연을 제안하면서 출발했다.
2010년부터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등으로 개최지가 확대됐다.
지난해 방탄소년단(BTS)의 제이홉과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이 각각 한국 솔로 최초, 한국 그룹 최초로 시카고 공연에 참가하면서 국내에도 롤라팔루자란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는 8월 초에 열리는 롤라팔루자 시카고 참가 아티스트 명단에는 TXT, 뉴진스, 더 로즈 등 한국 가수들의 이름도 여럿 눈에 띈다.
‘롤라팔루자 아르헨티나’는 2014년부터 매년 3월 마지막 주에 열리고 있다. 해당 축제 사이트에 따르면 올해는 삼성, 버드와이저, 셰보레 등이 후원했다.
드레이크, 트웬티 원 파일럿츠, 빌리 아일리시 등 유명 가수들이 논스톱(non stop)으로 공연을 펼쳤고, 한국 가수 더 로즈도 무대에 올라 중남미 K-팝 팬들과 호흡했다.
현지 대중매체에 따르면 개막 첫날 정오에 이미 10만명이 산 이시드로 경주장에 운집하고, 사흘간 모두 33만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현지 매체인 부에노스아이레스 타임스 보도를 보면 롤라팔루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관광과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호텔 객실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 3차례 중 2차례가 음악콘서트가 열렸을 때와 겹친다. 영국 록그룹 콜드플레이 공연 때 객실 점유율은 92%, 롤라팔루자 축제가 펼쳐진 사흘간은 82%에 도달해 지난해 평균 60%를 크게 웃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