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 앙상블展 BTS 민윤기 묘약 눈길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야경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ACC 특별전 ‘포스트휴먼 앙상블’의 코로나종말처리기. 코로나병균과 쓰레기를 호스가 연결된 구멍으로 끊임없이 집어넣어야 한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지하인데 밝은 ACC 대나무숲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누가 뭐라해도, 광주광역시 도심의 랜드마크는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인데, 지하에 있다. 시민과 여행자가 동구청앞 교차로 인근 횡단보도를 건너면 어느새 이 구역 옥상, 하늘마당-충장장터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지하에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밝은 지하 반전매력= 16만 1237㎡의 ACC 부지 중 옛 도청건물 등이 있는 민주평화교류원 구역과 어린이 문화원을 제외하고 모두 ‘열린 지하공간’에 들어간 점에서 겸손이 느껴진다. 지하라도, 중심부에 빛이 들어오면 이를 잘 분산시키는 ‘빛의 숲’ 지혜가 발현돼 밝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ACC열린마당의 달팽이 조형물

코로나 사태로 제 기능의 절반 남짓 밖에 활용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한국관광공사 야경관광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 100선, 한국관광공사 유니크베뉴에 오른 여행명소 3관왕이다.

과거의 아픔을 교훈으로 승화시키면서, 흰색으로 다시 도색한 옛 도청 일대는 민주평화교류원이다. 역사적 장소인 옛 도청 건물 앞 은목서 나무가 백리향 보다 강한 만리향으로 불리며 향수 샤넬 넘버5의 원료라는 설명이 반전매력으로 다가온다.

ACC는 5성급 항공사의 프리스티지 라운지 보다 좋은 열람실의 문화정보원, 작가들이 국민과 소통하며 창작하는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등 총 5개원으로 나뉜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ACC 문화정보원의 열람실

열린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 기하학적 철골구조 사이로 푸른하늘이 드리우고 중천의 아침햇살은 지하를 지상처럼 밝게 비춘다.

하루종일 둘러보고 책 읽으며 소일해도 내일 볼 것을 남겨둘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콘텐츠가 풍부했다고 한다. 팬데믹 전에는 200여개 문화예술이벤트, 지난해엔 130여개를 벌인 거대 콘텐츠 동력장치다.

▶코로나 블루 치유소, 포스트휴먼 앙상블= 11월 하순 현재, 초대형 전시가 대부분 끝나고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들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때 마침 아시아문화전당에게 주어진 시대적, 국가적 과제를 재정비하고 진용을 새로 갖추는 ‘혁신 구조조정’을 앞둔 ACC로서는 지금이 도약을 위한 암중모색기이다.

그럼에도, 내년 2월말까지, 팬데믹을 겪으면서 달라진 세상을 디지털 미디어 및 초현실주의 예술로 구현한 ‘포스트휴먼 앙상블’과 어린이문화원에서 만나는 키르키즈스탄-한국 합작 ‘이식쿨 호수의 술루우수우’ 읽기 등이 눈에 띈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포스트휴먼 앙상블 展 ‘삶의걸음 우주로’(루카스 실라버스 作)

‘포스트휴먼 앙상블’은 뉴노멀 시대를 예술과 미디어 기술 등으로 표현했다. 식물인 대파가 피트니스로 건강을 챙기는 그림, 관람객의 속을 시원하게 하는 코로나종말처리 겸 플로깅 장치, 코로나블루 뇌파측정, 심리예술, 방탄소년단 민윤기(슈가) 시약 등 감정의 묘약을 색감으로 표현하는 예술 등을 보여준다.

코로나와 쓰레기의 종말처리 장치는 먹은 쓰레기를 다시 뱉는 특성을 가졌는데, 끊임없이 종말처리 구멍에 폐기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감정의 묘약에는 방탄소년단 멤버 민윤기 시약도 있고, 스키장, NEW, 편안 등도 있다.

