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국방부가 30일 사드 입지 발표방식을 놓고 오락가락하던 와중에 결국 성주골프장으로 결론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군이 발표 과정에서 김천시와 원불교 등 지역주민과 종교 단체의 반발을 과소평가하고 소통을 소홀히 해 일을 크게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드는 북한 미사일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배치 결정이 내려진 첨단 무기다.
그런 맥락에서 모든 국민이 환영해야 할 무기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요청해도 미군 측이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한반도 배치가 절대 불가하니 배치해주겠다고 할 때 고마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배치 과정에서 군이 ‘반드시 사드를 배치한다’는 전제하에서 일을 추진하다 보니 번번히 갈등이 빚어졌다.
소통하겠다고 나선 군은 사드가 필요한 이유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며 이해와 양해를 구할 뿐이었다. 그런 설명을 들은 지역 주민들은 ‘사드 결사반대’ 의지를 더욱 불태웠다.
문제의 본질은 강원 원주, 경남 밀양, 경북 왜관, 전북 군산, 경기 평택, 충북 음성 등 사드 후보지로 거론된 전국 어느 지역도 사드를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지역 차원에서 사드 배치에 따른 득보다 실이 많다는 국민적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이렇게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재산 가치의 하락이다. 자기가 사는 마을에 군사시설이 들어오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웬만한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다.
▶군, 주민들 사드 반대하는 진짜 이유 외면?=서울 용산, 의정부 등 미군기지가 있던 지역에서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을 반기는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군사시설이 옮겨가면 그만큼 그 지역의 발전 가능성은 높아진다. 수원, 광주, 대구 등에서 군공항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시키려는 저의도 군사시설이 지역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군사시설은 현대 사회에서 일종의 기피시설로 낙인이 찍혀 있는 셈이다.
이런 기피시설을 어느 특정지역에 설치하려면 제대로 된 당근이 함께 제공돼야 한다.
과거 국민들이 모두 혐오하는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선정할 때 정부는 수백억원의 지원금을 약속해 흥행을 기록한 적이 있다. 당시 방폐장 유치를 원하는 지차체 몇 개 지역이 나타나 치열한 경쟁 끝에 경북 경주가 선정된 바 있다. 방폐장 선정 결과가 경주로 발표되자 경주 시민들은 환호했다. 인센티브가 기피시설을 선호시설로 바꾼 좋은 예다.
사드 입지 선정에도 이런 인센티브가 도입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한미 공동실무단이 군사적으로 최적지를 선정해야 하기 때문에 방폐장 선정처럼 여러 지자체들의 신청을 받아 선정하는 방식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종 선정된 지역에 정부가 상당한 인센티브를 약속해 지역 주민들에게 사드가 들어섬으로써 오히려 지역이 발전할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군과 정부는 무리수를 거듭했다.
선정 지역에 인센티브를 줘야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에 대해 정부는 처음에는 사드 배치지역 지원을 위한 정부부처 차관급 협의체를 여는 등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강구했지만, 결론은 ‘지원은 불가하다’였다.
군과 정부의 인센티브 거부 논리는 ‘앞으로 군사시설을 배치할 때마다 인센티브를 주는 나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통을 통한 협상의 기본은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나 군은 주는 것 없이 받는 것만 생각한 격이다.
결국 군의 사드 추진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단계를 심화시키되 주민 반발 수위를 낮추려다 보니 전례없이 기이한 사드 선정결과 발표 방식으로 귀결됐다.
군 당국은 지난 29일 “사드 선정결과를 30일 오후 2시30분 국방부 기자실에서 비공개로 설명한다”고 미리 국방부 취재진에 알렸다.
군은 언론 설명에 앞서 지자체에 먼저 선정 결과를 발표한다는 차원에서 30일 오후 2시 성주군, 김천시, 경상북도를 상대로 설명회를 열 방침이라고 공지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30일 당일 오전 10시께 국방부는 갑자기 취재진에 “지자체 설명을 지자체 요청에 따라 오전에 실시하기로 해 오전 11시쯤 끝날 예정”이라며 “언론 비공개 설명도 이에 따라 11시 30분에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같은 시간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회를 방문해 각당별로 사드 선정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이 오후 2시 30분에 하겠다고 밝혀놓고 이미 오전에 지자체와 국회를 상대로 선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럴 경우 언론은 급박한 상황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군이 비공개 설명 방침으로 일관하고 있어 사드 부지 선정 결과에 대한 질의 및 응답을 할 기회도 보장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취재진은 국방부의 공개 브리핑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이 밝힌 군 당국의 공개 브리핑 거절 이유는 “지역 주민의 뜻을 모아서 제3의 부지 검토를 요청한 성주군수에게 사드 입지 선정결과를 설명한 것이 공식 발표”라는 것이었다.
▶본질 외면하다 꼬이고 또 꼬인 국방부=즉, 성주 군수를 상대로만 설명하고, 언론을 상대로는 공식 입장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제3의 부지는 결국 애초 정해진 성주 성산포대가 아닌 성주 군수가 요청한 제3의 부지로 선정됐다. 성주군수는 환영할 수 있는 결과다. 그러나 김천시는 여전히 반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김천시 측은 국방부 측이 설명하겠다고 방문했지만 설명 청취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3의 부지로 선정된 성주골프장은 성주 군민 밀집 주거지와는 18㎞ 거리지만, 일부 김천 주민들과는 5㎞, 김천 시민들의 희망인 김천혁신도시와는 약 7㎞ 떨어져 있어 김천시민들의 반발이 격렬히 일어나고 있다.
앞서 4만5000여명의 성주 군민들의 반발로 사드 입지를 재선정하게 됐다면, 향후 군은 14만여명 김천시민의 ‘사드 결사반대’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김천시민 약 1만여명은 지난 24일 김천종합운동장에서 사드 반대 총궐기대회를 열었고, 김천시장과 김천시의회의장은 지난 27일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성주 골프장 인근에 성지가 있는 원불교 측 반대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원불교 내에서 ‘평화의 성자’로 추앙되고 있는 정산 송규 종사의 생가터가 성주 골프장과 약 500m 거리에 있어 원불교 측은 성지 수호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미 꾸린 상태다.
성주 골프장 소유주인 롯데그룹 계열사 롯데스카이힐CC는 성주골프장 확정 소식에 대해 “국가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정부 결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 자료를 발표했다. 군이 약 1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의 민간 부동산에 대해 사실상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이를 민간이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즉각 반응한 것에 대해 국민들은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불구속 처분과 롯데스카이힐 성주골프장을 맞바꾼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군이 정상적으로 골프장 부지를 사들인다면 약 1000억원 상당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금은 결국 부지와 전기시설 등 기반시설을 우리가 제공하고 사드 장비는 미군이 자체적으로 조달한다는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국방부 예산으로 집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예산을 확보하려면 해당 예산안건의 국회 통과가 불가피해 사드 정국은 국회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내년까지 사드를 배치한다는 군 당국의 계획은 상당한 변수에 가로막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