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 1/2상 초기 단계서 선급금 935억원…총 계약 규모의 약 15% 수준
바이오마린과 글로벌 독점 라이선스…피하주사 제형으로 환자 편의성 개선
한미 연내 3번째 기술수출…GC녹십자 큐레보 이어 연내 두 번째 결실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GC녹십자와 한미약품이 손잡고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파브리병 치료제 후보물질이 글로벌 희귀질환 전문 제약사에 기술수출됐다.
총 계약 규모는 최대 4억7500만달러(약 6347억원)로, 특히 임상 1/2상 초기 단계임에도 총 계약 규모의 약 15%에 달하는 7000만달러(약 935억원)를 선급금으로 확보하며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항암제와 비만·대사질환에 편중됐던 국내 제약업계의 기술수출 지평을 희귀질환 영역으로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GC녹십자와 한미약품은 공동 개발한 파브리병 치료제 후보물질 ‘LA-GLA(코드명: HM15421/GC1134A)’에 대해 미국 바이오마린 파마슈티컬(BioMarin Pharmaceutical)과 글로벌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계약으로 바이오마린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LA-GLA의 임상 개발과 상업화를 전담하게 된다. 국내 허가와 상업화 권리는 GC녹십자와 한미약품이 보유하며 공동 주도한다.
양사는 선급금 7000만 달러 외에도 향후 개발 및 상업화 단계별 마일스톤으로 최대 4억500만달러(약 5412억원)를 분할 수령하며, 제품 상용화 이후 순매출에 따른 단계별 로열티도 별도로 받는다.
LA-GLA는 리소좀축적질환(LSD)의 일종인 파브리병 치료를 위한 차세대 지속형 효소대체요법(ERT) 후보물질이다. 파브리병은 체내 당지질 분해 효소 결핍으로 신장·심장·신경계가 손상되는 유전성 질환이다.
기존 ERT가 2주마다 정맥주사(IV)로 투여되는 것과 달리, LA-GLA는 반감기를 연장하고 안정성을 개선하도록 설계돼 피하주사(SC) 투여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환자의 치료 부담을 줄이고 편의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임상 연구에서 신장 기능과 혈관, 말초신경계 지표의 차별화된 효능을 확인해 202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희귀의약품(ODD) 지정을 받았으며, 현재 글로벌 임상 1/2상을 진행 중이다.
‘경쟁 대신 연대’ 택한 녹십자·한미…K-오픈이노베이션의 결실
이번 기술수출은 국내 대형 전통 제약사 두 곳이 연구개발(R&D) 초기 단계부터 각자의 원천 기술을 결합해 글로벌 라이선스 아웃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그간의 협력이 판권 계약 중심의 코프로모션이나 바이오벤처 지분 투자에 무게가 실렸던 것과 달리, 대형사 간 R&D 공동 연구가 글로벌 성과로 이어지는 성공적인 협업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역할 분담도 상호 보완적이었다. 한미약품은 약물의 체내 지속성을 늘려 투약 편의성을 개선하는 독자 약물 지속 플랫폼 기술을 접목했고, GC녹십자는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개발 및 상용화로 검증된 희귀질환 ERT 생산과 임상 전문성을 결합했다.
양사의 플랫폼 기술과 제조 노하우가 맞물리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주도해 온 글로벌 효소대체요법 시장을 정조준할 수 있었다.
글로벌 파트너사의 전문성과 계약의 세부 조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파트너사인 바이오마린은 희귀 유전질환 치료제 개발과 글로벌 상업화 역량을 갖춘 바이오기업으로, 최근 경구용 파브리병 치료제 ‘갈라폴드’를 보유한 아미쿠스 테라퓨틱스를 인수하며 파브리병 분야의 파이프라인을 확대한 바 있다.
바이오마린이 아직 인체 투약 초기 단계인 임상 1/2상 파이프라인에 대해 935억원(7000만 달러) 규모의 선급금을 투입한 것은 후보물질의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성과로 양사는 올해 글로벌 기술수출 실적에서도 나란히 결실을 맺게 됐다.
한미약품은 지난 6월 일라이 릴리에 단장증후군 치료제 ‘소네페글루타이드’를 최대 12억6000만달러(약 1조8973억원, 선급금 약 1129억원) 규모로 이전한 데 이어, 8월에는 로슈 그룹 산하 제넨텍과 비인크레틴 계열 비만 치료 후보물질 ‘HM17321’에 대해 최대 약 23억달러(약 3조1892억원, 선급금 약 2629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이번 바이오마린과의 파브리병 치료제 계약까지 더해지면서 한미약품의 2026년 누적 기술수출 규모는 총 40억3500만달러(약 5조7200억원)에 달하며, 수령 확정된 선급금 총액만 3억3500만달러(약 4693억원)에 이른다.
주목할 점은 포트폴리오의 질적 다변화다. 올해 성사된 3건의 딜 중 2건(단장증후군·파브리병)이 희귀질환 치료제이고, 1건(근육 보존 비만 치료제)이 대사질환 신약이다. 만성질환 블록버스터에 집중됐던 R&D의 축이 글로벌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희귀질환과 차세대 대사질환으로 균형 있게 확장됐다는 분석이다.
GC녹십자 역시 연내 두 번째 글로벌 성과를 확보했다. GC녹십자는 지난 5월 미국 백신 관계사인 큐레보(Curevo Vaccine)의 지분을 일라이 릴리에 매각하면서 대상포진 백신 후보물질(아메조스바테인)의 상용화 단계별 마일스톤과 로열티를 수취하는 실질적인 라이선스 아웃 구조를 완성한 바 있다.
이어 이번 LA-GLA 계약을 통해 북미 혈액제제 공급에 이어 희귀질환 부문에서도 중장기적인 기술료 파이프라인을 보강하게 됐다.
한미약품그룹 임주현 부회장은 “LA-GLA는 국내 굴지의 제약사간 공동연구를 통해 글로벌 신약 개발가능성을 높였다는 오픈이노베이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며 “이번 파트너쉽을 통해 LA-GLA의 글로벌 개발을 더욱 가속화하는 동시에 국내 환자들에게도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은철 GC녹십자 대표이사는 “이번 기술수출은 양사의 긴밀한 R&D 협력이 아우러져 거둔 의미 있는 성과”라며 “앞으로도 경쟁력 있는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글로벌 파트너링과 사업화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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