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3차 선거도 후보자 없어 무산…공백 1년째
서울 주요 15개 대학 중 6곳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취업 경쟁에 밀린 학생 자치…권한·재정도 제한적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됐다. 후보자로 나서겠단 학생이 없어서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자리는 1년 가까이 비어있다.
26일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65대 총학생회 3차 선거는 예비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 18일까지 입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서울대는 지난해부터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재학생들을 대표하는 총학생회장을 좀처럼 세우지 못하는 상황이 서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 출신으로, 한 때 정치권 입문의 주된 코스로 불리던 총학생회의 위상이 급전직하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학교의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제65대 총학생회 정기선거가 무산된 데 이어 올해 2월 실시하려던 재선거도 입후보자가 없었다.
앞서 서울대는 2024년 약 6년 만에 치러진 본투표를 통해 제64대 총학생회를 선출했다. 그러나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 조작 논란 등으로 총학생회장단 탄핵안이 발의되는 등 임기 동안 잡음이 이어졌다. 탄핵안은 부결됐지만 총학생회가 학생 대표 기구로서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서울에 있는 다른 일부 대학들도 비슷한 처지다. 헤럴드경제가 서울의 주요 15개 대학 학생자치기구 운영 현황을 종합했더니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동국대, 숙명여대 등 6곳이 총학생회를 꾸리지 못하고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입후보자가 없거나 투표율 저조로 당선 기준에 미치지 못해 선거가 무산됐다.
학업·취업 부담에 학생 자치 활동 참여 감소
학생 자치 참여가 위축된 배경으로는 학업과 취업 준비 부담이 꼽힌다. 연세대 재학생 김가영(23) 씨는 “취업 준비만으로도 바쁜데 총학생회 업무까지 병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기 회의와 학생 의견 수렴은 물론 축제 준비 등 굵직한 일정도 많아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장에게 쏟아지는 비판과 대표자로서의 책임도 부담이다. 한양대 재학생 이모(22) 씨는 “열심히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 잘해도 못해도 비판받는 자리가 아니냐”며 “총학의 발언이 학교나 학생 전체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학생 자치 활동에 참여할 유인이 줄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 대학생들에게 강했던 사회적 책임 의식과 소명 의식이 약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때 학생들은 엘리트 의식도 있었고 사회 리더라는 개념도 있었다”며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집단으로서의 소명 의식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지금은 대학 진학이 보편화하고 개인의 경제적 성공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진 데다 학생회 활동 경력도 취업에서 뚜렷한 이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총학생회장 출신이라고 하면 일반 직장에 취직하는 데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의 역할과 위상이 과거와 달라진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 학생들이 학내 의제에 의견을 내놓을 통로가 다양해지면서 총학생회의 필요성을 체감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건국대 재학생 박모(22) 씨는 “총학생회가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조직이라는 인식을 주지 못하면 앞으로도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 동력 약화…‘대학 공동체 회복’ 과제로
다만 학생들의 참여 부족만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학생회가 대학의 주요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만큼 참여를 독려하기에 앞서 제도적 여건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실질적으로 대학 사회에서 학생회 혹은 총학생회가 갖는 역할이나 권한이 극도로 제약돼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왜 참여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학생자치 경험은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지만, 참여를 개인의 의무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장 교수는 “자신의 진로나 여러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도 “지금 왜 참여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거나 참여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정적 기반 약화도 현실적인 제약이다. 박 교수는 과거 대학이 등록금과 함께 학생회비를 걷어 총학생회에 전달했지만, 현재는 학생들의 자발적 납부에 의존하면서 재정 확보가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학생회비 납부율이 낮아지면 사업 추진에 제약이 생기고 학생자치 활동의 매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 경쟁과 교육 환경 변화로 대학 공동체가 약화하면서 학생들이 자치 활동에 참여할 여유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20대들이 경제 환경이나 교육 환경, 기술 환경의 변화 때문에 공동체도 파괴되고 공론장도 붕괴된 채 각자도생의 생존 투쟁에 내몰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아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이 없다면 이런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학생 교육도 취업 위주에서 벗어나 공동체 의식과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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