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 간에 경쟁적으로 국정 각 분야의 정책공약 발표가 줄을 잇고 있다. 외교와 국방 등 분야는 경제나 복지 등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기는 하나 이미 후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양한 정책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모 후보는 병력자원 감소를 염두에 둔 듯 기존 징병제를 대체하는 ‘선택적 모병제’를 공약했고, 다른 후보는 북한의 핵능력 및 대륙간탄도탄 개발 지속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타격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을 맞아 기존 정책을 재점검하고 새로운 공약을 개발하는 것은 국정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승리한 측에서 승자독식처럼 자신들의 공약을 중심으로 국정과제를 작성하고 캠프 참가 멤버들만 정부 요직에 임명해온 관행이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특히 국방이나 외교정책은 여타 정책보다 초당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자신들이 제기한 공약만을 정책과제로 추진하면 오히려 국민적 공감대를 상실케 할 수 있다.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국방이나 외교정책은 가능한 한 초당파적 입장에서 전문가들이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 시기 다양한 대외정책 선택지를 놓고 상이한 입장의 전문가들이 상호토론하면서 초당파적 합의를 도출하려 한 ‘솔라리엄 프로젝트’를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냉전 초기인 지난 1953년 1월 집권한 공화당 아이젠하워 정부는 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트루먼 정부가 추진해온 대소 봉쇄정책을 비판하면서 소련에 대해 다방면에 걸쳐 공세적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강경한 롤백정책을 제기하였다. 그런데 막상 정권을 잡은 아이젠하워 정부는 롤백정책은 물론 기존 봉쇄정책과 억제정책 등 다양한 옵션을 객관적으로 재평가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덜레스 국무장관과 논의를 거쳐 봉쇄정책을 입안했던 조지 케넌을 비롯해 국무성 외교관, 전문가, 그리고 육·해·공군 장성들을 중심으로 각각 봉쇄정책, 억제정책, 롤백정책 등을 옹호하는 연구팀을 결성하고 1개월여에 걸쳐 정책의 장·단점을 연구하게 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각 연구팀이 백악관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게 하였다. 이 같은 집단지성의 경연 과정을 통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신이 선거 과정에서 공약한 롤백정책보다는 봉쇄와 억제정책을 결합한 새로운 대외 전략 방향을 결정하게 됐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현재 한국은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 여러 중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미국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과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어떠한 대외 정책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남북 9·19 군사합의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에도 핵능력 및 미사일 개발 가속화를 강행하는 북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가까운 미래에 예상되는 인구절벽 속에서 군대의 적정 규모 및 충원 방식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4차 산업혁명의 성과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국방 능력 강화에 연결시킬 것인가 등이다.
대선 과정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더라도 국민은 각 후보가 이 과제들에 대해 공감대를 모을 수 있는 초당파적 정책 방향을 제시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승자는 선거 과정에서 제기한 정책공약들을 승자독식처럼 새 정부의 정책과제로 조급히 추진하기보다는 ‘솔라리엄 프로젝트’처럼 경쟁자들의 정책공약도 평가할 것은 평가하고,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이 국가안보정책에 있어 국론 양극화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70여년 전 백악관 옥상방 솔라리엄에서 진행된 초당파적 대외 정책 수립 프로젝트를 대선 이후 청와대에서도 기대하고 싶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