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산업의 도구 아닌 ‘사회적 자산’
전염병과 단절의 시대…‘연결’이 중요
금세기 당면문제 디자인으로 풀어야
음악과 미술 만남, 1+1=11의 시너지
백 투 어스·라디오 발라드 프로젝트로
기후변화 등 위기 공감·변화계기 조성
“예술은 미래를 위한 경고.”
예술의 정의와 역할에 대한 논의는 길고 다채로운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 관장은 예술정신을 이렇게 명쾌하게 정의한다. 디자인 등 예술분야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럴드 디자인포럼 연사로 나서는 한스 울리히 관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며, 특히 환경오염, 불평등심화, 전염병 등 21세기가 당면한 문제를 디자인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스 관장은 “우리는 항상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예술가를 찾는다”며, ‘미디어의 이해’에서 마샬 맥루한이 말했듯이, ‘예술은 필요한 순간마다 새롭게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일종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이번 포럼에서 ‘사회적 상상력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란 주제로 강연하는 그가 깊게 다룰 내용 중 하나는 ‘연결’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세계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는 이번 포럼 주제와 관련 “배척과 분리가 아닌 통합과 연결”이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의 단서가 될 수 있다며, “모이는 방식을 새로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장선상에서 서펜타인 갤러리가 진행한 ‘연결’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소개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프로젝트는 방탄소년단(BTS)와 진행한 ‘CONNECT, BTS’가 있다. 해당 행사는 런던·베를린·부에노스아이레스·서울·뉴욕의 유수 미술관에서 열린 신개념 미술 프로젝트로, 전세계 미술관을 ‘CONNECT, BTS’라는 이름 아래 묶었다.
한스 관장은 “음악과 현대미술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어떻게 ‘1+1=11’이 되는지 살펴볼 것”이라며 “서로 연결되면 감탄스럽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트와 디자인, 건축이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연결되며 추가적인 의미를 창출하는지 볼 것”이라고 했다. 특히 BTS의 성공은 그에게 ‘로컬리즘’이 어떻게 세계화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중요하게 다가갔다. 한국어로 만든 노래지만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단절과 이로 인한 국가주의 강화기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겐 중요한 사례다. 그는 “새로운 국가주의에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전시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적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회적 의미도 강조했다.
그는 “예술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이것을 즐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며 “건축프로젝트도 마찬가지로 프랑크 게리, 세지마 가즈요,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업들은 관객과 만나며 다양한 의미를 창출하고, 생명력을 준다. 미래 디자인의 중요성은 바로 이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 ‘파빌리온’ 전시회를 서로 연계성이 있는 곳들에서 여는 것이 목표”라며 “이민자 출신이 많은 지역공원에 파빌리온 건축 프로젝트를 열어 평소 전시회를 경험하지 못할 사람들에게 아트, 디자인, 건축물들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백 투 어스(Back to Earth)’, ‘라디오 발라드(Radio Ballads)’ 등의 프로젝트도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디자인의 예시로 이번 포럼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백 투 어스는 예술가들에게 기후위기 비상상황에 대한 대응을 요청하는 프로젝트다. 65명의 예술가가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참여했다. 라디오 발리드는 이스트 런던 소재 지역인 바운딩과 다겐햄의 사회복지 시스템를 다뤘다.
예술가에 대한 지원도 이러한 맥락에서 강조됐다. 사회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스 관장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실행하면서 수천 명의 예술가들을 지원하면서, 리 크래스너, 엘리스 닐, 잭슨 폴락 같은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천 년에 걸쳐서 일어났던 지구의 변화들이 지금은 수백 년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다며 공감”이 있어야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에 반응하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 역할을 예술과 디자인이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예술, 디자인, 건축이 그 어느때 보다 중요하며, 사회적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한스 관장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미래를 그리기 위한 상상력을 얻기 위해 잠에서 깬 뒤 1~2시간 사색을 한다. 컴퓨터는 켜지 않는다. 사색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생각하고 그것을 수필로 정리하는 시간도 갖는다. 최근 그는 김혜순의 시인의 시집 ‘슬픈치약 거울크림’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김혜순 시인은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캐나다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을 수상했다.
홍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