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귀공자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1920년 1월, 프랑스 파리의 한 작은 집.
"이봐요들. 잘 있어요?" 옆집 이웃이 문을 두드렸다. "며칠째 집 밖으로 안 나오고 있어서. 혹시 무슨 일 있으셔?" 그는 문고리에 손을 댔다. 살짝 힘을 줬다. 허무하리만큼 쉽게 열렸다. "모디, 잔. 나 잠깐 들어갈게?" 그가 현관으로 발을 디뎠다. 아니, 여기 왜 이래…. 찬 기운이 그대로 옷을 뚫고 들어왔다. 집 안이 얼음장이었다. 문을 닫아도 밖에 있는 느낌이었다. 반쯤 열린 정어리 통조림이 발에 걸리적거렸다.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지, 집이 아니라 창고 같았다.
"어디 있어? 안방에 있어요?" 그는 집 깊숙한 곳에서 인기척을 들었다. 잔뜩 쌓인 종이박스와 술병 따위를 치우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가 본 광경은, 만삭이 된 아내 잔이 초주검 상태의 남편 모딜리아니를 꽉 끌어안고 있는 것이었다. 시장 바닥에 깔린 공업용 천까지, 아무튼 추위를 막을 만한 것은 싹 다 모아뒀다.
잔은 혼이 쏙 빠진 듯했다.
공포에 사로잡혀 넋이 나갔다. 잔의 품에 안긴 모딜리아니는 곧 죽을 것 같았다. 언뜻 봐도 중병이었다. "잔? 이봐, 잔. 정신 차려봐요." 예고 없이 찾아온 이 손님은 잔의 앙상한 몸을 마구 흔들었다. 잔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화들짝 놀랐다. "아저씨…. 남편이 아파요. 며칠째 일어나질 못해요." 잔은 취한 듯 중얼댔다. "잔, 당신은 괜찮아요? 당신도 누구를 보살필 처지는 아닌 듯한데?" "이 사람이 죽으면 저도 따라 죽을래요. 아저씨. 이 사람이 가면 저도 따라간다고요." 잔은 대화가 되는 상태가 아니었다. 모딜리아니는 그런 잔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는 당장 넘어갈 듯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옆집 이웃이 의사를 불렀다. 왕진 가방을 든 의사가 급하게 찾아왔다. "상태가 심각해요. 당장 입원해야 해요." 그가 청진기를 내려놨다. 표정에 그늘이 졌다. 의사가 침을 꼴깍 삼켰다.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참은 듯했다.
'비극적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1917년 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파리 몽파르나스의 카페에서 잔 에뷔테른을 봤다. 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모딜리아니는 33세, 잔은 19세였다. 비극적 사랑의 종이 울렸다. 모딜리아니는 잔의 윤기 나는 갈색 머리에 빠졌다. 잔의 푸른 눈동자에 푹 젖었다. 눈처럼 새하얀 흰 피부를 찬양했고, 신비롭기까지 한 성숙함에 감동했다.
모딜리아니를 아는 이들은 잔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그 잘생긴 파리의 귀공자께서는 이쪽 세계에서 유명한 스타였다. 뚜렷한 이목구비, 우수에 찬 분위기는 많은 이의 마음을 흔들었다. 모딜리아니도 자신의 강점을 즐겼다. 그는 화려한 외모, 통통 튀는 성격의 여성을 좋아했다.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심심하면 옆자리를 갈아치웠다. 술집을 전전하는 그는 불쏘시개 같은 사랑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모딜리아니가 잔을?
잔은 분명 예뻤지만 얌전하고 기품이 있었다. 조각가 자크 립시츠는 잔을 놓고 "고딕적인 외모를 가졌다"고 했다. 고딕 성당이 주는 고고함, 순결함을 갖췄다는 뜻이었다. 술과 약을 달고 산 귀공자님께서 그간 어울린 여성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모딜리아니 자신도 놀랐다. 잠깐 스쳐 가는 호기심이 아니었다. 열병의 포로가 된 모딜리아니는 잔에게 고백했다. 잔은 수줍게 웃었다. 사실 잔은 모딜리아니를 오래전부터 봐왔었다. 잔은 당시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Académie de la grande chaumiere)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 근처에 모딜리아니의 낡은 작업실이 있었다. 잔은 고주망태가 된 이 남자가 작업실 문 앞에서 허우적대는 걸 여러 번 바라봤다.
이상하게 이 남자에게 자꾸 끌렸다.
괜히 처연하고 애틋했다. 생각하면 가슴이 뛰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모딜리아니의 고백을 받은 잔은 꿈을 꾸는 듯했다. 모딜리아니는 초조하게 잔의 답을 기다렸다. 잔은 그의 어깨에 몸을 살짝 기댔다. 모딜리아니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둘은 그렇게 사랑의 파도에 휩쓸렸다.
