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 초선 구청장 지역 구민 정서 모르고 처신할 경우 반대 목소리 커지는 등 갈등 커져...구청장 행보 구청 직원들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을 시작으로 지역 유지와 구·시의원, 국회의원 등 첩첩삼중 날카로운 ‘감시자’ 역할하다는 점 명심해야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정치는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정치의 모습을 보면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키우는 정치가 더 익숙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중앙정치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울 자치구의 지역정치 역시 선거 이후 승자와 패자 간 갈등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으면서 곳곳에서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선거는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문제는 선거가 끝났다고 갈등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새로운 구청장이 취임하면 전임 구청장이 추진했던 정책을 손질하거나 없애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후임자 입장에서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조정하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임자가 공들여 추진했던 사업을 단순히 ‘과거의 정책’으로 치부할 경우 문제가 달라진다.
전임 구청장 측과 정책 추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반발이 나오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 놓아도 후임자의 눈에는 반드시 좋은 정책으로 보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사람 간 감정싸움으로 번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고소·고발까지 이어질 경우 당사자들이 입는 정신적·사회적 피해도 적지 않다.
또 다른 갈등의 출발점은 선거다.
선거 과정에서 지역의 핵심 인사들이 특정 후보를 돕고, 후보가 당선된 뒤에는 서로의 관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던 인사가 당선 이후 자신을 외면하거나 거리를 둔다고 느끼면 배신감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산하기관장이나 주요 보직 인선을 놓고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해 무리한 방식이 동원될 경우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실제로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제 더 이상 도울 수 없다”, “다음 선거에서는 반드시 떨어뜨리겠다”는 말까지 나오는 경우가 있다.
선거 때 도움을 줬던 사람 입장에서는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구청장의 행보를 둘러싼 주민들의 평가도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구청장이 동네 풀이나 뽑고 다닌다”는 식의 비판도 그중 하나다.
물론 생활 현장을 챙기는 것은 구청장의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현장을 돌아다니는 구청장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보여주는 구청장일 수 있다.
다른 자치구의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지역에서는 “우리 구만의 비전이 있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구청 내 조직 관리에도 문제가 생길 경우 더욱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진다.
한 지역 주민은 “구청장 당선자가 지역 정치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구청 조직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니 밖으로 좋지 않은 소문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서 중앙정치보다 오히려 지역정치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중앙정치는 전국이라는 넓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만 지역정치는 좁은 지역 안에서 벌어진다.
서로 아는 사람이 많고, 과거의 인연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누구와 식사를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누구를 인사에서 배려했는지, 누구와 갈등을 빚었는지 등 구청장의 일거수일투족이 곧바로 지역사회에 알려질 수 있다.
특히 지역에서 정치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구청장일수록 반대 세력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이 구의회다.
과거보다 구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여건도 좋아졌다. 의원들의 정책·입법 활동을 지원하는 인력이 배치되면서 구정질문과 행정사무감사 등을 보다 전문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됐다.
구청장과 집행부 입장에서는 그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구의회에서 나온 날카로운 비판은 곧바로 언론 보도로 이어지고, 지역에서 시작된 논란이 서울 전체로 확산될 수도 있다.
서울의 자치구는 적게는 30만명대, 많게는 70만명에 가까운 주민이 생활하는 거대한 행정단위다.
그곳의 최고 책임자인 구청장 역할이 결코 쉬울 리 없다.
구청장은 직원들의 평가를 받는다. 지역에 정통한 유력 주민들의 평가도 받는다. 구의원과 시의원, 국회의원 등 지역 정치권의 평가도 무섭다.
이른바 지역의 ‘빅마우스’들 사이에서 구청장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형성되면 그 여파는 생각보다 빠르게 확산된다.
특히 구청장과 관련한 부패나 비위 의혹, 인사 전횡 등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기 전이라도 소문 자체가 정치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소문은 초스피드로 퍼진다.
그래서 선출직 공직자에게는 무엇보다 신중한 처신과 소통이 요구된다.
주민에게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한 서울 자치구 주민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주민에 의해 선출됐다고 모든 것이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청장의 부패 등 행태부터 정책과 업적까지 주민들이 날카롭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결국 좋은 지역정치는 ‘내 편’을 많이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갈등을 최소화하고 반대편까지 설득하는 정치일 것이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지역사회는 끊임없이 분열될 수밖에 없다.
구청장 역시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만의 구청장이 아니다.
선거에서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주민까지 포용해야 하는 것이 선출직의 숙명이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보다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좁은 지역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구청장의 진짜 정치력은 선거에서 이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거가 끝난 뒤 자신에게 반대했던 사람들까지 어떻게 끌어안느냐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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