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임’ 통감하는 사람 하나 없는 대한민국 현실
尹 28분간 “사법심사 대상 안되는 통치행위” 항변
집권 여당은 사분오열…계파 이익만 따지기 급급
국무위원들 “반대했다”…軍은 해명하다 기밀누설
“애국주의 사라진 정치…경제·외교 피해 어떡하나”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강제수사가 시작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여당과 계엄사령부를 꾸렸던 군까지 일제히 각자도생에 나섰다.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애국도, 책임자도 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정치적 셈법으로 가득한 모습에 “국민만 골병들고 눈물 흘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기관들은 일제히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에 나섰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국방부 조사본부는 ‘공조수사본부’(공조본)을 출범했다. 검찰은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를 꾸리고 군검사 등 12명을 추가로 파견받아 군검찰과 합동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투 트랙의 거대 수사기관이 총출동해 수사에 나서면서 이번 12·3 비상계엄과 관련된 인사들이 대거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앞두고 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처음 구속된 만큼, 윤 대통령을 비롯해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과 계엄 임무에 종사한 군 관계자들의 소환조사는 시간문제다.
이번 사태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하고 ‘내 책임’을 자처하는 인물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다.
尹 “2시간짜리 내란이 어딨느냐” 동떨어진 현실인식
이번 비상계엄과 관련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윤 대통령은 12일 네 번째 담화에서 야당을 “나라를 망치려는 반국가세력”,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라며 책임을 돌렸다.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시스템 관리 문제를 지적하며 지난 4월 총선까지 거론했다.
윤 대통령은 28분간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며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강조했다. 내란 수괴 혐의에 대한 수사에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하야를 거부하고 탄핵심판을 선택한 것 역시 ‘나는 잘못이 없다’는 인식에서 기인하는 석으로 해석된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직무정지가 되지만, 헌재 결정에 따라 기각되면 곧바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직을 유지한 상태에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경찰은 전날(11일)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대치 끝에 ‘극히 일부’ 자료만 임의제출 받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대통령이) 공정과 상식을 외쳤지만 그것은 타인에 대한 공정과 상식일뿐 자신은 그러한 기준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며 “말로 기만했고, 그것을 못 알아차린 유권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尹대통령 속한 집권 여당은 ‘사분오열’
윤 대통령을 탄생시킨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정국 해법을 놓고 계파간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친윤계 의원들은 “탄핵만은 막아달라”고 호소하며 지난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전 국민이 경악했던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감도 없이,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사명감도 없이 ‘당론’만 찾았다.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위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을 맞잡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사태 수습을 위해 ‘질서 있는 퇴진’의 방안으로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 대표읙 공동국정운영을 내세웠지만 ‘위헌’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의 직무정지 없이 인사권과 군통수권, 외교권을 국무총리가 이행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의 국민의힘이 이처럼 갈라진 것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지는 자세보다 이번 정국이 향후 총선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쏠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80석, 미래통합당은 103석으로 큰 차이가 났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여당은 당리당략에 따라서, 계파 이익에 따라서 오락가락하고 국민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진정성이 전혀 없다”고 짚었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들은 여당 출신의 대통령을 배출한 것에 대해 사과를 먼저 기대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엄선포 막지 못한 국무위원들…사죄했지만
앞서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은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한 총리는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국무회의를 명분으로 대통령님의 (비상계엄 선포) 의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궁극적으로 막지 못했다”며 두 차례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12월3일 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에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국무위원은 한 총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 총리는 비상계엄 포고령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계엄령) 집행에 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고, 계엄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수사 과정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며 함구했다.
12월4일 비상계엄 해제 후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법무부 장관, 김주현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 등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진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곧 퇴임하실 텐데 퇴직하고 난 뒤에 본인을 장관으로 만들어줬던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에 합류할 것인가”라는 질의에 “우선 제 코가 석 자”라고 밝혔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던 김용현, 혐의 인정 안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일 “비상계엄과 관련된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장관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참하면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영장 결과를 앞두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로 잘못된 선택을 하려 했다.
계엄 업무에 종사했던 군은 지난 10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질의 과정에서 합동참모본부 내부 기밀시설의 구조와 첩보기관 요원의 실명(實名)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 우후죽순 달려든 수사기관을 향한 쓴목소리도 나온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공수처는 소극적이었고 검찰은 ‘방문 조사’를 하면서 ‘황제 조사’ 지적이 나왔다. 검찰 조사에 대한 불신으로 김건희 특검법과 대통령의 거부권 정국이 이어졌다.
엄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여러 가지 흠결에도 ‘MAGA’(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는 애국주의로 무장이 돼 있기 때문”이라며 “반면 우리나라는 일종의 애국주의 없이 경제, 외교, 군사 모든 면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난 12·12사태와 5·18 (광주민주항쟁 민간인 학살)에 단죄를 했기 때문에 학습효과에 의해 이번 비상계엄 당시 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더 이상 불가능할 정도로 메시지를 주기 위해 엄벌이 내려져야 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명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서 진정성있는 호소력으로 책임감을 보인 인물에 주목했다. 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육군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의 김현태(대령) 단장이다. 김 단장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군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계엄 해제 직후 직을 떠난 김 전 장관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707부대원들은 전(前) 김용현 국방 장관에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입니다. 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관입니다. 부대원들을 사지로 몰았습니다. 부대원들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무능한 지휘관의 지시를 따른 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