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금값이 고점에서 조정을 받은 뒤에도 은행 창구를 통한 금 투자 수요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금값 급등기에 골드바 품귀로 판매에 차질을 빚었던 은행들은 공급업체를 늘리고 소형 골드바 판매를 확대하는 등 물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골드바 판매액은 지난 9월 29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5월 322억원, 6월 327억원, 7월 314억원, 8월 335억원에 이어 최근 5개월 동안 매달 300억원 안팎의 판매가 이어지고 있다.
금값이 크게 뛰었던 지난해를 제외하고 2022~2024년 3년간 5대 은행의 월평균 골드바 판매액이 85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판매 규모는 약 4배에 달한다. 금값이 고점에서 내려오자 추가 상승을 기대하고 매수에 나서는 수요가 남아 있는 것으로 은행권은 보고 있다.
지난해엔 1㎏만 남았다…은행들 소형 골드바 다시 확보
은행들이 골드바 판매망을 넓히는 데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공급 부족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금값이 급등했던 지난해 10월 공급업체의 재고가 빠르게 줄면서 일부 은행에서는 원하는 중량의 골드바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NH농협은행은 소형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한동안 100g과 1㎏ 제품만 취급했다. 신한은행도 일부 기간 37.5g 제품 위주로 판매했고 국민·하나·우리은행도 올해 초까지 대형 골드바 중심으로 공급했다.
올해 들어 수급 상황은 나아졌지만 지난 4월까지도 국민·신한·우리은행에서는 1㎏ 제품만 구매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금값 상승기에 소액 투자자가 주로 찾는 소형 제품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판매 기회를 놓친 경험이 반복된 셈이다.
최근 은행들은 공급업체와 판매 중량을 동시에 늘리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기존 한국금거래소에 더해 삼성금거래소 골드바의 판매·매입 대행을 시작했다. 삼성금거래소 제품은 3.75g과 10g, 37.5g, 100g 등 4종이다. 특히 3.75g 제품까지 판매하면서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실물 금을 사려는 고객의 선택 폭을 넓혔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10일부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인터넷뱅킹을 통한 골드바 판매를 재개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한국금거래소의 3.75g과 37.5g 골드바를 추가해 판매 제품을 5종으로 늘렸다. 신한은행도 지난 5월 112.5g과 375g, 500g 제품을 추가하면서 취급 상품을 7종으로 확대했다.
과거처럼 한 공급업체나 특정 중량에 의존하기보다 판매망을 분산하고 제품 종류를 늘려 금값이 다시 오를 때 발생할 수 있는 품귀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금값 조정에도 투자금 남았다…골드뱅킹 1년 새 47% 증가
실물 골드바뿐 아니라 통장을 이용한 금 투자에도 상당한 자금이 남아 있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의 골드뱅킹 잔액은 지난해 말 1조9296억원에서 올해 1월 말 2조4434억원까지 증가했다. 이후 금값이 조정을 받으면서 잔액도 감소해 지난 9월 말 1조6714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초와 비교하면 7700억원 이상 줄었지만 1년 전인 지난해 9월 말 1조1394억원보다는 47% 많은 규모다. 금 가격이 고점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금을 투자자산으로 보유하려는 수요가 이전보다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골드뱅킹은 실물 골드바를 직접 보관하지 않고 은행 계좌를 통해 금을 사고파는 방식이다. 소액으로 거래할 수 있고 별도의 보관 장소가 필요하지 않아 실물 금과 다른 투자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금값이 반등하자 금 투자 수요가 다시 크게 늘기도 했다. 당시 5대 은행의 골드바 판매액은 8월 20일까지 829억6000만원으로 집계됐고, 골드뱅킹 잔액도 7월 말보다 증가했다. 금값의 움직임에 따라 단기 매매 수요가 빠르게 유입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골드바 넘어 ‘금 신탁’까지…은행 금 상품 확대
은행권의 금 관련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달 삼성금거래소와 함께 고객이 보유한 골드바나 돌반지 등 실물 금을 맡기면 이를 운용해 수익을 지급하는 금 실물 신탁 상품을 선보였다. 우선 일부 영업점에서 시범 운영한 뒤 내년 취급 지점을 확대할 예정이다.
기존에는 은행에서 금을 투자하는 방법이 실물 골드바 구입이나 골드뱅킹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기존에 보유한 금을 활용하는 상품까지 등장한 것이다.
은행권의 금 상품 확대는 지난해 품귀 사태와 올해 이어진 투자 수요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값이 급등할 때는 공급 부족으로 판매가 제한됐고, 가격이 내려온 뒤에는 저가 매수 수요가 이어지면서 은행 입장에서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출 필요성이 커졌다.
은행권의 경쟁도 단순한 골드바 판매에서 공급처 확보와 소형 제품, 비대면 판매, 금 관련 금융상품으로 넓어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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