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단발머리’부터 2022년 ‘찰나’까지
반세기 활동한 ‘진행형 가왕’의 무대
최근 공연 트렌드 담은 화려한 LED
폭발적 가창력과 연주, 세련된 사운드
오빠, 형님부대 아우르는 록페스티벌
MZ세대 부터 7080까지 세대 통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빠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찰나.” (조용필팬클럽 연합)
그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원했”(‘킬리만자로의 표범’ 중)기 때문이다. 한 순간도 ‘결정적인 찰나’가 아닌 적은 없었다. 가왕은 끊임없이 진화했고, 진화의 순간마다 ‘젊음’이 반짝였다.
지난 26일 이틀간 ‘K팝 성지’로 불리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돔, 옛 체조경기장)에서 ‘조용필 &위대한 탄생’ 공연이 열렸다. 오는 12월 4일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회당 1만 명씩 받아 총 4만 명의 관객과 만난다. 공연 티켓 오픈 30분 만에 모조리 팔려나간 조용필의 첫날 공연은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대통합의 장이었다.
이날 오후 12시 30분. 일찌감치 케이스포돔으로 모인 가왕과 밴드 위대한 탄생 멤버들은 일찌감치 공연 리허설을 시작했다. 오후 3시 30분부터 소방 훈련이 예정된 탓에 첫 공연의 준비는 보다 촘촘히 진행됐다.
관객들은 오후 6시부터 일찌감치 입장을 시작했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가왕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설렘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이날 공연장에서 만난 박선주(55) 씨는 “대전에 살고 있는데, 올해는 서울에서만 공연을 해 힘들게 티켓을 구해 오게 됐다”며 “4년 만에 열리는 공연이라 더 기대가 된다. 세월이 가도 변함없는 오빠의 모습을 본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공연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케이스포돔 무대를 가득 메운 대형 LED 전광판에 불이 켜지고, 무대의 조명이 꺼진 채 위대한 탄생 멤버들이 등장하자 객석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생각했다. 세계적인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세계계적인 K팝 그룹들을 중심으로 지난 몇 년 사이 달라진 공연 트렌드가 가왕의 공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각각의 곡마다 노랫말의 의미를 담은 그래픽 요소가 공연의 화려함을 더했다.
첫 곡은 ‘꿈’이었다. 아련한 우주 저 멀리에서 별이 뿌려진 인트로를 지나, ‘타향살이의 고단함’이 대도시로 향했다. 대형 무빙 전광판은 ‘화려한 도시’의 빌딩숲을 통해 노랫말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특히 길이 40m, 무게 2t에 달하는 천정 조형물은 거대한 전광판이자 무대 구성의 한 요소로 활용됐다. 공연 전 무대 쪽으로 내려온 LED가 공연 시작과 함께 천정을 향해 솟아오르자 1만 명의 관객도 함성을 쏟아냈다.
‘꿈’부터 ‘단발머리’, ‘그대를 사랑해’까지 단숨에 세 곡을 내달리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공연이 마침내 시작됐다. 내리 세 곡을 마친 뒤 조용필은 “가수 생활 이후 가장 긴 시간 공연을 하지 못했다”며 “4년이 40년 같았다”고 말했다. 조용필의 공연은 백 마디 말보다 음악에 집중한 공연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이날 오랜만에 만나는 조용필의 입담은 빛났다.
“궁금해요. 여기 오실 때 저 사람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을 것 같아요. 되게 많이 늙었을 것 같다, 더 말랐을까, 살쪘을까 그런 생각 했을 것 같아요. 제가 코로나는 한 번도 안 걸렸는데, ‘확찐자’가 됐어요. 살이 3kg이 늘어 주름살이 없어진 것 같아요.”
