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안 발표…박진 “재단이 판결금 지급”
한일관계 최대 현안 일단 전환점 마련
日, 과거사·수출규제 등 호응 여부 주목
정부가 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해 ‘제3자 변제’를 핵심으로 하는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5년 간 한일관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아온 사안에서 일단 전환점이 마련된 셈이다. 정부의 이번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과 관련해서는 안보·경제 측면에서 한일관계 경색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피해자 측과 야당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 ‘일본의 외교 승리’라는 비판과 함께 반발이 거세 향후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해법에 대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와 미중갈등 심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급변하는 안보·경제 현실에서 한일관계 개선이 시급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앞두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거의 완성하는 단계에 이르는 등 북핵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으로 즉각 대응하지 않으면 굉장히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 반도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글로벌 공급망이 급속 재편되고 있는데 한미, 한미일이 유럽연합(EU)이나 다른 우방국들과 협력해 대응하지 않으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하루라도 빨리 (한일 간) 안보·경제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욕먹어도 이성적 판단에 따라 할 일은 해야 하는 게 지도자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도 이날 해법을 발표하면서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불안정 등 한일관계 악화·경색국면이 심화된 상태에서 조속한 해법 마련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방문길에 오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한일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 “미국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면 한미일 안보협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더 나아가 한미일 협력이 보다 포괄적이고 풍부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일 양국이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은 물론 한미일 안보·경제 등 전반적인 관계 발전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교수는 “대법원의 판결이 기존 한일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내용을 뒤집는 측면이 있어서 한국 정부도 부담되고 일본도 수용하기 곤란했다”며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해법은 최선은 아니지만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정부로서는 고육지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 측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일본도 한국이 필요최소한으로 요구하는 수준에 호락호락하게 응하지 않을 수 있는데 역풍이 커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어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방향도 맞고 이를 지지한다”며 “다만 이번 사안은 시간을 두고 원칙대로 대법원 판결대로 집행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사실 이번 사안은 이전 정부와 대법원의 책임이 크다”면서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을 지더라도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나선 것인데, 일단 대법원 판결대로 갔다면 훨씬 자유롭게 대외관계를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피해자 측은 이번 해법에 대해 ‘최악의 안’, ‘일본 정부의 외교적 승리’라고 비판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피고기업의 변제와 부담 없이 한국 국내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대법원 판결에서 패배한 일본 피고기업의 채무를 사실상 면책시켜줬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향후 국내 여론의 향방을 비롯한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의 파장은 일본 정부가 얼마나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일본은 그동안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빌미로 사실상 한일관계 악화와 경색을 방치해왔다. 일본이 한국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한일정상 셔틀외교 복원과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수출규제 조치, 그리고 과거사 입장 등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느 정도 호응해 나서느냐에 따라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는 물론 앞으로 한일관계, 나아가 한미일 협력까지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박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국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이라며 “일본도 수출규제 등에 있어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도 앞서 국가안보전략서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얘기한 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신대원·박상현 기자