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 실수요자 시장으로 바뀐 지 오래

정부 뜨거운 주택매수심리 투기로 낙인찍고 싶어해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수도권에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심리가 5년8개월 이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토연구원이 전국 6600여가구와 2300여 중개업소를 통해 조사한 ‘12월 부동산시장 소비자심리조사’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수도권 ‘주택 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43.0으로 2015년 4월(145.7) 이후 가장 높았다. 이 지수는 0~200 범위로 100보다 높으면 높을수록 집을 사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집사고 싶어하는 무주택자 수요를 투기로 보는 정부 [부동산360]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매매·전세·월세 관련 정보란. [연합]

집을 사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수도권 웬만한 아파트 단지엔 매물 부족이 역대 가장 심각하다. 한국부동산원 아파트 수급동향 자료에 따르면 1월 둘째주(11일 기준) 수도권 ‘매매수급지수’는 115.3으로 조사를 시작한 2012년7월 첫째주 이후 가장 높다. 이 지수도 0~200 범위로 100보다 높으면 매수가 매도보다 많다는 의미다.

무주택자는 안달이 난 상황이다. 통상 비수기로 통하는 요즘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저금리에 유동성은 넘치고, 집값은 계속 오른다는데 내 집은 없다.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의 신조어)이든 뭐든 어떻게든 집을 사야 할 것 같다.

가장 쉬운 게 청약이다. 대출도 잘 되고, 분양대금을 나눠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분양시장은 연 초부터 뜨겁다. 올해 첫 공공분양인 성남시 착공동 ‘위례 자이 더 시티’ 공공분양엔 4만5700여명이 몰려 평균 617.6대1의 경쟁률로 모두 마감했다. 이는 수도권 역대 최고 청약 경쟁률이다. 수도권에 분양하는 아파트가 ‘로또’라는 건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분양가 규제 때문에 웬만하면 시세보다 수억원씩 싸다. 자격만 되면 무조건 청약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분양시장이 역대급으로 과열되는 이유다.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무엇으로 불러야 할까? 로또 당첨을 기대하듯 일단 청약통장을 쓰고 보자는 건 어떤 심리일까?

출범 때부터 ‘투기와 전쟁’을 선포한 이 정부는 아무래도 ‘투기심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영끌을 하는 등 무리해서 집을 사거나 ‘패닉바잉’(공황구매)을 하는 행위도 투기와 다르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시장에선 지금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시장’으로 본다. 다주택자를 상대로 역대 가장 강력한 대출규제와 세금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현금부자가 아니면 집을 사기 어렵다. 자금 출처 조사까지 하고 있어 자기 자본이 확실한 무주택 실수요자가 아니면 집을 살 엄두도 못낸다는 게 대부분 현장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계속 ‘투기’를 문제 삼는다.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 겸 부총리는 15일 올해 첫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주택 투기 수요를 차단해야 한다는 정부 의지는 확고부동하다”며 다시 한번 투기 수요 차단의 의지를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도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투기를 억제하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볼 것이란 두려움에서 어떻게든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은 심리를 투기로 봐야할까? 지금 시장에서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게 가능한가?

정부는 집을 사고 싶은 무주택자들의 열망을 투기로 깎아 내려선 안된다. 투기가 아니라 정부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 대응하는 무주택 서민들의 절박한 대응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늘어난 주택 수요에 맞는 공급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다주택자들이 쉽게 집을 내놓을 수 있고, 건설사들이 더 많이 새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