이 전시를 감상하노라면, 자연과 사람의 공생을 위해 환경보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람의 정서와 마음이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그 마음을 다스리는데 예술이 얼마나 가치있게 기능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시아 문화 가치 세계화, 광주에서”= 어린이 문화원에선 ‘우리 아기는 어디 있지?’(몽골), ‘위대한 전설 테무르말릭’(타지키스탄), ‘초원의 나라를 지키는 아산과 우센’(키르키즈스탄), ‘용감한 토끼’(카자흐스탄), ‘나의 구름 친구’(우즈베키스탄) 등 한국과의 합작 또는 교류 동화가 흥미롭다. 동아시아 산악지역 계단식 논을 비롯해 자연, 문명, 지식, 음악 등 다양한 세계 문명도 예술적 조형물과 미디어기술로 잘 구현해 놓았다. 20m에 육박하는 실내 어린이 짚라인도 있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키르키즈스탄-한국 합작 아동출판 ‘이식쿨 호수의 술루우수우’의 표지 이미지

유럽과 미주 이야기에만 익숙한 아시아인들이 아시아의 이야기를 세계화하는데 ACC가 한 몫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밖으로 나오면 하늘마당에선 비스듬하게 깔아놓은 잔디밭을 객석 삼아 공연이 열리고, 그 옆에 파빌리온들이 도열한 충장장터에선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된다.

지하든, 지상이든 지금은 그리 떠들썩 하지 않다. 워낙에 잘 만들어 놓은 만큼, 여행이 시작되면 국내외 손님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교류하는 장터 처럼 시끌벅적 했으면 좋겠다.

ACC가 포스트휴먼 앙상블 같은 좋은 이벤트를 많이 열고, 예향을 상징하는 메카로서 전국의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끌어모으며, 나아가 아시아 각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아시아 문화예술의 성지로서 거듭나도록, 창의적 노력과 적극적인 홍보 및 마케팅을 기대해 본다.

아무래도 관 주도 보다는 거버넌스와 매니지먼트, 마케팅 능력을 갖춘 민간전문가와 문화예술인들이 주도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비움박물관의 뒤웅박과 소쿠리

▶뒤웅박의 참뜻= ACC에서 300~400m 만 가면 전남여고 건너편 옛 광주읍성터에서 비움박물관을 만난다. ACC에서 지하 예술공장의 빛나는 창의성을 느꼈다면, 이 박물관에서는 비움 속 채움이라는 가르침을 얻는다.

내 누님 같은 풍모의 이영화(75) 관장이 잊혀져 가는 민속유물 2만5000여점을 모았다. ‘지나간 세월은 비었지만, 그 자취에 담긴 뜻은 꽉 찼다’는 의미가 담긴 곳이다. 비움이라는 간판의 건물 4개층에 전시 공간과 개방형 수장고를 두어, 봉건-근대화 과도기의 유물들을 꽉 채웠다.

신혼부부가 함께 베던 긴 베개, 자손없는 영혼을 위한 추모의 상차림 걸신상, 가난한 집 차례상에 오른 나무생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한국형 조각장르 자개장, 고단했던 시절 자식 몸 따뜻하게 하고 대학 가게 한 희망의 호롱불, 농사일을 돕던 황소의 워낭, 삼신할머니 초상화 등이 모여있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비움박물관이 수집한 신혼부부의 베개들

내년 씨앗을 담아두는 뒤웅박은 ‘새끼 같은 씨앗을 보며 자식 농사도 뒤웅박처럼 하라’는 것이 참뜻이라면서 항간의 여성비하적 해석은 아니라고 이 관장은 강조한다. 씨 애기가 나온 김에, 비움이 강조하는 세가지 씨앗은 말씨, 솜씨, 마음씨라고 한다.

유물들을 통해, 헌 것을 다른 물건에 재활용한 선조의 지혜와 절제, 포세이돈, 제우스 같은 남의 신(神)은 잘 아는데 삼신할머니, 부엌신 같은 우리의 수호신은 잘 모르는 현대 한국인의 무지를 곱씹는다.

1000명이 한폭에 그려진 장터그림도 걸려있다. 작자미상. 이 관장은 그 아래 1000개의 그물추를 전시했다. 사람 살아가는 네트워크인 듯 하다.

[예향 광주④] ACC 코로나처리장, 비움에서 채움으로 [함영훈의 멋·맛·쉼]
이영화 비움박물관 관장

이 관장은 “여기 오면, 외국인들은 원더풀 하며 ‘발광’하고 좋아 죽는다고 한다”면서 “비워진 과거의 소중한 가치들을 우리 국민들이 외국인들 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CC와 비움박물관은 밝은 지하, 꽉찬 비움의 교훈을 길게 음미해보는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