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식 온건축사사무소 대표 인터뷰
희미해져 가는 논의 기억을 복원한 이천의 논스페이스
카페를 걷다 보면 외부의 도시전망 산책로로 이어지는 시오스
흩뿌려진 물리적인 벽들로 내부와 외부의 중간계를 만든 나비공작소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 단순히 카페인을 충전하기 위해 카페에 가는 것은 이제 고릿적 이야기다. 현대인들은 일을 하거나 또는 만남을 갖고, 잠깐의 휴식 또는 영감을 얻기 위해 카페라는 공간을 찾는다. 카페의 효용이 다양해지면서 공간을 만드는 건축사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 특색을 살린 카페로 주목을 받아 2020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기도 한 온건축사사무소 정웅식 건축사를 인터뷰를 통해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웅식 건축사는 울산광역시에서 공부를 하고 실무를 한 ‘지역 건축가’다. 지방에 있는 건축물을 다수 작업하다 보니, 같은 건축 재료를 쓰더라도 지역과 자연 환경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 건축사는 “건축은 땅과 교감하며 대화를 하므로, 건축물이 들어서는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땅도, 자연환경도 변한다. 이에 정 건축사는 시간의 흐름까지 건축의 일부로 고려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건축은 예측 가능한 공간에 예측 불가능한 현상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정 건축사는 “요리로 빗대자면 신선한 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법이 요리의 정수인데 여기에 시간의 힘으로 새로운 풍미를 만들어 내는 요리도 있다”며 “건축 공간에 시간의 깊이와 변화가 더해지는 건축을 ‘숙성 건축’이라고 정의하고 싶은데, 이같은 느림의 미학을 반영한 숙성 건축은 탄생하는 순간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 속에서 살아가며 비로소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정 건축사의 가치관은 카페 건축에도 반영됐다. “항상 카페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잠시나마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며,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고 운을 뗀 정 건축사는 “항상 작업을 시작할 때 자연과 장소 그리고 건축주의 이야기에서 모든 영감을 받고, 오래도록 그 지역에 녹아들어 가는 건축 공간을 제공해 지속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자연보다 위대한 건축은 없다. 땅의 기억을 살려 만든 공간 '논스페이스'= 쌀농사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위치한 카페 논스페이스(NONSPACE)는 땅이 가진 기억을 활용한 공간이다. 벼농사에 필요한 물이 풍부해서 그런지 이천은 우리나라에서 화훼생산이 가장 많은 곳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논농사와 화훼농사의 유명세와 달리 더 이상 젊은 인구 유입이 없어 지역사회는 고령화 됐다.
건축주는 생명이 소멸된 장소인 이곳에 소통하는 지역문화를 만들어 지역을 소생시키는 건축공간을 구축하고자 했다. 정 건축사는 희미해진 논의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논길의 수로처럼 벽으로 조직된 중첩의 공간에 비어 있는 질서를 부여했다. 벽들로 직조된 공간에 내부공간과 나무, 돌, 수공간, 하늘, 자연 등을 담는 외부공간을 중첩시켰다.
특히 1층과 루프탑에 형성된 내부 교차공간은 다양한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가로 중첩과 세로 중첩을 연결해 다양한 확장 가능성을 표현했다. 보편화된 물리적 공간(NON-SPACE)이 아니라 차별화되고 실험적인 추상적 공간(NONSPACE)된 것이다. 일반적인 상업공간을 뛰어 넘어 지역 복합 문화공간의 플랫폼을 지향하고자 했다.
내부 공간은 볏짚 공간에 들어온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볏짚을 활용한 노출콘크리트 기법을 실험했다. 볏짚으로 구성된 볏단을 슬라브에 깔고 콘크리트를 타설했는데, 콘크리트에 볏짚이 박혀 있을 것으로 예상해 시간 경과 후 슬라브를 탈형하고 볏단을 제거했다. 콘크리트에 붙어 있는 볏짚은 그대로 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볏짚의 변화와 함께 공간의 분위기도 계속 변화되어 갈 것을 염두했다.
