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절기상 ‘서리가 내린다’라는 상강(霜降·23일)이다. 강원도 산골농장의 밭에는 이제 무·대파 등 김장 채소만 남아 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가급적 ‘자연 그대로’의 농사를 고집했다. 덕분에 밭작물(옥수수·감자·비트·오이·수박·참외)부터 약용작물(두릅·엄나무·참당귀·눈개승마), 과일(대추·블루베리·아로니아·보리수·매실·포도)까지 골고루 거뒀다.
하지만 수고 없는 결실은 없는 법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지긋지긋한 ‘풀과의 전쟁’을 치렀고, 올해는 유독 진드기까지 창궐해 애를 먹었다. 제초제나 화학농약, 화학비료를 일절 쓰지 않다 보니 노동의 고단함은 배가 되었다. 그럼에도 건강 먹거리를 대부분 자급해 식비를 줄일 수 있고, 자연이 주는 ‘섭생 치유’를 체감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가 밀려온다.
가을 갈무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요즘은 집과 맞닿은 데크(deck) 리모델링 공사까지 직접 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목재로 지은 지 11년이 지나 낡고 삐걱거리는 데크는 면적(약 53㎡·16평)이 넓은 데다 기둥도 제법 높아 작업하기가 까다롭다. 상판을 전면 교체하고 하부도 멍에와 장선, 기둥까지 새로 짓듯 보강해야 한다. 데크 아래를 기어다니고 때로는 누워서 작업하다 보면 군 시절 유격훈련이 따로 없다. 온몸에 멍이 들고 관절 마디마디가 쑤셔 한 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는 진행 중이다.
작업은 더디지만 내 손으로 조금씩 완성해 가는 자가 리모델링의 만족감은 의외로 크다. 전문업자에게 맡기는 것보다 완성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가족의 안식처인 만큼 한층 세심하게 살피고 튼튼하게 짓는다. 무엇보다 인건비를 아낄 수 있고, 직접 만들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뿌듯한 성취감도 얻는다. 수학과 기하학이 어우러지는 ‘목공의 마법’을 익히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원에서 누리는 참된 행복의 맛은 무엇일까? 자연이 선물하는 자유와 치유, 평안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려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자급과 자립을 지향하며 전원생활을 가꾸어 갈 필요가 있다. 그 삶을 떠받치는 두 바퀴가 바로 ‘반(半)농부·반(半)목수’다.
반농부는 땀 흘려 흙을 일구며 건강한 먹거리를 자급한다. 땅의 기운과 계절의 순환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생명력과 치유의 힘을 얻는다. 반목수는 가족이 살아가는 터전을 스스로 돌보고 고치며 주거의 자립을 이뤄낸다. 무엇보다 자신의 손길로 가족의 보금자리에 안락함과 추억을 더한다. 이 두 삶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 흙을 만지는 손과 나무를 다루는 손이 함께 움직일 때 전원생활의 많은 부분을 제힘으로 꾸려 갈 수 있다.
도시에서는 무엇을 얼마나 소유하고 소비하느냐가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늠하는 잣대였다면, 전원에서는 무엇을 직접 가꾸고 고치며 살아가느냐가 새로운 기쁨의 기준이 된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흙의 생명력에서 결실과 치유를 얻고, 나무의 든든함에서 가족의 안식을 찾는 삶. 자연과 깊게 호흡하며 가족의 삶터를 스스로 가꾸어 가는 소박한 감사와 기쁨, 이것이야말로 전원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는 맛’이 아닐까.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