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한일관계 정상화와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적인 관계 개선에 ‘물꼬’를 텄으나, 위안부·독도·후쿠시마 오염수 및 수산물 등 ‘불씨’가 남으면서 국민 여론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주 69시간 근로제’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논란이 된 근로시간제도 개편 역시 정책 혼선이 계속되며 반발이 거센 상태다. 직접 설명을 통해 현재의 난국을 정면돌파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역대 최장’인 23분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통상 국무회의 모두발언이 5분~10분 정도 분량인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발언은 TV로도 생중계 됐다.
해당 발언 분량은 5700여자(공백 제외)로, 윤 대통령은 이 가운데 약 80% 이상을 한일관계 개선의 당위성 강조에 쏟았다.
윤 대통령은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윈스턴 처칠의 발언과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단,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양국 간 새로운 파트너십을 선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차례로 언급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적으로 맞서다 협력관계로 돌아선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도 이제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며 “한일관계는 한 쪽이 더 얻으면 다른 쪽이 그만큼 더 잃는 ‘제로섬’ 관계가 아닌, 함께 노력해 함께 더 많이 얻는 윈-윈(win-win) 관계가 될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일 양국 정부는 각자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일관계의 정상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각자 스스로 제거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불과 닷새째인 이날 선제적으로 우리측의 일본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카테고리) 복원을 위한 법적 절차 착수를 지시한 것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정상화를 완료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한일관계 개선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용인에 조성 예정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유치 ▷LNG 분야 협력과 일본 기업들로부터 LNG 선박 수주 증가 ▷건설·에너지인프라·스마트시티 등 글로벌 수주시장 공동 진출 ▷한국산 제품 전반의 일본시장 수출 확대 등이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의 개선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뛰어난 제조기술과 일본 기업의 소부장 경쟁력이 연계돼 안정적인 공급망이 구축될 것”이라며 “양국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논의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두발언 말미에서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상한캡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주당 근로시간의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다.
윤 대통령은 또, “근로자들의 건강권, 휴식권 보장과 포괄임금제 악용 방지를 통한 정당한 보상에 조금의 의혹과 불안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임금, 휴가 등 근로 보상체계에 대해 근로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특히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 약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확실한 담보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노동시장 유연화는 그 제도의 설계에 있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수집할 것”이라며 “MZ근로자, 노조미가입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노동 약자와 폭넓게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