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佛 유학한 공연기획자, 코로나 뒤 고향 목포서 수산업 승부
김은 페스토·오징어튀김은 ‘단백질 스낵’…13개국 바이어 700명 뚫었다
지난해 매출 7.5억→올해 10억원 도전…11월 美 시장 본격 공략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해외유학파 공연기획자였던 청년이 수산업자로 변신했다. 화려한 공연장 대신 전남 목표이 수산시장이 그의 무대가 됐다. 수산물 업계 종사 6년차인 1986년생 최용준 남도소반 대표가 파는 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수산물과 조금 다른다. 김과 감태는 밥반찬이 아니라 빵에 발라 먹는 ‘페스토’가 됐고, 술안주로 익숙한 오징어튀김은 미국 시장에서 ‘단백질 스낵(Protein Snack·프로틴 스낵)’으로 다시 태어났다. 해조류는 밥에 뿌려 먹는 ‘시즈닝’으로 변신했다.
“수산물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손질과 조리가 어려워서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서 외면하는 게 아닐까”
최용준 대표가 수산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지점이다.
최 대표는 2021년 농수산물 원물 유통사업 ‘삼면이바다 since1991’을 시작한 뒤 2023년 남도소반을 설립했다. 직원 4명의 작은 회사지만 지난해 7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1~9월 매출은 6억원을 기록했다. 연간 10억원 매출에 도전하고 있다.
최 대표는 수산물 중매인의 아들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생선을 고르고 좋은 원물을 확보하는 법을 익혔지만 처음부터 가업을 잇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전남외고 중국어과와 경기대 중문학과를 거쳐 프랑스 오를레앙대 대학원에서 국제경영을 공부했다. 중국과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와인과 치즈, 머스터드 소스처럼 평범한 농식품이 브랜딩을 거쳐 세계적인 상품으로 팔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귀국 후 그는 공연 기획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클래식·재즈 공연을 기획했다. 벨기에 출신 클래식 기타리스트 드니성호의 회사에서 호텔 공연부터 패션쇼와 클래식을 결합한 공연까지 만들었다. 서울 연남동에서는 외국인 전용 호스텔도 운영했다.
공연기획사 급여와 호스텔 운영 수입을 합친 연간 수입은 약 1억2000만원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공연과 여행업이 동시에 타격을 받으면서 사업을 정리했다. 제주 서귀포의 한 마을에서 3~4개월을 지내며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중 문득 아버지의 수산물이 눈에 들어왔다.
최 대표는 “아버지 세대가 쌓은 산지와 원물에 대한 경험에 제가 배운 국제경영·외국어·기획 역량을 결합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반신반의했다. 노래와 공연기획을 좋아하던 아들이 새벽 수산시장에 나가겠다고 하자 금방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중국·프랑스 유학과 국제경영, 공연기획 경력을 두고 왜 굳이 힘든 수산업을 택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 대표의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좋은 생선과 해조류가 있어도 대부분 크기와 당일 시세로 가치가 결정됐다.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어떻게 먹으면 좋은지는 소비자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 특히 젊은 소비자에게 수산물은 ‘손질하기 어렵고 냄새나고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는 음식’이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수산물을 수산물처럼 팔지 않고 소비자가 알고 있는 음식의 형태로 바꾸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해조류 페스토다. 국내산 김과 감태를 밥이나 국에 넣어 먹는 원료에 머물게 하지 않고 빵에 바르거나 파스타·샐러드·육류요리에 곁들이는 페스토로 만들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해조류를 세계 소비자에게 익숙한 소스의 형태로 바꾼 것이다.
반응은 현장에서 확인됐다. 서울푸드위크에서 시식을 시작하자 남도소반 부스의 대기 줄이 세 개 부스 너머까지 이어졌다. 제품을 맛본 사람이 다시 줄을 서거나 다른 사람을 데려오기도 했다. 해조류 페스토는 이후 스위스 수출로 이어졌고 인도네시아와도 수출 계약이 성사됐다.
오징어튀김도 이름부터 다시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술안주나 간식으로 익숙한 오징어튀김에서 ‘단백질’이라는 새로운 특징을 찾아냈다. 제품의 약 20%가 단백질이라는 점에 주목해 미국 시장에서는 ‘Protein Snack’으로 다시 정의했다. 포장도 전통적인 수산가공품이 아닌 스낵처럼 바꿨다.
제품부터 만들고 구매자를 찾는 방식도 뒤집었다. 해외 바이어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확인한 뒤 맛과 용량, 규격, 패키지, 라벨, 가격, 최소주문수량을 설계한다. 한국어·중국어·영어·프랑스어 등 4개 국어를 활용해 해외 바이어와 직접 소통하는 것도 강점이다.
그는 판로도 직접 찾아다녔다. 2024년에 17번, 지난해에 21번의 박람회와 수출상담회에 참가했다. 지금까지 약 50회의 해외 박람회와 상담회를 거치며 13개국 약 700명의 해외 바이어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확보한 바이어에게는 4개 국어로 뉴스레터를 보내 후속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남도소반 매출의 90%는 수산물 원물과 반건조 생선 등 유통상품에서 나온다. 자체 기획제품의 비중은 10% 수준이다. 최 대표는 앞으로 5년 동안 이를 50대 50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안정적인 유통 매출을 기반으로 해조류 페스토와 크런치 시즈닝 등 자체 제품 비중과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다음 승부처는 미국이다. 오는 11월 미국 한인마트 울타리몰에서 해조류 크런치 시즈닝 프로모션 행사를 열고 미국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일본의 대표적인 밥 토핑인 후리카케와 베이글에 뿌려 먹는 재료를 각종 음식에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 트레이더 조(Trader Joe’s)의 ‘에브리싱 벗 더 베이글(Everything but the Bagel)’ 시즈닝에서 착안했다. 국산 해조류를 밥뿐 아니라 샐러드와 달걀요리, 파스타, 토스트, 육류요리 등에 뿌려 먹을 수 있도록 개발했다. 최 대표는 미국 시장 공략을 발판으로 올해 매출 10억원에 도전한다. 3년 안에 코스트코나 트레이더 조 등 미국 주류 유통채널 진출도 노리고 있다.
기업을 키우는 과정에서 정부의 창업·소상공인 지원사업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남도소반은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의 ‘강한소상공인 성장지원사업’에서 약 9000개 신청 업체 가운데 최종 60개 업체에 이름을 올렸다. 이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소상공인의 브랜드·제품·서비스를 고도화해 기업가형 소상공인인 ‘라이콘(LICORN)’으로 키우는 사업이다.
최 대표는 청년식품창업패키지와 창업중심대학 등 정부 지원사업을 거치며 제품 개발과 브랜딩, 판로 개척의 기회를 넓혔다. 단순히 사업비를 지원받는 데 그치지 않고 박람회와 바이어 상담 등을 통해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제품과 사업 방향을 다듬는 기회로 활용했다.
후배 농어업인과 창업가에게 그는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기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력하라”고 조언한다.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딩과 마케팅, 유통, 수출까지 연결하려면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내년 목포에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선다. 해조류를 주제로 한 카페와 다이닝, 숙박을 결합한 공간을 열 계획이다.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음식과 상품, 목포의 바다와 지역문화를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공연기획과 숙박업에서 쌓은 경험을 이번에는 수산업에 접목한다.
최 대표가 원하는 것은 남도소반 한 곳의 성공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목포와 전남의 좋은 원료와 생산자, 제조시설을 기반으로도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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