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도는 그 경제적 규모나 성장세에 비해 우리에겐 신비의 나라, 특이한 여행지 등 문화적으로 좀더 관심이 가는 나라입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집계된 인도 관련 펀드 수는 24개로, 중국(181개)에 비하면 매우 적죠.
하지만 그런 인도가, 정확히 말하면 인도의 한 재벌 기업이, 국내 독자들께도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가우탐 아다니 회장이 이끄는 아다니그룹이죠. 개인적으로 15년 전쯤 인도에 약 1년 간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아다니그룹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타타그룹에 대한 인도 국민들의 존경심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고 릴라이언스그룹은 통신시장을 평정하면서 승승장구했는데 말이죠.
찾아보니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같은 지역 출신으로, 정부와 손을 맞잡고 요 몇 년 사이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라고 하네다. 지난해 말에는 아다니 회장이 전세계 부자 3위에 오르기까지 합니다.
그런 거대 기업이 지난달 24일부터 휘청이고 있습니다. 바로 미국 힌덴버그 리서치라는 곳이 발표한 보고서 때문인데요. 아다니그룹 핵심 상장사들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고 주가조작과 분식회계에도 연루돼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즉각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고 시가총액은 1200억달러(약 150조원)가 넘게 증발했습니다. MSCI는 아다니그룹 계열사 주식 비중을 축소했고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4개 계열사에 대한 신요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습니다.
힌덴버그 리서치는 과거 전기트럭 업체 니콜라가 시장에서 대박을 쳤을 때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고 공격한 뒤 결과적으로 승리해 유명세가 치솟은 업체입니다.
그럼 좀더 자세히 알아보죠.
▶힌덴버그 리서치 같은 업체를 일반적으로 '공매도 전략을 쓰는 행동주의 투자자'(short selling activist)로 분류합니다. 단순히 주가 하락을 노리고 공매도에 나서는 게 아니라 공매도를 해놓고 이 회사 주가가 너무 높다는 보고서를 내는 구체적인 활동까지 하는 헤지펀드의 한 종류입니다.
그럼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누구든 공매도를 해놓고 해당 기업 주가가 내려갈 것이라고 보고서를 마구 써대서 이익을 얻는다면 문제 아닐까요? 리서치 입장에선 자신의 이익과 보고서가 바로 연결되니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때문에 이런 행동주의 공매도 세력이 보고서를 발간하려면 엄격한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보고서가 무료로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돼야 합니다. 특정 세력이 정보와 이익을 먼저 얻거나 독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다니 그룹에 대한 힌덴버그 리서치는 홈페이지에서 바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주가가 내려갈 것이라는, 즉 현재 주가가 과대평가 돼 있다는 근거가 명확하고 사실에 기반(fact-based)해야 합니다. 이것이 단순히 애널리스트들이 투자의견을 제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부실한 재무구조, 회계부정 같은 근거가 때문에 필수적입니다. 니콜라, 아다니그룹에 대한 힌덴버그의 공격을 보면 아주 명확한 근거가 제시돼 있습니다.
▶그럼 왜 우리나라에선 이런 행동주의 공매도 세력은 찾아보기 어려울까요?
사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힌덴버그 리서치 같은 헤지펀드는 별로 없습니다. 일단 투자기회와 수익률 측면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사실에 기반해 어떤 기업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명확히 밝혀내는 게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더군다나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은 이론상 100%가 최대치입니다. 주가가 하락한만큼 공매도 입장에선 수익이기 때문에 주가가 0원이 되는 게 최상입니다. 니콜라 시가총액은 고점 대비 94% 이상 폭락했다니 상당히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반면 주가가 예상과 달리 계속 오르면? 그만큼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과거 아마존의 부흥기에 공매도 세력이 피눈물을 흘렸죠. 수익 최대치는 100%로 막혀있는데 손실은 무한정인 위험을 떠안고 시작해야 하는 게 공매도입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20년 이후 힌덴버그가 목표로 삼은 종목은 약 30개 가량이고 보고서가 발표된 바로 다음날 주가는 평균 약 15%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6개월 후 평균 하락률은 26% 가량입니다. 첫날의 임팩트는 강렬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위력은 떨어집니다.
