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중독을 일으키는 게 뭔가요? 상자에 넣으세요. 잠금 시간을 결정하고 버튼을 누르세요. 절대 열지 못합니다. 금욕을 실천하세요.’
지난 11일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33)는 의문의 투명 상자를 꺼내 설명서를 읽는다. 초콜릿이나 과자·게임기·담배·스마트폰 등 무엇이든 넣을 수 있는 이 상자의 별명은 ‘금욕 상자’. 미리 설정한 잠금 시간이 끝날 때까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망치로 상자를 부수는 것이다.
코드 쿤스트는 “제가 이 상자를 구매한 이유는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며 “제 의지만으로는 ‘디지털 금식’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금욕 상자를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코드 쿤스트는 금욕 상자에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를 넣고 10시간의 잠금 시간을 설정한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하는 그는 지독한 스마트폰 금단 증상에 시달린다.
최근 고질적인 사회 문제인 스마트폰 중독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욕 상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3만원에서 5만원이면 구매할 수 있다. “시험 기간에 필수. 절대 못 연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자괴감이 들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진 것 같다” 등 후기만 수백개에 이른다.
스마트폰은 이미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침투했다. 성인의 절반이 스스로를 ‘스마트폰의 노예’라고 칭할 정도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2019년 성인 5267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중독 여부를 조사한 결과 40.6%가 ‘자신이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평균 3시간 55분으로, 현재는 이보다 늘어난 6시간일 것으로 추측된다.
스마트폰 중독 여부가 궁금하다면, 간단한 온라인 자가 진단 테스트로 확인할 수 있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 ▷스마트폰이 고장나면 친구를 잃은 느낌이다 ▷밥을 먹다가 스마트폰 소리가 나면 달려간다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간다 ▷스마트폰 때문에 잠을 늦게 잔다’ 등 10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스마트폰 중독이 치명적인 이유는 뇌의 기능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쏟아지는 자극적인 정보들은 강력한 도파민(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 분출을 자극한다. 쉽게 보상(쾌락)을 얻는 것에 길들여진 뇌는 전과 같은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게 되고, 이는 집중력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장기적으론 주의력·기억력·독해·암산·문제해결 능력을 떨어트린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 교수인 애나 렘키는 “반복적인 쾌락이 주어지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절대 만족하지 않고 계속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고 경고한다. 스웨덴 정신과 의사 안데르스 한센도 자신의 저서 ‘인스타 브레인’에서 스마트폰에 중독되면 충분히 자고 싶은 욕구,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 타인과 관계 맺고 싶은 욕구가 모두 좌절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금욕 상자와 같은 강제적인 도구가 스마트폰의 중독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미국 조지타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이자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저자 칼 뉴포트는 일정 기간 스마트폰 사용을 중단한다고 해서 중독을 없앨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장기적으로 집중력을 강화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끊어야 한다. 뉴포트 교수는 “무료한 시간은 무료한 대로 놔둬야 한다”며 일상에서 지킬 수 있는 원칙을 정하고 따를 것을 권한다. ▷메시지 답장은 한꺼번에 처리하기 ▷온라인 뉴스는 정해놓은 사이트에서 정한 시간 동안만 보기 ▷집중에 방해되는 특정 사이트나 앱 차단 프로그램 사용하기 ▷단순 오락거리 콘텐츠를 생성하는 SNS 계정 팔로우 끊기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