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베르제 달걀’ 꿈 꾸는 달걀 껍데기 가구들

칼슘 풍부한 달걀 껍데기는 훌륭한 천연 재료

편집자주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달걀 껍데기로 만든 수납함. 은은하고 오묘한 색감이 자개장 느낌을 준다. [네이처 스퀘어드 사이트]

지구촌 이색적인 장소와 물건의 디자인을 랜 선을 따라 한 바퀴 휙 둘러봅니다. 스폿잇(Spot it)은 같은 그림을 빨리 찾으면 이기는 카드 놀이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서양 기독교 기념일인 부활절에 미국에선 약 1억 8000만개의 달걀이 소비된다고 한다. 그리스도 부활을 축하하며 알록달록한 색깔을 입힌 달걀을 주고 받는 풍습 때문이다. 개인금융정보업체 월렛허브(Wallethub)가 2021년에 실시한 조사 결과다. 이는 달리 말해서 부활절 하루 동안 엄청한 양의 달걀 껍데기 쓰레기가 쏟아진다는 얘기다.

흰 속살을 내어주고 자신은 버려져 자잘하게 부서지는 달걀 껍데기. 그러나 쓸모 없어 보이는 달걀 껍데기도 이렇게(위·아래 사진) 화려하게 변신할 수 있다.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고급스러워 보이는 벽널은 달걀 껍데기로 만든 것이다. [네이처 스퀘어드 사이트 캡처]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달걀 껍데기를 부수고 색을 입혀 만든 테이블. [네이처 스퀘어드 사이트]

사진 속 수납함, 의자, 벽널 등은 모두 달걀 껍데기로 만든 것들이다. 재료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흡사 값 비싼 자개장 또는 세라믹 제품들로 보인다. 디자인은 회장 사모님 취향 저격이다.

이 제품들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네이처 스퀘어드(Nature Squared)가 생산했다. 이 업체는 달걀 껍데기, 닭 털이나 꿩 깃털, 담배 잎, 소 뼈, 망고 껍질 등 매립지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활용해 고급 가구나 건축, 자동차, 요트 등에 쓰이는 인테리어 제품을 만든다. 재료의 단순성과 비교해 깜짝놀랄 만한 복잡한 디자인의 표면과 미를 창출하는게 이 곳 디자인의 특징이다.

달걀 껍데기 벽 패널은 영국 런던의 해롯 백화점 내 한 구두 매장에, 꿩 깃털 차량 내장재는 롤스로이스에 납품됐다.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영국 런던 해롯 백화점 내 한 구두 매장 벽 패널은 달걀 껍데기로 만든 것이다. [네이처 스퀘어드 사이트]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영국 런던 해롯 백화점 내 한 구두 매장 벽 패널과 구두 전시 판매대는 달걀 껍데기로 만든 것이다. [네이처 스퀘어드 사이트]

“제품을 가치있게 만드는 건 재료 그 자체가 아니라 재료의 가공이다.”

네이처 스퀘어드의 말레이시아 출신 레이 쿤 탄(Lay Koon Tan) 대표의 말이다. 독일 일간 디 벨트, 영국 잡지 모노클 등과의 지난 2020년, 2021년에 한 인터뷰에서 그는 “파베르제의 달걀이 그렇게 비싼 건 제품에 쓰이는 보석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세공법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전 창업 때부터 사치품 시장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가장 부유하고 버릇 없이 자란(spoiled) 고객을 공략하라’가 마케팅 포인트였다.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레이 쿤 탄 대표. [네이처 스퀘어드 사이트]

레이쿤 탄 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사치라는 건 곧 드문 것”이라며 “모든 천연재료는 독특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꺼내면 된다. 이 것이 우리 회사의 본질이다. 제품을 가치있게 만드는 건 재료 자체가 아니라 가공이다. 그것의 가치는 아름다움으로 측정된다”고 말했다.

즉 달걀 껍데기 등 하찮은 원재료를 한 조각 한 조각 장인 정신을 발휘해 진부하지 않은, 소장하고 싶은 사치품으로 만들었단 얘기다.

이들은 자원 보존 뿐 아니라 일자리를 창출하고 장인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기업의 생산은 수공예 전통이 있는 필리핀에서 이뤄지고, 필리핀 180명이 정규직으로 종사한다. 또한 재료들은 개발도상국에서 수집된다.

런던에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에선 엔지니어와 유기 화학 전공자들이 기술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3000여개의 표면, 기술, 유약과 접착제 등을 개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달걀 껍데기를 잘게 부수고 염색을 한 뒤 접착제와 유약 등 기술처리해 벽 패널 등 인테리어 제품을 만든다. [뷰티풀 뉴스 유튜브채널]

오늘날 지속가능성은 인테리어와 가구 산업에 널리 적용되고 있다. 동물 창자로 만든 조명, 해조류 등을 활용한 바이오플라스틱 가구 소품 등이다. 이들은 제품 수명이 다해도 산업 폐기물을 배출하지 않고 원래 상태의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 중 달걀 껍데기는 칼슘이 풍부해 견고함이 생명인 건축 자재로 애용된다.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달걀 껍데기를 원재료로 써서 3D프린터로 찍어낸 벽돌. [트위터]

‘파베르제의 달걀’은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2021년 11월 17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파베르제의 황제의 달걀 수집품이 전시돼 있다. [게티이미지]

파베르제(Faberge)의 달걀은 제정 러시아 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보석 세공 가문 파베르제가 만든 달걀 모양의 보석 제품으로 그 모양이 화려하고 정교해 사치품의 상징으로 통한다. 1885년~1917년 보석 세공사 칼 파베르제가 만든 69개 중 57개가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유명한 건 황제의 달걀이다. 차르 알렉산드르 3세와 니콜라스 2세에게 바친 황제의 달걀 52개 중 46개가 현존한다.

황제의 달걀은 1885년 알렉산드르 3세가 부인 마리아 페도로브나가 고국인 덴마크를 그리워하자 파베르제에게 의뢰해 처음 만들어졌다. 페도로브나 황후가 부활절 선물로 받은 파베르제 달걀은 달걀을 열면 그 안에 황금 닭이 있는 재치있는 작품이다. 이를 받고 황후가 기뻐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황제는 매 부활절에 파베르제에게 달걀 보석을 의뢰해 부인을 위해 선물했는데 점차 그 모양이 화려하고 섬세해졌다. 황제의 달걀은 1년에 1~2개 만들어져 희귀했다. 매 부활절에 유럽 왕실과 귀족들은 올해의 파베르제 달걀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하며 소식을 기다렸다고 한다.

“회장님집 수납함 자개장 아니었어?”…달걀, 정말 화려하게 부활했구나! [한지숙의 스폿잇]
1984년 영화 '007: 옥토퍼시'에 나온 파브르제 달걀 스타일 보석. 2022년 9월26일 '돌아온 제임스 본드'( 'James Bond is Back') 크리스티 자선 경매에 전시됐다. [게티이미지]

영화 '007', '오션스 트웰브', '언터처블 1%의 우정' 등 다양한 영화에서 파베르제 달걀이 부호 저택의 소장품, 유명 박물관 전시에서 절도의 대상 등으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