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남 도이치은행 한국 대표 겸 KGCCI 회장 인터뷰
“韓, 단순 판매시장 넘어 아태 생산·혁신 전략거점”
“19년 만의 서울 APK, 한독 경제협력 발전 상징”
“공급망 안정성·경제안보 시대…韓 전략적 가치 더 커져”
“獨 산업자동화·韓 제조역량 결합하면 상당한 시너지”
29~31일 서울서 APK 2026 개최
[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2007년 당시 한국이 독일 기업에 제조 역량과 성장 잠재력을 갖춘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글로벌 산업의 미래를 함께 만드는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 역할이 확대됐습니다.”
박현남 도이치은행 한국 대표 겸 주한독일상공회의소(KGCCI) 회장은 19년 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독일 비즈니스 콘퍼런스(APK 2026)를 앞두고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이같이 평가했다. 현재 한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은 540곳을 넘어섰고 이들이 국내에서 창출한 일자리만 약 10만개에 이른다. 단순히 독일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을 넘어 독일 기업들이 생산과 연구개발, 아시아·태평양 사업을 함께 구상하는 거점으로 한국의 역할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28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APK는 지난 19년간 높아진 한국 경제의 국제적 위상과 한독 경제협력 관계의 발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APK는 독일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계와 정·관계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제협력과 산업 현안을 논의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국제 비즈니스 콘퍼런스다. 1986년 처음 열린 뒤 아시아·태평양 주요 도시를 돌며 격년으로 개최돼 왔다. 서울 개최는 1992년과 2007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행사에는 독일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부 고위 관계자와 글로벌 기업 경영진 등 약 75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독일 기업이 바라보는 한국의 가치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 봤다. 그는 “독일 기업들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단순히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차원을 넘어, 기술 혁신과 공급망 안정성, 경제안보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협력 파트너라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미·중 경쟁과 보호무역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빨라지면서 한국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회장은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동시에, 기술 경쟁력과 혁신 역량을 함께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과 같은 신뢰할 수 있는 기술·산업 파트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 독일 기업들의 투자는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독일 머크 사는 약 4500억원을 투입한 대전 바이오프로세싱 생산센터 개소를 앞두고 있다. 머크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투자 가운데 최대 규모다. 한국이 독일 기업들에게 단순한 판매시장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생산과 혁신을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한국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박 회장은 독일의 산업 자동화·엔지니어링 기술과 한국의 제조·디지털 역량이 결합할 경우 산업용 AI 분야에서 가장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은 제조업 근로자 1만명당 산업용 로봇 1066대를 보유해 로봇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미 지멘스와 네이버클라우드는 제조업의 AI 전환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박 회장은 “단기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사업화 분야는 AI를 활용한 설비 예지보전, 제품 품질검사, 생산공정 최적화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기술은 기존 제조 현장에 적용해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 품질 개선 등 구체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디지털 트윈과 로봇 기술을 결합한 자율제조까지 협력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독 협력의 범위도 양국 간 교역에서 제3국 공동진출로 확대할 수 있다고 봤다. 독일의 첨단 엔지니어링·친환경 기술과 한국의 제조 역량, 대규모 프로젝트 수행 경험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박 회장은 “특히 에너지와 산업 인프라 분야의 잠재력이 크다”며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스마트 인프라, 첨단 제조시설 구축 등 다양한 협력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독일상공회의소도 이러한 협력을 실제 사업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한독에너지파트너십의 한국 공식 사무국을 맡아 양국 정부와 기업 간 에너지 전환 협력을 지원하고 있으며, 독일의 이원화 직업교육을 한국 산업환경에 맞게 도입한 ‘아우스빌둥’도 운영하고 있다. 내년은 아우스빌둥의 한국 도입 10주년이다.
박 회장은 “회장으로서도 양국 기업의 목소리가 정책과 산업 현장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소통을 강화하고, 기업들이 서로의 강점을 바탕으로 협력의 기회를 넓혀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말했다.
도이치은행 한국 총괄대표를 맡고 있는 박 회장은 한국 금융시장에 대해서는 글로벌 투자자가 체감하는 접근성과 예측 가능성을 과제로 꼽았다. 외환시장 운영시간 확대와 전자 외환거래 지원, 원화 국제 결제망 추진, 영문공시 확대 등 최근의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박 회장은 “제도의 발표와 시장의 체감 사이에는 시차가 있다”며 “개혁의 성패는 제도 도입 건수보다 글로벌 투자자가 실제로 더 쉽고 예측 가능하게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19회 APK 2026는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용 AI, 기업금융, 에너지 전환 등을 중심으로 독일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협력 방안이 논의된다.
rim@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