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번영시기, 정책조언자로 세계무대 등장
인플레이션 덮치자 통화주의자 전면 부상
반케인스주의자 볼커, 통화긴축으로 돌파
시장 만능주의 미국 정신과 결합해 만개
프리드먼서 버냉키까지…신자유주의 조명
효율성· 성장 우선에 ‘불평등 심화’ 지적도
1960년대 중반, 영국 정치인 이언 매클라우드는 하원에서 “우리는 지금 두 현상이 뒤얽혀 있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일종의 스태그플레이션에 처했다.”고 난감함을 표했다. 성장은 멈추고 인플레이션은 뛰는 골치 아픈 현실을 지칭한 것이다.
미국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처음 맞닥뜨렸는데 1973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 동맹국에 석유 금수 조치를 내리자 경제가 대공황 이후 가장 깊은 침체에 들어간 것이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뛰자 케인스주의자들은 어리둥절했다.
포드 대통령은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리기 위해 “정원에 채소를 심고 스웨터를 껴입고 승용차 함께 타기 운동을 벌이자”고 촉구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1975년 5월 실업률은 9퍼센트까지 치솟았고, 그때까지 인플레이션은 1년 넘게 10퍼센트 이상을 기록했다.
밀턴 프리드먼에게 원인은 명확했다. 실업률이 오른 건 경기가 하락했기 때문이며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통화를 남발한 결과였다. 프리드먼에게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실업률보다 중요했지만 포드도, 카터도 인플레이션 치료법으로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한 경제 성장, 고용을 옹호했다. 이란 혁명으로 두 번째 석유 위기가 닥치자 물가는10퍼센트를 넘어섰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피로감이 쌓여가며 프리드먼의 주장이 힘을 얻게 된다. 대공황이 돈이 모자란 탓이었다면, 대인플레이션은 돈이 넘쳐 나 정부의 실패로 끝난다는 것이다.
카터는 내키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 강경론자이자 반케인스주의자인 폴 볼커를 연준 의장에 임명했다.
볼커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통화 공급의 고삐를 바짝 조이자 이자율이 급상승, 은행 우대 금리가 20퍼센트 이상 올랐다. 소비자는 더 이상 자동차와 식기 세척기를 사지 않았고, 자동차 철강 등 노동자 수 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볼커는 낮은 인플레이션이 실업률을 낮추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임을 강조하며 전쟁을 이어갔다.
1950년대만 해도 경제학자는 ‘인간 계산기’에 불과했다. 미국 중앙은행 수뇌부에는 은행가와 변호사, 심지어 양돈업자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실감 없는 수학자’라며 낮잡아 봤던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중앙 무대로 진출, 세계를 장악하게 된 걸까?
저널리스트 빈야민 애펠바움은 1969년부터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까지 40년을 ‘경제학자의 시간(Economists' Hour)’이라고 규정한다. 1969년은 닉슨 대통령이 밀턴 프리드먼의 권고에 따라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기 위해 자문위원회를 꾸린 해이다. 프리드먼은 이 해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다. 케인스의 시대가 저물고 프리드먼의 시대가 됐다는 신호였다.
저자는 이 40년의 시간 동안 경제학자들이 어떻게 권력의 중심에 서고, 경제적 모험을 감행했으며, 그들의 정책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경제 서사의 긴 흐름을 시원하게 펼쳐낸다.
2차 세계대전 후 25년 동안 미국은 번영의 시기를 누렸다. 정부는 경제학자들의 손을 빌려 공공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려 했고 케인스의 제자들은 정부가 경제에서 보다 큰 역할을 맡도록 설득해나갔다. 행동주의 경제학이 정점에 이른 시기로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은 세금 감면과 세출 증가로 경제성장을 이루려 했다. 이는 몇 년 간 잘 먹혔지만 곧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함께 상승했고 70년대 초가 되자 미국 경제는 흔들리게 된다.
케인스를 거부하는 경제학자들은 60년대 말 ‘우리가 믿는 시장안에’라는 기치 아래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관료 체제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고 정책 입안자를 설득했다. 정부는 지출과 세금을 최대한 낮추고 규제를 줄여 상품과 돈이 국경을 넘어 더욱 자유롭게 넘나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선두에 선 학자가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으로, 저자는 그의 활약상에 주목한다. 진보 정치에서 닉슨, 레이건, 부시 등 공화당 대통령들로 넘어가며 미국의 정신과 결합된 신자유주의 정책이 꽃을 피우는 중심에 프리드먼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프리드먼을 비롯, 조지 스티글러, 조지 슐츠, 아론 디렉터,로버트 루카스 같은 보수파 거두들부터 칵테일 냅킨에 아이디어를 그려 세금 감면을 보수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만든 아서 라퍼, 닉슨 대통령에게 군 징집 종식을 설득한 시각장애인 경제학자 월터 오이, 인간의 삶을 달러 가치로 환산한 토마스 셸링 등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을 조명하며 그들의 신자유주의 전도 행각을 자세히 보여준다.
저자는 이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 정책 성과와 한계를 함께 제시한다. 이들의 효율성과 경제 성장 우선 정책은 가치 중립적 명분을 내세우며 재분배 정책과 복지 제도에 소홀했으며 나아가 경제적 차별을 묵인 또는 조장했다는 평가다. 경제 활동을 오로지 수요와 공급이라는 2차원 평면으로 도식화함으로써 각각의 사정을 살피지 못함으로써 불평등을 가속화한 것이다.
시장 신뢰가 주도한 변혁은 20세기 말에서 2008년까지 정점에 올랐으며, 그 사이 불평등은 심화됐다.
40년 신자유주의의 시대의 굵직한 경제적 변화와 정치와의 역학관계를 현장을 두루 접할 수 있는 기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경제학자의 시대/빈야민 애펜바움 지음,김진원 옮김/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