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준 ‘신용경색 현실화’ 공식 제기…기업들 돈 빌리기 힘들다
미 애리조나주 템피의 실리콘밸리은행 사무소 전경. 8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잇따른 은행 위기가 대출 기준 강화와 신용 긴축으로 이어져 경기 침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FP]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은행권 위기에 따른 신용 경색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은행위기 여파에 따라 대출 기준이 강화되고, 이로 인해 기업과 가계 대출이 위축돼 결국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연준은 8일(현지시간) 발표한 반기 금융 안정보고서에서 은행시스템 압박을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등과 함께 미국 금융시스템이 직면한 주요 위험요소로 꼽았다.

보고서는 “경제 전망과 신용 여건, 자금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은행 및 다른 금융기관들의 신용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면서 “급격한 신용 경색은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 비용을 증가시키고, 잠재적으로 경제 활동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같은날 연준이 발표한 전국 은행 대출담당자 대상 1분기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중 은행의 46.1%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기준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4분기 대비 1.3%포인트 증가한 수준이다. 응답자들은 올해 남은 기간에도 대출 기준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대출 기준이 강화되며 대출 수요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의 보고서를 인용해 “은행 부문의 혼란 속에 신용카드와 자동차 및 기타 소비자 대출에 대한 수요도 약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신용 경색 문제와 관련해 수차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제롬 의장은 지난 3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은행 부문의 부담이 가계와 기업들에 더 긴축적인 신용 여건을 초래할 것”이라며 향후 대출 규제 등으로 인한 신용 경색이 경제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셉 브루수엘라스 RSM 이코노미스트는 “모든 규모의 기업들에서 대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연준의 긴축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뜻한다”면서 “앞으로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억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한편 보고서는 미 경제가 직면한 또다른 위험으로 상업용부동산(CRE)을 꼽았다. 재택근무 증가로 사무실 공실이 늘고 대출금리 상승으로 차입비용이 증가하면서 상업용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은 “상업용부동산 침체로 인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 또 다른 은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