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많은 국민이 우리나라 과학자의 노벨과학상 수상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나 올해도 그 기쁨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이웃 일본에서 또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왜 아직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을까? 국가전략기술 확보를 위한 R&D 사업은 과연 효율적으로 추진되고 있을까? 물론 노벨상과 전략기술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모든 성과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연구비를 얼마나 쓰느냐보다 어떻게 써야 국민이 감동할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

한 가지 해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변화의 물꼬를 튼다는 의미에서 국가 R&D 사업을 ‘그랜트형’과 ‘펀딩형’으로 구분해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연구의 목적과 성격이 다르다면 지원과 평가, 보상체계도 달라야 한다. 그랜트형은 연구자의 호기심과 독창성에서 출발한다. 정부가 목표를 정하기보다 연구자가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해 장기적으로 탐구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한 만큼 1인 연구책임자(PI) 중심으로 운영하며, 주로 대학의 기초·원천연구에 적합하다. 대학 연구자도 연구소나 연구그룹을 통해 펀딩형에 참여할 수 있지만, 두 유형을 동시에 주도하기보다 가급적 자신의 연구 특성에 맞는 유형에 집중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그랜트형에서는 주제 변경이나 유사 연구의 중복도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

이런 연구에 복잡한 평가와 반복적인 실적점검이 꼭 필요할까? 핵심 성과인 논문은 이미 국제 학술지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친다. 이를 활용해 별도의 평가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최초 선정 이후에는 3년 정도를 주기로 논문의 독창성과 파급력을 중심으로 간소하게 평가하되, 분야별 특성도 고려하면 된다.

연구비는 성과에 따라 단계별로 조정하자. 우수하면 자동으로 상위 단계로 올리고, 보통이면 같은 단계에서 한 차례 더 지원한다. 성과가 저조하면 하위 단계로 조정하고 부진이 반복되면 일정 기간 지원을 중단한다. 연구계획서를 반복해서 작성하고 경쟁평가를 받는 대신 연구성과에 따라 연구비가 승강하는 구조다.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고 평가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줄일 수 있다.

반면 펀딩형은 국가가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기술이나 산업적 난제를 해결하는 임무지향적 연구다. 정부가 목표와 기술개발 로드맵을 명확히 설정하고,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이 팀을 이뤄 수행한다. 필요하다면 수백억원 이상의 대형 연구비도 과감히 투입해야 한다.

대신 선정부터 철저해야 한다. 평가위원들이 며칠간 합숙하며 과제를 심층 검토하는 방식도 참고할 만하다. 그랜트형에서 아낀 평가 시간과 비용을 펀딩형에 집중해 목표의 타당성과 연구팀의 역량을 충분히 검증하자는 것이다. 필요하면 전담 사업단장 (PM) 제도도 도입할 수 있다. 또한 수행 중에도 성과를 정밀하게 점검하고 필요하면 과감히 중단하는 ‘노고(No-Go)’ 결정도 내려야 한다. 정부는 목표 설정에, 연구팀은 목표 달성에 책임을 지되 성공한 연구팀에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보상해야 한다.

연구자의 창의성을 키우는 그랜트형과 국가적 임무를 완수하는 펀딩형, 두 체계가 제 역할을 할 때 노벨상과 국가전략기술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에 다가설 수 있다. 그것이 국민의 소중한 세금을 과학기술 발전에 더욱 값지게 쓰는 길이다.

민병권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연구전략본부장


nbgk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