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미국의 새로운 다자동맹 전략 독해법

미소 간 패권경쟁이 전개되던 냉전시대 초기 미국은 유럽에 다자간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했지만, 아·태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태국 등과 양자동맹을 체결해 대소 봉쇄정책을 시행했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체제가 양자 형태로 전개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분분했다. 결정적 요인은 한국과 일본 간 식민지 시기 역사적 대립 감정이 너무 강해 당시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 등이 추진하던 아시아판 나토 구상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인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아·태지역에 대한 미국의 동맹전략이 기존 양자동맹에 더해 다자동맹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변화 양상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기 인도·태평양 전략을 표명하면서 결성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안보협의체 쿼드(Quad), 호주에 원자력잠수함을 제공하기 위해 미국, 영국, 호주 간 결성된 안보동맹 오커스(AUKUS)가 미국의 인·태지역 안보전략에서 중시되는 방향이 선명해지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SS)은 러시아, 중국, 그리고 북한 등을 안보위협요인으로 적시하면서 기존 양자동맹에 더해 쿼드와 오커스, 그리고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정보협력체 파이브아이즈(Five Eyes) 등 다자간 안보협력체를 통해 글로벌 질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방침을 표명했다. 나아가 인·태지역에서 배태되고 있는 다자간 동맹체제를 유럽에서 확대되는 나토와 연계하겠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역시 지난달 발표된 미국 국방전략서(NDS)에서 새로운 국방전략 개념으로 제시한 ‘통합억제’ 방침도 유럽과 인·태지역을 연계한 다자간 동맹체제 강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커트 캠벨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언급했듯이 기존 아·태지역에서 구축한 ‘허브 앤드 스포크(hub & spoke·중심축과 바큇살)’형 동맹구조가 바야흐로 네트워크형 다자동맹체제로 변화하는 양상이다. 이 같은 미국의 동맹전략 변화에 호주와 일본은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호주는 미국과 양자동맹에 더해 쿼드, 오커스, 파이브아이즈, 그리고 영연방 국가들과 구축한 5개국 간 방어약정 등을 통해 일본 및 영국, 인도,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과 중층적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도 기존 미일동맹에 더해 다자간 안보협력체 적극 참가를 통해 영국, 프랑스, 호주, 인도 등과 안보협력관계를 확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한미동맹 외 다자안보협력체 구축에 소극적인 양상이다. 쿼드 참가도 줄곧 보류해 왔고, 기존 한중일협력기구(TCS)나 중견국연합 믹타(MIKTA) 등도 국제안보협력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지는 않다. 북한의 핵위협 증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새로운 핵태세보고서에서 제안하듯이 미국과 확장억제 공약을 공유하는 일본 및 호주와 확대된 확장억제 연대도 필요하다. 6·25전쟁 참전국들과 정례적 안보연대 구축도 제도화할 만하다. 동중국해와 믈라카해협, 인도양, 호르무즈해협을 경유하는 해양수송로 안전 확보를 위해 해역을 공유하는 동북아 및 동남아국가, 나아가 서남아 및 중동국가들이 함께 참가하는 해양안보협력체 구축도 상상해볼 수 있다.

불확실성을 더해가는 국제안보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지원해줄 안보협력 파트너들을 많이 확보하고, 이들과 평시 정보공유나 다양한 공동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우리의 안보역량을 중층적으로 강화해줄 것이다. 지정학적 안보이익을 공유하거나 개방경제 정체성을 공유하는 국가들을 포괄하는 다자적 안보협력체 구축을 한미동맹 강화와 더불어 안보정책 일환으로 적극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