대한민국 최초로 ‘팬덤 문화’를 만들고, ‘오빠 부대’를 이끈 조용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객석은 웃음을 터뜨리고, “형님, 잘생겼다”, “오빠 멋있어요”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워밍업을 끝낸 뒤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조용필은 “오랜만에 만나니 ‘추억속의 재회’를 하는 기분”이라며 ‘추억속의 재회’를 이어 불렀다. 푸른 바다 영상이 대형 전광판을 가득 채우고, 1절을 마친 뒤 위대한 탄생 최희선의 애절한 기타 연주가 이어지자 전광판에선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모든 곡마다 특색 있는 영상을 만든 탓에 공연은 유달리 화면 전환, 영상 변환이 많았다. 굿거리 장단을 접목한 ‘자존심’(1982년)을 부를 땐 한국적인 문양이 영상을 메웠고, ‘태양의 눈’에선 킬리만자로 표범의 눈과 강렬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콘서트를 넘어 미디어아트를 보는 듯이 오감이 충족됐다.
이날 공연에선 최근 발매한 신곡 ‘세렝게티처럼’이 일곱 번째 곡으로 등장했다. 과장되지 않은 깔끔한 연주로 “음원에서의 느낌을 살린”(기타리스트 최희선) 위대한 탄생의 연주가 특히 담백했다. 세렝게티의 대자연을 향하듯 쭉 뻗어나가는 가왕의 고음은 젊고 싱싱했다. 노래를 마친 뒤 조용필은 신곡 발매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녹음할 때 저희는 늘 열심히 하지만, 막상 발표하고 나면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충을 털어놓으며, ”그래도 이렇게 신곡을 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은 2시간 10분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졌다. 가왕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고, 의상 한 벌도 갈아입지 않았다. 그 흔한 초대가수 없이 오로지 혼자만의 노래로 무대를 이끌었다. 이날의 공연은 ‘가왕’의 이름값을 증명했다. 변치않는 가왕의 체력과 탄탄한 성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여와 남’부터 ‘자존심’, ‘고추잠자리’, ‘바람의 노래’, ‘태양의 눈’,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미지의 세계’, ‘모나리자’ 등 시대를 초월한 히트곡을 쉴 새 없이 이어부르는 모습은 조용필이 왜 ‘가왕’인 지를 증명했다. 공연에서 조용필은 대부분의 곡을 원키로 소화했다. 70대에도 자신의 노래를 원키로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앙코르곡 ‘찰나’와 ‘여행을 떠나요’. ‘히트곡의 대향연’은 반세기 이어온 가왕의 세월을 엿보게 했다.
4년 만에 돌아온 공연은 대규모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위대한 탄생의 리더인 기타리스트 최희선은 “이번 공연을 위해 지난 두 달간 일주일에 서너 번, 하루에 5~7시간씩 연습을 했다. 세트리스트로 서른 곡을 짜놓은 뒤 공연에선 총 23곡을 올렸다”며 “1970~80년대 히트곡부터 최근 나온 ‘찰나’, ‘세렝게티처럼’ 등의 신곡, 기존 팬들이 좋아하는 곡들, 빠지면 서운해할 곡들을 균형있게 선별해 레퍼토리를 짰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7~8년 사이 이어진 공연에서 단 한 번도 부른 적 없는 ‘태양의 눈’이 포함된 것도 이번 공연의 특이점이었다. 이 곡을 통해 로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폭발적인 밴드 사운드를 들을 수 있었다. ‘태양의 눈’은 20여년 전 예술의전당 공연 당시 편곡했던 버전으로 무대에 올랐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선 빠르고 방대한 양의 가사를 정확한 발음으로 전달한 것마저 ‘킬링 포인트’였다.
공연을 마친 뒤 만난 관객들의 만족감이 높았다. 인천에서 온 김성철(62) 씨는 “1980년대부터 형님의 오랜 팬이었는데, 55년이 다 되가록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며 “변함 없는 가창력과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 위대한 탄생의 연주까지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어 감동적이었다. 가왕의 팬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공연장을 찾은 Z세대 김진(24) 씨는 “최근에 나온 신곡 ‘찰나’를 듣고 조용필이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것에 놀랐다”며 “할머니 대신 티켓팅을 해주고 함께 모시고 왔는데 노래를 너무 잘하는 데다 연주도 좋아 깜짝 놀랐다. 가왕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이유를 알게 된 공연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