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해외 전문가 제언하는 ‘한국 안보전략’ 활용이 필요하다

해외 석학들이 종종 한국에 대해 한 말씀하는 것을 일부 국내 연구자나 언론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는 풍조를 필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 석학이라 하더라도 분야에 따라 한국에 대해 전문성을 갖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을 유의 깊게 관찰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경청할 만한 내용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코로나19의 부분적 완화로 그동안 대면회의를 꺼리던 학회와 연구소들이 최근 활발하게 해외 전문가들을 초빙해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최근 몇 차례 미국과 일본 안보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최근 세종연구소에서 주최한 핵 전략 관련 세미나에는 미국에서 한국 핵정책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대변해온 학자들이 초청돼 활발한 논의를 벌였다. 로버트 아인혼 브루킹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 국무부 국제군축담당 특보를 지낸 경력에 걸맞게 한국이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할 경우 국제사회 신뢰도가 저하되고, 한미 원자력협정 폐기로 심각한 에너지 및 경제난이 가중될 것이며, 한미 동맹 해소 가능성도 생길 것이라는 등 8가지 이유를 들어 한국 핵무장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반면 워싱턴포스트 공동 기고를 통해 한국이 NPT 탈퇴 요건을 정한 제10조의 대상국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대릴 프레스 다트머스대 교수는 냉전기 서유럽국가들이 소련의 핵위협 증대에 대응해 영국과 프랑스가 핵무장을 선택하고, 서독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 체제를 구축했듯이 지금 한국은 다양한 핵정책 옵션을 적극 검토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브루스 클링너 해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 핵능력 증대에 대응해 한미일 간 연합군사훈련을 포함한 안보 협력을 늘릴 필요가 있으며, 그 일환으로 확장억제 관련 3국 협의 채널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제니퍼 린드 다트머스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NPT 제10조에 대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해 국제사회의 이해를 확보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할 카드로 사용할 것을 제언했다.

한편 이달 초 한국국제정치학회 세미나에는 일본 전문가들이 참석해 한일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발표자로 나선 방위연구소의 사다케 도모히코 박사는 쿼드(Quad)와 오커스(AUKUS)가 인도·태평양지역 안보질서에서 갖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지난 5월 쿼드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간 상호 위성정보를 공유하는 체제 구축이 합의된 점, 그리고 향후 10여년간 호주에 10여척의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이 제공될 것이라는 점을 소개했다. 그는 쿼드와 오커스가 미-중 간 전략적 경쟁에서 게임체인저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도 일본과 더불어 쿼드 등 소다자 안보협의체에 참가할 것을 기대했다.

물론 해외 전문가들의 제언들이 우리가 처한 여건에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만 우리로서는 북한 핵능력 및 공세적 핵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미-중 간 전략적 경쟁 심화를 배경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안보질서 구축에 어떻게 관여해 갈 것인지가 국가안보 전략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비상한 한반도 내외의 안보 상황에 대응해 그동안 금기시된 논의까지 포함해 이들이 제안한 한국 핵정책 옵션을 다양하게 테이블에 올려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보다 포괄적인 지역 내 안보협력체를 전향적으로 구축하는 방안도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입장에서 고려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가장 강력한 안보 전략 방안은 국내 정책결정자들과 연구자들의 중지를 모을 때 마련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과정에서 모처럼 한국을 찾은 해외 전문가들의 우정 어린 제언을 우리 국가안보 전략의 선택지 가운데 포함시켜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문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