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에서 우리 돈 1조6000억원(13억5000만달러)의 ‘잭폿’이 터졌습니다. 29년 간 나눠 받거나 일시불로 받을 수 있다던데, 일시불로 받으면 9000억원(7억2460만달러)에 달한다는군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지난해 4월 발표한 한국 부자 순위를 보면 36위에 오른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이사가 12억달러이니깐, 단숨에 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거액입니다. 더군다나 부자들 자산은 대부분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당장 손에 현금 9000억원을 쥐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아니라 그냥 바로 재벌되는 겁니다.
혹시나해서 짧게 말씀드리면, 당첨되면 29년 간 나눠 받지말고 꼭 일시불로 받아야 합니다. 29년 간 물가상승률을 무시할 수 없고 재투자 수익률을 감안하면 당장은 1조6000억원이 더 커보이지만 눈앞의 9000억원이 최종적으로 훨씬 이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권 이야기가 나오면 꼭 한마디씩 훈수를 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며 괜히 돈 헛쓰지 말란 것이죠.
일리는 있습니다. 우리나라 로또의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만분의 1에 달합니다. 이 정도면 가위바위보를 23번 연속 이기는 확률 정도입니다. 기대값(확률X당첨금)을 따져보면 995원정도 됩니다. 여기에 세금을 제외하고 실수령금으로 기대값을 따지면 400원을 약간 웃돕니다. 1000원 주고 로또 한 장을 사면 600원씩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차라리 편의점에서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2개 사 먹겠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로또는 많이 희망적입니다. 이번에 당첨자가 나온 미국 복권(메가밀리언스)의 당첨확률은 약 3억분의 1입니다. 사실상 제로(0)이죠. 당연히 기대값도 0에 가깝습니다.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이런 밑지는 장사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로또 판매점은 여전히 성업 중이고 매주 토요일이면 당첨번호를 확인하느라 초조해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고 그건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일까요?
▶일단 경제학적으로 복권 구매를 이해해 보겠습니다.
주류 전통경제학, 즉 신고전주의부터 간략히 짚고 넘어가죠. 전통경제학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시장’과 ‘시장원리’를 기본으로 합니다. 또 인간은 합리적(rational)이라고 가정하죠. 한정된 재화로 효용을 최대화하도록 의사결정을 합니다.
사실 일단 여기서 복권을 구매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효용’이란 개념 때문이죠. 즉 어떤 인간이 경제적 선택을 할 때 기대값이 아니라 기대효용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행동경제학의 시초로 불리는 대니얼 베르누이가 제시한 것입니다.
10만원을 딸 확률이 20%고 100만원을 딸 확률이 5%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이 경우는 후자의 기대값이 5달러로, 전자(2달러)보다 높으니 대부분 100만원에 내기를 걸 겁니다.
그런데 만약 1000억원을 딸 확률이 100%이고, 10조100원을 딸 확률이 1%라면? 전자의 기대값은 당연히 1000억원이고, 후자는 1000억1원입니다. 후자가 기대값이 더 높습니다. 그렇다고 후자를 선택할 분 계신가요?
기대값이 어떻든, 액수 자체가 커지면 인간의 선택은 기대값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걸 베르누이는 알아챈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아무리 복권 당첨 기대값이 작아도 당첨됐을 때 얻을 기대효용이 높다면 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통경제학만으로는 매주 꾸준히 복권을 사들이는 걸 이해할 순 없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지금까지 로또를 사는데 150만원정도 썼습니다. 차라리 이 돈을 가족에게 썼다면 좋은 아빠, 훌륭한 남편소리를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위험(risk)을 대하는 행동경제학과 전통경제학의 차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 간단히 행동경제학을 좀 짚어볼까요?
▶2002년 대니얼 카너먼이란 분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여겨지던 행동경제학이 인기 스타가 됐습니다.
전통경제학은 인간이 위험회피적(risk aversion)이라고 가정합니다. 같은 효용을 얻을 때 무조건 덜 위험한 선택을 한다는 것이죠. 타당해보이죠?
반면 행동경제학은 위험회피적일뿐 아니라 위험중립적(risk neutral)이거나 위험추구(risk seeking)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일부러 위험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오징어게임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모든 인간이 위험회피적이라고만 하면 이 게임은 아예 성립이 안됩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전통경제학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나눔, 희생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경제적 이익(self-interested)을 추구한다고 가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벽이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지영이는 설명이 안되죠)
그럼 위험회피적일 때와 위험중립적, 위험추구적일 때 효용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 한번 볼까요.
50%의 확률로 200만원을 받을 수 있고 50%의 확률로 1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 기대값은 150만원입니다.
위험회피적이라면, 기대값이 150이라도 실제 200받았을 때 얻는 효용의 크기와 100받았을 때 느끼는 효용의 크기가 다르죠. 효용손실분(loss of utility)이 얻는 것(gain of utility)보다 큽니다. 그러면 확실성등가(certainty equivalent)가 기대값보다 작습니다.