모딜리아니는 잔을 '누아 드 코코(Noix de coco·코코넛)'라고 불렀다. 그는 그녀의 머리 모양이 반질반질한 코코넛을 닮았다고 했다. 피부마저 코코넛 속살처럼 뽀얗다고 했다. 잔은 모딜리아니에게 옛일을 묻지 않았다. 그의 자유분방한 과거를 알면서도 덮어줬다. 잔은 모딜리아니를 계산 없이 좋아했다.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게 사랑했다.
“제 얼굴에 왜 눈동자가 없어요?”
"죽어서도, 당신의 모델이 돼줄게요."
잔은 종종 모딜리아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나 잔의 가족은 모딜리아니를 인정하지 않았다. 잔의 부모는 로마 가톨릭의 중산층이었다. 이들의 눈에 모딜리아니는 재앙이었다. 이 남자가 가진 건 곱상한 외모 뿐이었다. 돈도, 명예도 없는 무명 화가였다. 술과 약에 찌든 난봉꾼이었다. 특히 걱정되는 건 그의 병약함이었다. 삐쩍 말라선 계속 기침을 했다. 걸음걸이마저 영 시원치 않았다. 곧 무슨 일을 치를 듯했다. 잔보다 14살이나 더 많은 점도 충격적이었다.
잔의 부모는 잔을 설득했다. 제발 이 남자는 아니라고 애원키도 했다. 줄곧 부모 말을 잘 따른 잔은 이번 만은 고집을 부렸다. 부모처럼 신앙심이 깊던 잔은 신을 믿듯 사랑도 믿었다. 잔은 모딜리아니와의 만남을 숙명이자 확신으로 이해했다. 그녀는 결국 짐을 쌌다. 집을 나왔다. 모딜리아니의 작업실로 갔다. 모딜리아니는 또 술에 취해 작업실 문 앞에 잠들어 있었다. 잔은 그를 부축했다. "잔? 당신이 왜 여기에?" 모딜리아니가 혀가 꼬부라진 채 중얼댔다. "내가 왔어요." 잔은 땀에 젖은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날부터 둘은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았다.
모딜리아니는 작업실에서 틈틈이 잔을 그렸다. 길쭉한 얼굴, 사슴처럼 가늘고 긴 목, 우수에 찬 표정은 기괴한 듯 기괴하지 않았다. 외려 차분하고 안정적이었다. 우아하면서도 서글퍼 보였다. "이런 그림을 계속 그릴 건가요?" 언젠가 잔이 물었다. 잔은 그의 그림이 좋았다. 그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었다. 동화 속 소녀처럼 예쁘게만 그리려는 흔한 화가들과는 달랐다. 모딜리아니는 말없이 웃었다.
사실 그의 꿈은 화가가 아니었다. 조각가였다. 실제로 그는 붓 말고 조각칼을 쥔 적이 있다. 옛 아프리카 조각상이 너무 좋아 흉내를 냈다. 문제는 또 건강이었다. 그는 돌가루 틈에서 살았다. 폐가 약한 그는 각혈을 했다. 넉넉지 않은 사정도 괴롭혔다. 돈이 없으니 근처 공사장에서 주춧돌을 훔쳐야 했는데, 그러기도 지쳤다. 약골 중 약골이던 그가 파리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림 뿐이었다.
그는 대신 아프리카 조각상을 쏙 빼닮은 인물화를 그렸다.
고집스러웠다. 이게 무슨 인물화냐는 말에도, 카메라가 생겼으니 인물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에도 끝끝내 인물화를 놓지 않았다. 그 결과 어느 사조에도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화풍이 등장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그리는 제 얼굴에는 왜 눈동자가 없어요?" 언젠가 잔은 이렇게도 물었다.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잔의 눈은 텅 빈 아몬드 같았다. 외려 깊어진 두 눈이 전해주는 감정은 묘하기도 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모딜리아니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때 눈동자를 그릴게." 그가 그녀의 동그란 푸른 눈을 바라봤다.
