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쓰자니 野 ‘탄핵’ 압박
수용했을 땐 與 반발 클 듯
공조수사본부, 尹 출석요구서 전달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의요구권(거부권)’ 사용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국민의힘은 야당 주도로 강행처리된 법안에 대해 일괄적인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좌했던 한 권한대행이 각종 특검법안이나 쟁점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는만큼 한 권한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여야 대치 속 거부권 고심=한 권한대행은 지난 15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대통령실의 권한대행 보좌 방안 등을 보고받았다. 대통령 경호처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자 곧장 전담 경호대를 편성하는 등 발빠른 조치에 들어갔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까지 권력공백이 불가피한만큼 한 권한대행은 이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고 국정 운영에 주력할 전망이다.
한 권한대행은 전일 기자들을 만나 “이제부터 모든 조직은 권한대행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변했다”며 “대통령비서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저한테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비서실의 역할이 국조실·총리비서실과 중복되지 않도록 역할 분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거부권 행사 문제는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극화 타개 등 각종 과제 등이 쌓여있다”며 “잘 보좌해서 진행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한대행 체제가 막이 오른만큼 정치권의 시선은 오는 17일 국무회의 이후 한 권한대행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내란특검법, 농업 4법 등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헌법 71조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을 다 이어받은만큼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직 직무정지 국면에서 고건 총리도 권한대행을 맡으며 사면권 개정안 등에 거부권을 행사한 선례가 있다.
그 중에서도 한 권한대행은 농업4법에 대해 강하게 반대 의견을 표해왔다. 농업 4법, 국회법 개정안, 국회 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은 21일까지가 거부권 시한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또한 지난 13일에도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피력했다. 그간 발언을 보면 거부권 행사가 당연해보이지만 입지상 그렇지가 않다. 야당이 ‘탄핵’ 목줄을 틀어쥔 상태인만큼 거부권 행사에 따른 파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란 피의자’ 신분 부담…野 “탄핵, 일단은 보류”= 한 권한대행은 피의자 신분에 처해진데다 거대 야당을 상대해야한다. 과거 권한대행 시절과 한 권한대행간 입지 차이도 여기에서 비롯될 수 밖에 없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여부에 대해 “일단은 탄핵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당내에 한 권한대행에 대해 내란 사태의 책임 등을 물어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일단’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국정운영의 주도권 싸움에서 승기를 가져가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의요구권 행사는 정치적 편향”이라고도 압박했다.
지난 10일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특검법, 김 여사 특검법은 더욱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특검법을 세 차례 국회로 돌려보낸 바 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됐고, 소극적 관리모드로 한만큼 한 권한대행이 이를 뒤엎고 수용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더욱 어렵다. 국민적 여론이 들끓고 있어서다.
▶尹, 법리 공방 준비 중…공조수사본부 “오늘 출석요구서 전달”= 한편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 머물며 법률대리인 등과 함께 내란죄 성립 여부 등을 놓고 법리 공방에 나설 준비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 직후 메세지를 통해 “질책, 성원, 격려 마음에 품고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낸 바 있다.
비상계엄 공조수사본부는 이날 “오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출석요구서를 대통령실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조본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방부 조사본부로 구성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도 “대통령 관련 수사를 오늘 9시쯤 공수처에 이첩했다”며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를 위해 공수처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에 대한 영장 신청 등 관련 수사는 공수처를 통해 이뤄지게 된다.
윤 대통령은 전일 검찰의 출석통보에 응하지 않았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11일 윤 대통령에게 이날 오전 10시 출석을 통보했지만 (윤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았다”며 “2차로 소환을 통보할 예정”이라고 전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