확실성등가란, 확률로 어떤 기대값을 주는 게 있고 확실하게 얼마를 준다고 할 때, 둘을 같게 만드는 값입니다. 쉽게 말해, 무조건 돈을 얼마 준다고 하면 기대값이 150만원인 내기에 응하지 않을 것인가입니다.
저는 120만원을 준다면 내기에 응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50%의 확률로 200만원을 따게 됐을 때 그 기쁨보다는, 100만원을 받게 됐을 때 ‘차라리 120만원 받고 말걸’하고 땅을 칠 때의 속쓰림이 더 클 것 같거든요. 그럴바엔 확실히 내 손에 120만원이 쥐어지는 게 좋습니다.
문제는 바로 위험추구적일 때입니다. 이 경우 잃었을 때의 쓰라림(loss of utility)보다 땄을 때의 기쁨(gain of utility)이 더 큽니다. 확실성등가가 기대값보다 더 크죠. 못해도 100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150을 선택합니다.
복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로또의 1등 당첨 기대값은 400원정도입니다. 그걸 1000원 주고 사는 것이죠. 확실한 1000원을 주고 불확실한 400원을 선택하는 셈입니다. 만약 기대값은 그대로 400원인데 로또 한 장 값이 1만원이 된다면 어떨까요?
반대로 지나치게 위험회피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보험을 너무 많이 드는 사람이 대표적인 예죠. 어디에 지진이 났다고 하면 지진 보험을 들고, 사돈의 팔촌 집에 불이 났다고 하면 고가의 화재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는 위험회피 성향이 아주 극단적인 경우입니다. 딱히 합리적이라고 할 순 없죠.
종합해서, 행동경제학에서는 돈이 아주 적거나 아주 많으면 위험회피적이라고 보지만 적당히 중간쯤 있으면 위험추구 성향이 일부 드러난다고 봅니다.
▶이처럼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위험성향은 제각각일 수 있다고 보지만 인간의 공통된 속성이 있다고 전제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위험회피(risk aversion)가 아닌 ‘손실회피’(loss aversion)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손실은 싫어한다는 겁니다.
A주식과 B주식 모두 앞으로 어찌될지 모를 것 같아서 팔아버리고 싶다고 합시다. 그런데 A는 현재 50% 수익이 나있고 B주식은 50% 손실이 난 상태입니다. 위험회피를 전제로한 합리적 투자자는 당연히 둘 다 팔아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죠. 일반적으로 정말 돈이 급하지 않는한 A주식은 팔고 B주식은 웬만하면 그냥 둡니다. 팔아버리는 순간 손실이 확정돼 버리기 때문이죠. 계좌에 찍힌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는 쓰라림보다 차라리 불확실성에 한번 더 베팅을 걸어보는 겁니다. 손실 앞에서 위험추구성향이 되는 흔한 투자자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통경제학에선 소비(consumption)나 저축(saving)은 아예 얘기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소비와 저축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가정하죠. 단기 소비를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완벽히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당첨되지도 않을 로또를 매주 1000원씩 사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인 것이죠.
또 전통경제학에선 돈의 구분도 없습니다. 하지만 설날 보너스 들어오시면 그 돈으로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명품 패딩도 사고, 하다못해 딸기도 3000원 더 비싼 걸 사기도 합니다. 또 통장마다 여행통장, 아이 대학 입학금 통장 같이 이름을 붙여서 따로따로 관리하기도 합니다. 이런 평범한 우리의 경제활동도 전통경제학만으론 설명이 불가능하죠.
▶위에 얘기들이 좀 따분하셨나요? 아무래도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들을 장황하게 풀다보니 그리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지난해 블룸버그에 ‘어째서 복권을 사는 게 돈낭비가 아닌가’라는 칼럼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대 잭폿인 파워볼 1등 당첨금 20억4000만달러(약2조5336억원)이 터졌을 때입니다.
경제학 교수이고 여러 훌륭한 책도 많이 쓴 테레사 길라르두치라는 분은 아주 쉽게 복권 구매를 추천하면서 아래와 같이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2달러짜리 복권 한 장 구매해서 얻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즐거움이 2달러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 남는다는 것입니다.
복권 한 장을 사서 커피숍에 앉아 당첨이 되면 뭘할까 꿈꿔 보신 적 있으시죠? 여행은 어디로 갈까, 기부도 좀 하면서 착하게 살아보자, 지긋지긋한 직장에서도 해방이구나!
단 2달러만으로 이런 즐거운 상상을 통해 스스로 정신적 치유가 되니, 가성비 최고의 힐링인 셈입니다. 그러니 도박장에 가는 것보다 복권을 추천한다고 테레사 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배우신 분이 말씀도 잘하십니다.
다만 테레사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어차피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거의 없으니 여러 장 사지는 말라고. 확률 제로(0)에 2를 곱하나 6을 곱하나 어차피 0이니까요. 저는 로또를 매주 3000원만 사고 있습니다. 테레사 교수님 말씀을 잘 따르고 있죠. 헤헤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 기자입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한국협회 금융지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