힌덴버그는 이번 아다니그룹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유령회사가 세워진 것으로 의심되는 나라를 찾아다니기도 했죠. 이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인 것을 감안하면 선뜻 발을 담기 어려운 투자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기업의 반발과 소송전, 해당 기업 주식을 산 일반 투자자들의 공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때문에 힌덴버그는 자신들이 단순히 수익률만 좇는 게 아니라 기업부정을 잡아내는 공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규제 당국도 신경써야 합니다. 2021년 미 법무부는 공매도에 의한 잠재적 거래 의혹을 들여다본다며 헤지펀드 수십 곳과 연구원들을 조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혐의도 없다고 나왔지만, 회사와 연구원들 입장에선 당국의 수사망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부담입니다.
또 미국의 경우 '업틱 룰'(Up-tick rule)이란 게 존재합니다. 주가가 전날보다 10% 이상 빠지는 폭락장에서는 주가를 내려가는 가격으로 팔면 안되는 것입니다. 폭락장에서 신이 나야할 공매도 투자자 입장에선 직전 호가보다 올려서 팔아야 하니 수익률 제약 요인입니다. 또 우리나라도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한 것처럼 시장이 급변할 시 당국에 의해 공매도 자체를 하지 못할 수 있는 규제 위험도 있습니다.
▶그럼 딱히 투자 하기도 쉽지 않고, 수익률 측면에서도 부담이 큰 공매도 투자는 왜 하는 것일까요?
공매도 자체만 놓고 보면 매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전통적 투자와 맞물리면 분산투자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안에 담아둔 일반적인 자산군과 공매도 투자 자산의 상관관계는 매우 낮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습니다. 때문에 공매도 자체의 기대수익은 작아도 포트폴리오 전체적으로 보면 위험은 줄이고 기대수익은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힌덴버그 같은 전문적인 공매도 행동주의 펀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종목에 대한 '매도'(Sell) 투자의견을 찾기가 참 힘듭니다.
미 금융정보업체 팩트세트에 따르면 분기마다 약간 다르지만 투자의견 제시 보고서 가운데 약 4~5%는 매도의견입니다.
이달 들어 테슬라에 대해 나온 보고서는 총 23개입니다. 이 가운데 '강력 매수'와 '매수'는 각각 4건으로 총 8개 보고서가 매수를 추천했습니다. '보유'(Hold)는 8건입니다. 6건은 '하향'(underperform)이었고 '매도'도 1건 있었습니다. 약 30% 가량(하향+매도)이 테슬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낸 것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의견을 제시한 기업분석 보고서 1만4149개 가운데 비중축소를 포함한 매도 의견 보고서는 단 6건에 불과합니다. 비율로는 0.04%입니다.
이를 두고 애널리스트들이 소신이 없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같은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애널리스트 개개인의 자질이나 양심 문제 때문일까요?
직업으로서 애널리스트에게 훌륭한 보고서는 좋은 평가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인입니다. 하지만 매도 보고서가 훌륭한 보고서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매도 보고서는 물론이고 자신이 담당하는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문구나 표현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기업의 강력한 반발을 살 수 있습니다. 그냥 싫은 소리 듣는 것으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지만 문제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재무활동이 얼마나 많고 활발한지, 관련 업무를 하는 분이 아니라면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요 직책 가운데 최고경영자(CEO) 다음으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꼽힐 정도로 재무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재무활동을 하는데 증권사는 여러 도움을 주고 일거리를 따내 수익을 얻습니다. 이 비중이 증권사 수익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애널리스트에게 기업이란 비판과 평가의 대상인 동시에 잠재적인 고객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애널리스트라고 해서 상황이 다르진 않습니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증권사들도 기업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먹고 삽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자신있게 매도 의견을 낼 수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힘의 불균형입니다.
우리나라는 산업자본의 힘이 월등합니다. 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산업자본 덕이란 인식이 크죠. 그에 비해 금융자본은 '관치 금융'이란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정권의 비호 아래 산업자본 발전을 위해 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금융자본이 일찌감치 산업자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서로 성장을 주고 받았습니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과 산업에 과감한 투자로 실제 경제 성장의 큰 길을 트고 산업자본은 그 결실을 금융자본과 나눴습니다. 둘 간 힘의 균형이 비등비등합니다.
아주 거칠게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가 테슬라에 대해 매도 의견을 냈다고 해서 테슬라 CFO가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에게 전화해서 앞으로 너희랑 거래를 끊겠다거나 상대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 냈다가 그 기업에 불려가는 치욕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증권사가 그 애널리스트를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오늘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힘의 불균형이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구조를 외면한 채 애널리스트 개개인에게 매도 보고서를 내라고 요구하거나 내지 않는 것을 두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에서 증권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2020년엔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