‘누드 화가’ 오명…술과 약에 의존하다
잔은 모딜리아니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더 불행해지기만 했다. 잔을 만난 그 해, 모딜리아니는 한 갤러리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다. 기름을 잔뜩 발라 뒤로 넘긴 머리, 쫙 빼입은 정장, 앙증맞은 나비넥타이를 한 그는 눈부신 외모였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로 파리의 귀공자였다. 잔은 행복했다. 오늘 전시가 잘 끝나면 내일은 더 행복할 것이다. 정신없이 심부름을 했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갑자기 경찰이 전시장에 들이닥쳤다. "이따위 것을 내걸고 말이야!" 한 경찰이 소리쳤다. 그는 손가락으로 한쪽 벽을 가리켰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누드화가 두 점 걸려있었다. "저건 예술…." "자네는 미풍양속이 우스워?" 모딜리아니가 맞섰지만 경찰은 이를 가볍게 받아쳤다. 경찰은 누드화 두 점을 없애라고 했다. 모딜리아니는 그 말을 따른 후에야 전시를 이어갈 수 있었다. 분위기는 분명 최고였다. 경찰들이 휘저은 후부터는 엉망이었다. 소문이 퍼졌다. 모딜리아니가 이 전시를 통해 얻은 건 '포르노 화가'라는 말뿐이었다.
모딜리아니 곁에 있던 많은 이가 떠났다.
그의 예술이 벌써부터 고꾸라졌다는 말도 심심찮게 떠다녔다. 모딜리아니는 싸구려 환쟁이 취급을 받았다. 그림은 헐값에 팔렸다. 뜸하게 들어오던 주문도 더는 없었다. 모딜리아니는 절망했다. 술과 약에 더 집착했다. 건강은 최악으로 내달렸다.
188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신생아 때부터 허약했다. 사업가인 아버지가 큰 병원을 찾아다닌 덕에 살 수 있었다. 모딜리아니가 10살이 될 무렵 그런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뇌졸중이었다. 가난에 휩쓸린 모딜리아니는 폐렴, 늑막염, 장티푸스 등 질병을 막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다.
첫 전시를 망친 모딜리아니는 겨우 쥐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선을 잘라냈다.
기회만 엿보던 결핵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는 피를 토하면서도 실실 웃으며 압생트를 퍼마셨다. 영혼의 단짝, 알코올 중독 동지였던 위트릴로와 파리의 뒷골목을 배회했다. 잔뜩 취했을 땐 사람들이 몰린 곳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그가 길거리를 나뒹굴고 있을 때면 잔이 찾아왔다. "언제 또 이렇게 마셨어요…." 잔은 모딜리아니를 업고, 안고, 끌고 갔다. 작업실 안에서 같이 울고, 함께 절망했다.
이쯤 모딜리아니는 그런 잔도 막 대했다.
모딜리아니는 잔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런 그가 술과 약에 찌들었을 때면 가끔 그녀를 후려치려고 했다. 잔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뤽상부르 공원 문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제발 나를 가만히 두라고 소리쳤다. 잔은 그런 모딜리아니를 꼭 안았다. 신과 같은 인내심을 갖고 그의 영혼을 보듬었다. 그러면 모딜리아니는 틀림없이 잔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자기가 죽일 놈이라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잔은 모딜리아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로 종종 난폭한 짓을 할 뿐이라며 이해했다. 모딜리아니의 빛을 못 보는 천재성과 함께 맹렬하게 드러나는 연약함도 사랑한 것이다. 그런 잔은 모딜리아니에게 딱 하나만 청했다. 제발 그 눈부신 재능만은 썩히지 말 것을 부탁했다. 모딜리아니는 잔의 그 말만은 따랐다. 술병을 들고도 그림은 꼬박꼬박 그렸다. 어떤 날은 하루에 100장 넘게 스케치를 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천사 같은 잔이 모딜리아니를 구했다"고 했다.
검은 모자·옷 차림의 모델이 되다
1918년 봄.
모딜리아니와 잔은 프랑스 남동 해안의 니스로 왔다. 모딜리아니는 재기를 꿈꿨다. 돈 많은 관광객들에게 그림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쉽지 않았다. 여전히 거의 안 팔렸다. 그래도 둘은 만족했다. 파리에서 벗어나 여기에 오기를 잘했다고 확신했다. 니스의 날씨는 온화했다. 모딜리아니는 햇빛 아래에서 결핵을 다독였다. 임신 상태였던 잔도 비교적 쾌적하게 출산을 기다렸다.
둘은 그해 11월에 첫 딸을 얻었다. 모딜리아니는 간만에 환희에 젖었다. 한동안 소년, 소녀와 아기 그림만 그릴 정도였다. 둘은 니스에서 딱 1년을 요양한 뒤 딸과 함께 파리로 돌아왔다. 그 사이 잔은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 잔의 부모가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둘은 결혼 서약서를 썼다.
그 사이 겨울이 찾아왔다.
추위는 냉혹했다. 난로를 피울 돈조차 떨어지자 좁은 작업실 안에 서리가 내렸다. 잔은 어쩔 수 없이 아이와 잠시 친정으로 피신했다. 잔의 부모는 딱 거기까지 허락했다. 모딜리아니는 갈 수 없었다. 그런 모딜리아니는 잔이 그리워지면 그 집 앞을 덜덜 떨며 서성였다. 한참을 쪼그리고 있다가 돌아갔다. 잔은 당장 뛰쳐나가 그를 안고 싶었다. 부모가 철통같이 막은 탓에 그럴 수 없었다.
