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역사소설 ‘누명’…유자광 재조명

“역사는 반복…정치권 갈등도 여전”

정진영 작가. [정진영 작가 제공]
정진영 작가. [정진영 작가 제공]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유자광은 간신으로 유명한데, 기록을 살펴보니 이 사람이 왜 간신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조선 시대 대표적인 간신으로 꼽히는 유자광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정진영 작가의 첫 역사소설 ‘누명’을 통해서다. 그동안 현대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 온 그는 28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이란 작가의 이야기가 들어가기 마련인데, 나와 거리가 먼 얘기를 써 보고 싶었다”면서 “역사소설이지만 현대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썼다. 유자광이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도 역사는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소설은 서얼로 태어나 정1품까지 오르고 40여년간 다섯 임금을 섬긴 유자광의 삶을 재조명한다. 남이의 역모, 무오사화 등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능력이 있어도 출신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던 한 인간의 치열한 생존을 그렸다.

정 작가가 집필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역사적 고증이다. 5년 넘게 작품을 준비하며 조선왕조실록을 면밀히 살폈다. 정 작가는 “유자광이 직접 남긴 글은 실록에 실린 상소문 정도다. 그에 대해 기록한 사람들은 대부분 정적이었다”며 “오히려 정적의 기록으로 유자광을 보여주면 더 신빙성이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료를 보며 유자광의 고립에 주목했다. 아버지에게조차 외면받으며 자라 오로지 자신의 행정·군사적 능력만으로 힘들게 정치권에 발을 들였지만, 사림은 물론 훈구 대신들도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임금의 의중에 따라 행동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고,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는다. 정 작가는 “권력자라고 하기엔 자기 편이 하나도 없었고, 높은 재상을 지낸 적도 없다”며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도 있지만 신분 때문에 기득권의 벽에 막혔던 인물”이라고 평한다.

작품 제목 ‘누명’에도 이러한 시선이 담겨 있다. 유자광에게 씌워진 간신이라는 역사적 평가와, 매번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운명을 떠올리며 제목을 정했단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 사회와도 닮아 있다. 조선 시대 사림과 훈구 세력처럼 지금의 여야도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고, 청년들은 기득권층에 밀려 출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작가는 “지금 청년들이 취업해도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할 수 있는 처지인가. 자산을 물려받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서사적 확장도 시도했다. 작가는 “최근 한국 문학의 이야기는 주로 개인화, 파편화돼 있는데, 시대를 힘 있게 이야기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며 “특히 중년 남성 독자들도 읽을 만한 묵직한 책을 들고 싶었다”고 했다.

작품에서 유자광은 ‘내가 지켜야 할 분수란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서얼로 태어남은 내 선택이 아니었고, 노비는 대를 이어 영원히 노비로만 살아야 한다는 명분은 옳은 것이냐고 한탄한다. 이는 더 이상 ‘개천 용’도 나오기 힘든 현대 사회에도 날카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역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이 질문을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누명/정진영 지음/무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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