▶대지와 하천이 연결된 카페, 시오스= 시오스(ㅅ5S)는 하남의 오래된 구도심과 덕풍천이 만나는 결절점에 생긴 비정형의 대지에 들어선 카페다. 노후화된 이곳에 구도심과 신도심을 상호 연결하는 도심의 산책로로 젊은이들이 찾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공간을 구축하기에 비효율적인 두 방향으로 긴 비정형의 대지를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하고자 대지 형상대로 걸어 다니면서 하나의 공간 유닛이 연결된 도시 산책로를 만들고자 했다. 1층을 과감하게 비우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차장의 기능을 겸비한 도시 광장을 만들어서 도시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건축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하고 때로는 지나가는 이들의 휴게쉼터가 될 수 있도록 구축했다.
건축물의 내부에 진입하고 반 층을 올라가면 층의 개념 없이 두 단의 계단을 밟고 나면 다음 높이로 이어지며 계속 순환해서 올라가게 된다. 다양한 높이의 변화를 통해서 내부공간을 산책하고 나면 어느 순간 외부 도시전망대 산책로로 이어진다. 외부 도시전망대 공간 또한 실내바닥처럼 높이 변화를 주고 있으며 이 또한 계속해서 이어진 도시전망 산책로로 구성돼있다. 이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내부로 이어지는 순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연결된 하나의 다양한 조망을 위한 뫼비우스띠 산책로이다.
대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신도시로 개발될 미래가 공존하는 영역이다. 정 건축사는 뫼비우스띠로 구성된 산책로 개념의 공간을 다양한 시간성이 공존하는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하고 싶었다. 현재 시점에서 내부로 들어서면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성된 구조 벽체 프레임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형성되는데, 이는 미래의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균질의 공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성된 구조 지붕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원시성의 과거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존하는 시간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양한 깊이감을 만들어 낸다. 미래의 공간에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을 담을 수 있는 반투명한 특수 아크릴을 사용했고, 과거의 공간에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빛을 품을 수 있는 산속 이끼 낀 돌과 오래된 느릅나무 고재를 사용한 가구들이 배치돼있다.
▶자연 속 연결된 공간 '나비공작소', 우물의 경이로움에서 시작된 '동네가게 녹슨'=경남 밀양에 위치한 나비공작소 건축주는 고양이를 주제로 작업하시는 예술가 최인석 씨다. 밀양댐 주변의 한적한 대지로, 대추밭으로 사용되고 있던 곳을 지역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는 프로젝트였다.
정 건축사는 최 작가의 작업과 공간이 그저 자연 속에 있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건축을 구축하는 물리적 장치를 최대한 없애고 최소화시켰다. 그의 작업물에서 찾은 공통점인 ‘선을 자연에 흩뿌리는 방식’을 택해 몇 개의 선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없앴다. 선은 건축에서 곧 벽으로 구축됐다.
흩뿌려진 벽은 때로는 내부 공간의 요소가 되고 때로는 외부 공간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형을 따라 흐르는 긴 선형의 최소 지붕이 ㄷ자 배치로 놓이며 내부 공간을 구축한다. 지붕을 둘러싸고 내·외부 공간의 경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 유리로 마감해 자연에 열린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는 자연의 흩뿌려진 벽들 사이에 놓여 있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흩뿌려진 물리적인 벽들에 의해 방문객은 이도 저도 아닌 하나로 열린 중간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울산에 위치한 동네가게 녹슨은 노후화된 지역의 도시풍경들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오랜 시간이 축척된 장소성과 혼재해 있는 도시이야기, 그 곳에서 살아남은 과거의 옥골샘 우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도 여행 때 방문한 우물의 유적에서 경험한 경이로움을 건축으로 만들고자 한 정 건축사의 의도가 반영됐다.
녹슨은 고가의 재료로 알려진 동을 사용했으나 저예산 작업이 가능했다. 부착 시 하지작업(밑바탕 작업)을 생략해 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공간과 건축을 구축하는 외피를 분리한 아이디어가 작업물의 완성도를 높였다.
정 건축사는 “지금까지 못해 본 새로운 프로그램의 작업들을 해보고 싶다"며 "특히 미술관이나 전시관 그리고 예술가들과 협업 할 수 있는 문화공간들을 만들어 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들어지는) 작업들이 각 지역과 교감하고 사람들에게 작은 영감들을 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