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정부와 군 당국이 결국 한일군사정보협정 강행 수순에 돌입했다. 국민적 동의를 충분히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지만 정부와 군 당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부에게 이 협정을 체결한다는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다. 현재 국방부 장관이 언론이나 국회를 찾아다니며 이해와 설명을 구하고 있지만, 그 내막을 깊이 들어가보면 의견을 구하는 차원이 아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협정을 반드시 체결하겠다며 설득할 뿐이다.

[김수한의 리썰웨펀] 軍, 사드 이어 한일군사정보협정도 ‘답정너’식 불통

요즘 말하는 전형적인 ‘답정너’ 스타일이다.

이렇게 스스로 답을 정해 놓고 남한테 의견을 구하는 척 사람들을 요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의 줄임말)’라고 부른다.

국방부의 답정너식 행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방부가 지난 7월 13일 사드 배치 후보지를 발표할 때도 일방적인 답정너식 행정으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국방부는 지난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 강행을 계기로 주한미군과 사드 배치 논의를 공식화한 이래 7월 사드 후보지를 발표할 때까지 극비리에 추진했다. 3월 4일 한미간 주한미군 사드배치를 위한 공동실무단 공식 출범을 발표한 것 외에는 사드 관련 협의 내용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국방부의 ‘답정너’식 의사결정…사드 이어 한일협정까지 답정너=결국 7월 경북 성주 성산 공군방공포대가 사드 배치 후보지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갑자기 터져나오면서 성주군 전체가 사드 반대 시위에 들어갔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성주를 찾은 총리와 국방부 장관은 달걀과 물병 세례를 감수해야만 했다.

사드 배치 후보지 논란은 결국 이런 지역 주민들의 반발 끝에 성주 성산포대를 성주골프장으로 뒤집는 희대의 해프닝을 계기로 일단락됐다.

이번 한일군사정보협정 또한 당시 사드 후보지를 선정할 때와 같이 극비리에 추진돼 왔고, 갑자기 발표돼 국민적 반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드 논란과 판박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앞서 지난 2012년 6월 한일군사정보협정을 극비리에 통과시키려다 관련 사실이 드러나면서 엄청난 국민적 반대에 직면했다. 결국 이 협정 체결은 무산됐다. 그리고 지난 4년간 정부는 이 협정 재추진을 위해 중요한 건 ‘국민적 동의’라고 여러 차례 여러 장소에서 밝혀왔다.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협정 체결은 요원해 보였다.

그런데 지난 10월 24일 최순실 태블릿PC가 공개되고 25일 대통령이 1차 대국민사과를 한 지 이틀 만인 10월 27일 국방부가 갑자기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지시로 한일군사정보협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국방부는 10월 27일 발표 후 11월 1일 한일간 1차 과장급 실무협의, 9일 2차 과장급 실무협의를 거쳐 14일 3차 과장급 실무협의에서 가서명까지 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이었다.

국민들 사이에는 대공황이 찾아왔다. 당시 이 협정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약 15%에 불과해 먼저 국민적 동의를 구하고 협정을 체결하겠다던 국방부의 방침에 뭔가 중대한 변화가 생긴 듯 했다.

실제로 국방부의 입장에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3차 가서명이 진행된 14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민적 동의를 먼저 얻은 뒤 협정을 체결한다는 방침에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군사적 필요성이 국민적 동의보다 앞선다”고 답했다. 군사적 필요성이 높아져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못했지만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민적 동의를 우선으로 한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국민 여론은 여전히 협정에 물음표=갑자기 달라진 국방부 입장을 국민 여론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18일 열린 국회 국방위에서도 왜 이 시기에 굳이 이 협정을 강행해야 되느냐는 질문이 반복됐다. 그러나 한 장관은 이런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며 오히려 협정 재추진의 의지를 강력히 불태웠다.

그는 한미 FTA 등을 거론하며 국내 반대가 높았지만 나중에 호평받는 정책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 국민 여론과 무관하게 협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재표명했다.

또한 야당에서 국방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 직을 걸고 추진할거냐는 질문에 “장관은 어떤 일을 하든 결과에 대해 감수하는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한다”고 답해 협정 체결이 ‘답정너’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국방부가 협정을 강행 추진하는 것에 대해 북한의 위협이 예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고조돼 불가피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민석 전 국방부 대변인은 최근 한 방송에서 앞으로 북한의 위협은 전과 차원이 다르게 전개될 것이라며, 그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가 유독 사드와 한일군사정보협정과 관련해 답정너식 일방통행을 하고 있는 것과 관련 사드와 이 협정이 한 덩어리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한 유시민 작가는 지난 17일 방송 ‘썰전’에 출연해 “일본이 원하는 건 주한미군에 배치되는 사드 레이더의 전자정보일 수 있다”며 “이 협정은 사드배치와 다 엮여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이 협정 체결은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라고 강조하는 점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얘기는 청와대 NSC가 대통령 의사와는 별도로 중대한 사안의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한일 협정을 추진하면서 국민적 동의를 우선으로 한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은 이유가 최순실 정국과 관련돼 있다면 후폭풍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