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스 교수 신작 ‘운이란 무엇인가’

고대 운명의 신부터 확률, 알고리즘까지

행운과 불운에 관한 오류와 진실 밝혀

NFL 승패 따져보니 운 48%,실력 52%

프레이밍·의미·취약성이 운 판단에 영향

“운 같은 건 없다, 인지적 착각일 뿐”주장

[헤럴드경제=이윤미 선임기자]플라톤의 유명한 저서 ‘국가’는 정의의 본질, 조화로운 삶의 방식, 이상적 정치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운명 철학이기도 하다. 서양철학의 시초로 불리는 이 책에서 플라톤은 엉뚱하게 내세에 관한 설화를 들려주는데 바로 ‘에르의 신화’다.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 에르는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 내세에서 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에르에 따르면, 망자의 혼은 고통의 섬이나 축복의 섬에서 1000년을 보낸 후 육체의 상태로 다시 바뀌는데, 제비뽑기를 통해 어떤 삶을 살지 선택이 가능하다. 라케시스의 제비뽑기 상자에서 1번을 뽑은 자는 폭군의 생애를, 유명한 어릿광대는 유인원을, 다른 자들은 백조, 사자 등을 택한다. 오디세우스는 마지막에 구석에 처박혀 있는 평범한 시민의 생애를 선택하고 만족해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숫자가 매겨진 표를 뽑는 제비뽑기 자체가 무작위인데다 순서에 따라 원하는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뽑은 숫자에 따라 생이 달라지는데, 플라톤은 다음 생애를 지혜롭게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북적book적]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건 운이 없어서일까
“운이란 우리 자신의 행위이며,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점이다. 언젠가는 쓸모가 있으리라 기대하며 고집스럽게 끌어안고 있던 먼지 쌓인 묵은 개념을 머릿속에서 씻어내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이다. 운을 놓아버리면 세상 속에서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로서의 우리 위치를 회복할 수 있다.”(‘운이란 무엇인가’에서)

새해 운수 관심 많지만…헤일리 교수 “운 같은건 없다”

새해 벽두가 되면 한 해의 운수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혹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자신의 운세가 어떨지 점쳐보기도 한다. 나의 의지나 행동과는 상관없이 어떤 우연성이 행과 불행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은 자연 현상이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이다.

스티븐 D. 헤일스 미 펜실베이니아 블룸스버그대 철학과 교수는 ‘운이란 무엇인가’에서 ‘운이란 골치아픈 환상’에 불과하며, “운같은 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헤일스는 고대의 철학부터 현대의 수학, 과학까지 운의 실체를 탐색하며 우리가 상상 속 괴물과 싸워왔음을 차근차근 입증해나간다.

운은 그리스에서 티케라는 신으로 불리는데, 변덕스럽게 삶을 조종하는 것으로 여겼다. 티케 앞에 인간은 무력함을 인정하고 행운을 바라는 수 밖에 없다. 티케는 로마로 건너가 포르투나로 바뀌는데 널리 숭배의 대상이 됐다.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새 로마를 지을 때 포르투나를 모시는 신전을 반드시 짓도록 했다.

운에 대한 믿음은 각종 부적과 점을 만들어냈다. 가령 탄생석은 4000년 넘게 그리스 역사와 문화의 일부였고, 지금도 행운의 부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편자 역시 기원전부터 행운의 부적으로 통한다. 기원전 2000년 무렵 이집트인들은 한 해의 하루하루를 이집트 신들끼리의 다양한 상호 관계와 연관시켜 길일과 흉일 달력을 완성했다. 거의 3000년 동안 사용된 이 달력에는 행운을 얻기 위해 이날은 은 어떤 음식을 먹지 말고, 어떤 동물을 죽이지 말라는 등 구체적인 지침이 담겨있다.

주사위를 이용하거나 제비뽑기를 해 점을 치는 것 역시 5000년 전부터 운과 결합, 횡행했다. 주사위로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제비뽑기로 결혼을 하지 않기로 정한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 등은 운을 이용해 신의 뜻을 알아내려 한 경우다.

갈릴레오도 연구한 ‘운의 원리’

르네상스 시대에는 확률 이론이 발전하면서 운의 원리에 눈이 트인다. 과학자 갈릴레오 마저 그의 후원자 대공의 성화에 못 이겨 도박을 연구했다. 당시엔 주사위 세 개로 하는 게임이 인기였는데, 대공은 주사위 눈의 합이 9가 되는 경우보다 10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북적book적]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건 운이 없어서일까
[게티이미지 제공]

그렇다면 확률 이론으로 운의 문제가 완전히 풀렸을까? 우리의 삶은 오로지 실력과 의지의 결과일까?

32개 미식축구팀을 대상으로 동전던지기 시뮬레이션을 수천 번 시행한 실험은 실력과 운의 관계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수천 번의 동전던지기로 승패 실험을 한 결과, 그래프는 아주 표족한 종모양으로 팀의 승패가 순전히 운으로 결정됨을 보여준다. 반면 경기의 승패가 100퍼센트 실력으로 결정된다고 가정하면, 1등부터 꼴지까지 순번을 매기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순위가 높은 팀이 항상 이길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알고리즘을 이용해 NFL(미국 프로풋볼)의 5000시즌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는 아주 평평한 곡선 그래프로 나온다. NFL의 실제 승패 분포는 어땠을까?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기록은 ‘순전한 운’과 ‘순전한 실력’ 그래프 사이의 중간에 둥근 곡선 그래프 모습을 띤다. 즉 미식축구팀의 승패는 48퍼센트의 운과 52퍼센트의 실력에 달려 있다.

운은 ‘인지적 착각’…스스로 만드는 것

운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의미가 있고, 양상적으로 취약한 사건이 운과 관련된 것으로 여긴다. 까딱하면 잘못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운이 좋은 것으로 여긴다. 현실 세계에서 작은 변화 하나만 일어났다면 그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가능 세계들간 거리를 본능적으로 측정하여 취약함과 견고함을 파악하는 방식인데, 저자는 이 이론이 가능 세계의 거리를 결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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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밍 효과와 개인의 성향 역시 운에 대한 판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복권 번호 여섯 개 중 하나를 못 맞혀서 1등에 당첨되지 못한 경우, 40년 간 벼락을 일곱 번 맞은 산림감시원은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똑같은 사건도 관점이 바뀌면 엄청난 행운 또는 끔찍한 불운이 된다.

저자는 운의 역사와 다양한 문화를 살피며, 운이 인지적 착각임을 강조한다. 즉 운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운이란 무엇인가/스티븐 D. 헤일스 지음, 이영아 옮김/소소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