둘의 형편은 1920년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조금씩 좋아졌다.
그 시기에 모딜리아니와 잔은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시간을 죽였다. 어느 날 모딜리아니는 잔에게 검은색의 큰 모자를 줬다. "거기에 검은 옷을 입고 모델이 돼줄 수 있겠어?" 모딜리아니가 수줍게 요청했다. 검은색은 모든 것을 품어주는 색이다. 잔은 모딜리아니의 불안함과 무절제함, 충동과 울분을 한 번도 밀어낸 적이 없다. 잔은 늘 받아주고 안아줬다. 모딜리아니는 그런 잔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했다.
모딜리아니는 이쯤부터 잔의 눈동자도 표현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그려진 그림 속 자기 눈동자를 보는 잔의 눈동자는 때때로 눈물로 가득 찼다.
“죽어서도 당신의 모델이 돼줄게요”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차츰 제값에 팔렸다.
이대로면 유모에게 맡긴 아이도 곧 데려올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모딜리아니의 결핵은 지금만을 기다린 양 뻣뻣하게 섰다. 잔은 임신 8개월 차였다. 모딜리아니는 쓰러졌다. 아무리 성숙한들, 사회 경험은 어린아이에 가까웠던 잔은 패닉에 빠졌다. 밤새 서툰 간호만 할 뿐이었다. 1920년 1월22일, 모딜리아니는 이웃의 도움으로 파리 자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이제 기진맥진했다. 가망이 없었다.
평소 모딜리아니는 친한 이들에게 자신을 '모디'라고 부르라고 했다. 모디는 프랑스어 'Maudit'와 같은 발음이다. 여러 뜻이 있지만, '저주받은(Cursed)'이라는 의미가 특히 강렬하다. 모딜리아니는 이제 저주받은 생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그는 입원 이틀 만에 죽었다. 겨우 35세, 결핵성 뇌막염이었다.
모딜리아니 곁에서 겨우 떼어낸 잔은 눈빛에 초점을 잃었다.
이미 더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잔의 부모는 그런 잔을 집으로 데려왔다. 당장 무슨 짓을 벌일 듯해 사실상 가뒀다. "죽어서도, 천국에 가서도 당신의 모델이 돼줄게요." 잔은 갇혀서도 그 말만 되뇌었다. 내 숙명 그 자체가 죽은 이상 더는 살 가치가 없었다. 잔은 모딜리아니와 함께 한 3년을 곱씹었다. 한여름 밤, 한겨울 낮의 꿈이었다. 이 단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잔은 5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 망설임은 없었다. 그렇게 죽었다. 모딜리아니가 죽고 하루가 지난 후였다. 이제 막 20살을 넘긴 잔은 배 속에 품고 있던 아이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모딜리아니는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잔의 부모는 꼴 보기 싫은 모딜리아니를 피해 파리 교외의 바뉴 묘지에 잔을 눕혔다. 둘의 유해가 합장된 건 10년이 지난 뒤였다. 모딜리아니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다. '이제 바로 영광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가다.' 그 옆에는 잔의 묘비가 있다. 새겨진 글을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을 모딜리아니에게 바친 헌신적인 반려.'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7)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8)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9)“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10)“관상가 양반 아니었어?” 조선의 ‘얼굴’, 몰랐던 사실[후암동 미술관-윤두서 편] - 사실주의 특별 편 (2022. 11. 19.)
11)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12)“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3)‘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4)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5)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6)‘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17)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8)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9)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20)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1)“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2)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23)몸 좋은 보디빌더, 거대 막대사탕 들고 ‘의문의 포즈’[후암동 미술관-리처드 해밀턴 편] - 팝아트 선구자 (2022.11.12.)
24)“동양서 ‘테러리스트’가 왔다” 피아노 다 때려부쉈다[후암동 미술관-백남준 편] - 비디오 아트 선구자 (2022.11.26.)
〈후암동 미술관 인물 편 읽는 순서〉
1)“고갱 그놈, 도대체 왜 그래?” 악마인지 ‘악마의 재능’인지[후암동 미술관-폴 고갱 편] - 고귀한 야만인 (2022. 12. 3.)
2)눈동자 없는 기괴한 여자 그림, 알고 보니[후암동 미술관-모딜리아니 편] - 파리의 귀공자 (2022. 12. 10.)
3)“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 로댕의 맞수 (2022. 11. 5.)
4)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진짜’ 괴짜 (2022. 9. 3.)
5)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영원한 라이벌 (2022. 9. 10.)
6)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우아한 전사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